반연간 《문학수첩》(2022년 상반기) 출간

  • 인문학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다, 문예지 문학수첩3호 출간

  • 누구나 작가인 시대’, ‘문학의 지형도를 변화시킨 SF’ 등에 대한 깊은 고찰

  • 재난이 일상화된 시대의 삶의 방식, ‘2021년 상반기 한국 소설결산

문학과 철학, 예술을 뛰어넘어 인문학의 사회적 역할을 제시하는

반연간 문학수첩2022년 상반기호 출간

 

2021년 봄부터 새롭게 탄생한 반연간 문예지 《문학수첩》 2022년 상반기호(통권 3호)가 출간되었다. 2003년에 처음 창간하여 2011년부터 2020년 겨울까지 계간 《시인수첩》의 이름으로 명맥을 이어왔던 문예지 《문학수첩》은 2021년 3월에 소설 및 산문 중심의 반연간지로 재탄생했다.

지난 호와 마찬가지로 2022년 상반기호에서도, 고전 미술 작품들과 함께 ‘서양 미술과 문학의 관계’라는 흥미진진한 주제를 다룬 미술사가 이연식의 산문이 시작을 연다. 문학, 철학, 예술을 아우를 뿐만 아니라 그 모두를 뛰어넘어 지금 우리의 현실을 분석함으로써 인문학이 나아갈 사회적 역할을 진단하는 것도 《문학수첩》의 편집 의도 가운데 하나다. 이번 호의 ‘특집 1’과 ‘특집 2’가 그런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특집 1’ 〈누구나 작가인 시대의 명암을 생각하며〉라는 글에서 권성우 교수는 독서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도 출간 도서와 작가는 늘어나고 있는 상황을 분석한다. ‘특집 2’의 임옥희 교수와 김은하 교수는 SF가 어떻게 페미니즘과 연계됐는지에 관해 각각 총론과 각론에 해당하는 글을 선보인다. ‘기획 연재’ 꼭지에서는 본지 기획위원인 이덕화 교수가 소설가 박경리의 작품에서 스피노자의 철학을 읽는다.

김지연․문진영․손홍규․윤대녕․정진영의 단편소설에 이어 이순원의 연재소설 〈박제사의 사랑〉 제3회가 실렸으며, 소설가 구효서는 ‘창작 노트’에서 중편 〈풍경소리〉(2016)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풀어놓는다. 시인 강정, 《매거진 브릭스》의 편집자 신태진, 도서 인플루언서 김미옥의 에세이를 통해 문학/책과 관련된 다양한 목소리를 읽고, ‘이번 호의 추천작’에서는 문학평론가 유성호가 소개하는 두 편의 ‘어른 동화’ 《어린 왕자》와 《갈매기의 꿈》을 다시 읽어본다. 마지막으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지윤이 2021년에 발표된 소설들의 경향을 분석했다.

 

 

서양 미술 산책이연식

이번 호에서 이연식은 〈에밀 졸라와 화가들〉이라는 제목으로, 프랑스 소설가 에밀 졸라와 그와 친분을 맺었던 화가들(마네, 세잔)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또한 졸라가 작품 속에서 화가들을 어떻게 그렸는지도 살펴본다.

“졸라가 보기에 예술가는 세상의 진실을 남김없이 드러내야 한다는, 결코 이룰 수 없는 목표 앞에 좌절하고 끝내 파멸하는 존재였다. 예술가들이 실은 세상의 모습을 그려내는 게 아니라 세상을 보는 방식에 대해 탐구한다는 걸, 그리고 예술 활동은 단조로움을 감수하는 인내와 집요함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정작 졸라 자신은 문학을 통해 세상을 새로이 보려 했으며, 꾸준히 부지런하게 작업을 하는 것만이 창조의 비결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았으면서도, 화가들의 작업을 미루어 짐작하는 대신에 열정과 운명과 비극이라는 장치를 화가들에게 투사했다.”(이연식, 〈에밀 졸라와 화가들〉 중에서)

 

특집 1. 이번 호의 화제권성우

문단 이슈를 다루는 특집인 ‘이번 호의 화제’에서는 문학평론가 권성우가 ‘누구나 작가인 시대’의 명암을 짚어본다. 누구나 유튜브나 SNS를 통해 자기 입장과 생각을 드러내고 자신만의 콘텐츠를 알릴 수 있는 것처럼, 이제 누구나 작가와 시인이 될 수 있는 지금의 현실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게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문화적 흐름에 가깝다. 이 글은 이런 현실에 초점을 두고, 문학책 출간의 대중화 현상을 둘러싼 숨은 진실과 명암을 비평 에세이 형식으로 살펴본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저 지성의 전위이자 사유의 실험실 역할을 하는 작가, 마치 잠수함의 토끼처럼 한 시대의 위기와 상처를 먼저 알아채는 작가의 역할이 없어질 수는 없다. 여전히 문학은 실용성과 환금성만으로 환원될 수 없는 대표적인 예술이자, 가장 자본의 논리에서 먼 예술이다. 이제 문학이 지성과 예술의 중심으로 대우받던 시대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 역설적인 의미에서 문학은 끝끝내 세상의 그늘과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을 응시해야 한다.”(권성우, 〈누구나 작가인 시대의 명암을 생각하며〉 중에서)

 

기획 연재. 박경리와 스피노자 1이덕화

스피노자의 방대한 철학 가운데 박경리 《토지》의 사상과 맞닿아 있는 부분을 소개한다. 자유의 관점에서 능동적 공동체, 범신론적인 관점에서의 생명, 생태학적인 관점에서 생명의 존엄성 등이 그것이다. 이런 개념들은 스피노자나 박경리 두 사람 모두에게 중요한 개념들이자 그들의 철학과 작품의 주제를 형성하는 개념어들이기도 하다.

