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김종철문학상 수상자 발표 : 황인숙, 『내 삶의 예쁜 종아리』(문학과지성사, 2022)

제5회 <김종철문학상> 수상자 발표

황인숙, 『내 삶의 예쁜 종아리』(문학과지성사, 2022)

 

㈜문학수첩과 김종철시인기념사업회는 지난 2023년 3월 17일, 제5회 〈김종철문학상〉의 수상 시집으로 황인숙 시인의 시집 『내 삶의 예쁜 종아리』(문학과지성사, 2022)를 선정 발표하였다.

〈김종철문학상〉은 ㈜문학수첩과 김종철시인기념사업회에서 ‘못의 사제’로 불리며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우리 시대의 사랑과 구원을 노래한 故 김종철 시인의 시정신을 계승하고 한국 시문학을 응원하기 위해 지난 2018년에 제정된 상으로, 올해 제5회를 맞았다.

 

예심은 2021년 1월 1일부터 2022년 12월 31일까지 2년 동안 출간된 신작 시집을 심사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며, 제4회 수상자인 양애경 시인을 비롯해서 최현식 교수(문학평론가, 인하대 교수), 김병호 교수(시인, 협성대 교수), 김주원(문학평론가) 등 네 명이 심사를 맡았다.

지난 1월 말에 가졌던 예심에서, 예심위원들은 해당 기간의 시집 중 주목할 만한 미학적 성과를 보이거나 시문학사적으로 주목해야 할 시집들을 개인별 2~4권씩 추천하고, 심층적 논의를 통해 일곱 권의 시집을 골라 본심에 추천하였다.

 

본심은 이후 한 달여의 시간을 가진 후에 진행되었다. 2월 말에 진행된 본심은 이숭원 교수(문학평론가, 서울여대 명예교수), 남진우 교수(시인, 문학평론가, 명지대 교수), 나희덕 교수(시인, 서울과기대 교수) 등 세 분이 참여했다. 충분한 기간 동안 본심 대상 시집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심사에 임한 본심위원들은 최종 두 권의 시집을 놓고 치열하게 논의하였다.

심사위원들은 이설야 시인의 시집 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창비, 2022)와 황인숙 시인의 시집 중 어느 한 권의 손을 선뜻 들어주지 못했다. 이는 문학상 수상작을 뽑는 데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은 없으며, 우열의 평가보다는 상대적인 차원에서 좀 더 적합한 작품을 고를 뿐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치열한 논의 끝에 심사위원들은 황인숙의 『내 삶의 예쁜 종아리』를 제5회 〈김종철문학상〉 수상 시집으로 선정하는 데 전격 합의하였다. 황인숙 시인의 시집을 수상작으로 정하는 데에는 김종철 문학의 성격도 고려 대상이 되었다. 김종철 시인은 존재 탐구라는 진지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고 거시적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았으며, 황인숙 시인의 어느 지점이 김종철의 시와 통하고 있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1회 심재휘, 2회 이선영, 3회 허연, 4회 양애경 시인에 이어 황인숙 시인의 시집이 선정되면서 〈김종철문학상〉은 우리 시단의 허리를 구축하고 있는 우수한 중견 시인들을 각별하게 주목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심사를 참관했던 ㈜문학수첩의 강봉자 대표는 “도시 문명 속의 소시민 삶을 시어로 다듬어 많은 감동과 신선한 깨달음을 주었던 김종철 시인의 시정신과 시적 가치가 여전히 유효함을 확인할 수 있어서,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기쁘다.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심사위원님들과 수상자인 황인숙 시인께 감사와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수상자인 황인숙 시인의 수상 소감과, 심사평, 수상시집 작품론 등은 반연간 문예지 『문학수첩』 하반기호(2023년 9월 30일 출간 예정)에 게재될 예정이다. 〈김종철문학상〉의 상금은 1천만 원이며, 시상식은 이번 상반기에 열릴 예정이다.

 

본심 대상 시집 목록

 

서효인 『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문학동네)

안숭범 『소문과 빌런의 밤』(파란)

유종인 『숲 선생』(시인의일요일)

이설야 『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창비)

이영옥 『하루는 죽고 하루는 깨어난다』(걷는사람)

조말선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문학동네)

황인숙 『내 삶의 예쁜 종아리』(문학과지성사)

 

황인숙 시인 약력(연락처 02-778-5595 / 핸드폰 없음)

1958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슬픔이 나를 깨운다』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자명한 산책』 『리스본行 야간열차』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내 삶의 예쁜 종아리』 등이 있음. <동서문학상> <현대문학상> <김수영문학상> 등 수상.

 

 

 

심사평 발췌

 

“황인숙 시인은 일상의 사소한 단면에서 생의 진실과 시적 기미를 포착하여 그만의 언어로 독특하게 표현하는 데 일가를 이루었다. 짧은 구절에서도 인생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능력은 그의 시가 아니면 보기 힘들다. 유머의 화법이 더 늘어났는데, 그 안에 슬픔을 배치하여 생의 양면을 체험하게 하는 솜씨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생의 연륜을 거치면서 세상을 여유 있게 바라보는 원숙한 자세가 뚜렷해진 점을 느낄 수 있다. “슬픔인 듯 고통이여, 자주 안녕/고통인 듯 슬픔이여, 자꾸 안녕” 같은 구절처럼 유사한 시어를 재치 있게 배치하여 말의 묘미를 살린 점도 시 읽는 흥미를 높인다. 어떤 구절들은 우화적이고 잠언적이어서 매섭게 달려드는 치열함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을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인간으로서의 최선을 추구하면서 삶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려는 시인의 개성적 언어는 충분히 상찬받을 만하다.” ―이숭원, 심사평 일부

 

“이 시인이 아직도 ‘탄성의 시인’일 수 있다면 그것은 그녀의 시에 등장하는 이미지의 화려한 역동성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외부로 현시될 수 없는 마음의 움직임, 아무리 훼손되고 마모되더라도 다시 원래의 형태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의 지칠 줄 모르는 복원력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고양이에 취한 그녀는 한때 고양이-되기를 통해 매순간 경계를 가로지르고 자유롭게 변신하는 존재가 되는 꿈을 꾸었다. 이제 그녀는 장마와 열대야와 추위로 점철된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길고양이의 안부를 걱정하는 삶을 살고 있다. 길거리에서 고양이나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를 못마땅하게 보는 세상의 편견과 싸우고 내용물이 터져 나온 쓰레기봉투에서 퍼져 나오는 냄새에 도리질하며 “제자리 지키려 전전긍긍하는”(「멜랑코리아 1」) 삶에 대해 명상한다. 어느 하루의 평범하고 희극적인 일화에 기초한 “심란하고 심각하고 심심한” 내용을 시로 써놓고 “이래 봬도 발견과 성찰의 시”(「심란하고 심각하고 심심한 시」)라며 자조 섞인 너스레를 늘어놓는다. 연륜의 증가와 더불어 죽은 사람이 찾아오는 꿈을 꾸고 주위에서 하나둘 사라져 가는 오래된 가게를 추억하며 거기서 일하던 착한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럼에도 이 고양이 중독자는 빠르게 일직선으로 내달리는 세상의 진행 과정을 조금이라도 방해하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는다. 시인이 조금은 무모하고 많이는 대책 없는 자신의 고유한 삶에서 빚어낸 “예쁜 종아리”, 즉 그녀의 시들이 바로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그녀의 ‘탄성의 시학’이 도달한 곳에 “마음 가는 대로/시작되는 곳에서 시작하고/그치고 싶은 데서 그쳐도 그만”(「에세이의 탄생」)인 그녀만의 에세이-시가 탄생한다. 보라, 새가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듯이 시인은 시를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어느새 이 시인은 그런 경지에 이르렀다.” ―남진우, 심사평 일부

 

“제5회 〈김종철문학상〉 수상작인 황인숙의 『내 삶의 예쁜 종아리』는 시인의 천성적인 자유로움과 발랄함에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가 보태져 묵직한 감동을 전해준다. “처음이긴커녕 단골 중에 상단골/슬픔인 듯 고통이여, 자주 안녕/고통인 듯 슬픔이여, 자꾸 안녕”(「Spleen」)이라고 무심히 말하지만, ‘자주’와 ‘자꾸’라는 부사어 사이에 축적된 슬픔과 고통의 무게는 만만치 않다. 고통의 무게와 중력을 부력(浮力)으로 바꾸는 시인의 비결은 무엇일까. 주눅 들지 않는 마음의 명랑함과 그것을 표현하는 말의 경쾌한 리듬과 탄성(彈性). 이러한 시인의 특장이 예전보다 약해졌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원숙의 징표로 받아들였다.

이번 시집에는 고양이나 새뿐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오르막길이 많네/게다가 지름길은 꼭 오르막이지/마치 내 삶처럼”(「내 삶의 예쁜 종아리」)이라고 말할 때 자기 연민과 타자에 대한 공감은 분리되지 않는다. 「동자동, 2020 겨울」 밤거리에서 만난 한 노숙자의 배고픔을 떠올리며 “낮고 외롭고 쓸쓸한/당신, 우리”라고 탄식하거나 「어디 사는지 모른다」에서 심야 편의점 알바 청년이나 청소 미화원이나 신문 배달원 등과 ‘나’를 묶어 “우리는 밤에 산다”고 말한다.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눈동자를 오래 바라보는 시인의 섬세한 감각 덕분에 그 존재들은 무겁고 딱딱하지 않게, 감상적이거나 상투적이지 않게 되살아난다.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구어체나 대화체, 잦은 의성어와 의태어, 감탄사들이 이상하게 황인숙의 시에서는 잡음이나 군더더기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 다정하고 명랑한 묘사에 이끌려 읽는 이도 어느새 슬픔의 친족이 된다. 삶의 오르막길에서 다져진 시의 “예쁜 종아리”가 오래 굳건하길 바라며,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나희덕, 심사평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