 

특집 2. 문학과 철학임옥희, 김은하

‘SF는 어떻게 여성의 놀이터가 되었는가’라는 주제를 다룬 임옥희 교수의 글 〈SF가 보여주는 다른 상상〉을 통해 앞으로 우리 문학계의 미래를 진단하고 예측해 볼 수 있다. SF가 가한 충격으로 보수적인 ‘순수’문학의 방화벽은 무너지고 있다. 필자는 또한 SF소설의 상위 개념으로서 ‘사변소설’을 이야기하면서 사변소설이 “취약하고 비체화된 존재들이 함께할 수 있는 공유 서식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김은하 교수는 최근 한국 여성 문학의 SF적 전환이 ‘미친 여자 아니면 나쁜 여자’라는 이분법을 벗어날 수 있는 해방의 출구처럼 보인다면서, “한국문학의 전통을 자처하는 리얼리즘이나 현실주의적 기율에 구속되지 않음으로써 여성을 더 이상 무엇의 은유로 표상하지 않고 행위 주체로 격상시키는 한편으로 여성 글쓰기의 범주를 넓”혔다고 말한다. 그런 여성 서사의 하나로 천선란의 소설들을 살펴본다.

소설김지연, 문진영, 손홍규, 윤대녕, 정진영, 이순원

소설 꼭지에는 폐허가 되어 음울한 어촌에서 조그만 빛이나마 의지하고 사는 아이의 목소리를 담은 김지연의 〈가능한 밝은 어둠〉, 휴가차 태국의 낙원 같은 섬에 간 여성 화자가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을 되새겨보게 되는 이야기인 문진영의 〈네버랜드에서〉, 어느 노부부의 엇갈리는 회한을 깊이 있게 그려낸 손홍규의 〈굉을 기다리는 밤〉, 오직 자기 자신만이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고통을 요강으로 형상화한 윤대녕의 〈요강〉, 학원폭력과 사이버불링 등 최근에 흔히 일어날 법한 일들을 신랄하게 그려낸 정진영의 〈네버 엔딩 스토리〉 등의 단편을 실었다. 또한 이순원의 경장편소설 〈박제사의 사랑〉 연재 3회분에서 주인공 박인수는 죽은 아내에게 문자를 보낸 의문의 두 인물 중 한 명을 드디어 만난다.

 

에세이강정, 신태진, 김미옥

문학과 예술에 관련된 자유로운 이야기의 장인 ‘에세이’ 코너에는, 최고의 발레리노였던 니진스키의 ‘기괴한’ 일기를 통해 ‘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안하는 강정 시인의 〈몸을 잊은 그대여 꿈을 춤춰라〉, ‘우리 동네’에 대한 슬기로운 고찰과 따스한 시선을 보여주는 신태진의 〈우리 동네는 어디까지일까요?〉, 책에서 구원받고 책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는 김미옥의 〈페이스북의 어느 독자 이야기〉가 실렸다.

 

구효서의 창작 노트―〈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 소리

‘구효서의 창작 노트’ 세 번째 이야기는 저자가 군대 시절 직접 체험했던 ‘10.27 법난’의 밤으로 시작한다. 당시 다른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공부가 2라면 데모가 8이었”던 저자는 “동네 나쁜 형 같은 스님”에게서 목탁 소리에 대한 가르침을 얻고, 그때의 깨달음은 훗날 저자의 중편소설 〈풍경소리〉의 씨앗이 된다.

 

“원래 소리라는 것은 글로 적을 수 없는 건데 적으랬다고 순진하게 따라 적으니 그 모양이 됐다. 누구 한 놈도 ‘저는 못 적겠는데요’라고 뻗대는 놈이 없었다. 문학을 하겠다는 저 효서 같은 놈도 목탁 소리를 탕탕탕탕이라고 아주 보란 듯이 적어놨잖냔 말이다. 귀라는 감각기관이 세상의 소리를 제대로 다 들을 수 없어 목탁 소리가 한 차례 훼손된 데다, 적을 수 없는 소리를 자모 몇 개 안 되는 옹색한 글자로 욱여넣어 탕탕탕탕이라고 쓰니 왜곡이 갑절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걸 맞다고까지 믿고 우기고. 그러다 보면 이제는 세상의 모든 목탁이 탕탕탕탕으로 들리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구효서,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 소리〉 중에서)

 

이번 호의 추천작―〈성장 소설의 두 범례: 어린 왕자, 갈매기의 꿈》〉

평론가가 추천하는 작품을 소개하고 분석하는 코너인 ‘이번 호의 추천작’에서는 문학평론가 유성호가 영원한 고전 《어린 왕자》와 《갈매기의 꿈》을 추천한다. 우리의 첫 문학 경험은 대체로 이른바 ‘문학 정전(正典)’의 상상력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이루어진다. 이 두 편의 성장 소설은 유성호 평론가의 머릿속에서 여전히 세차게 파동치고 있는 정전 가운데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다.

 

2021 상반기 소설 총평―〈재난이 일상화된 시대, 1인칭 글쓰기와 그 이후

이번 호는 특별히 2021년 상반기에 발표된 소설들에 대한 총평으로 마무리된다. 코로나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재난이 상시화된 시대의 일상은 다른 의미를 형성한다. 문학평론가 김지윤은 재난이 상시화된 예측불가능성 속에서 사람들이 ‘나’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것이 소설에서의 ‘나’ 서사의 약진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또한 의료문학과 돌봄문학 작품군의 출현을 짚고, 일본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가 이야기한 ‘분인(dividual) 개념’을 언급하면서 “자기 내면의 진실한 마음에 몰두하고 나와 타자가 모두 ‘분인’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서로의 다양한 모습을 받아들”이는 소설 속 인물들을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