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우리 어머니

김종해, 김종철 지음

브랜드 문학수첩

발행일 2005년 5월 8일 | ISBN 8983921781

사양 152쪽 | 가격 8,000원

분야 시집

책소개

이 시집은 나란히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인이며, 출판사를 경영하고, 문예지를 발행하고 있는 형제시인, 김종해 ․ 김종철 시인이 어머니를 기리는 사모곡 시편이다. 우리나라 문단에는 형제 시인이나 형제 작가들이 더러 있긴 하지만 김종해 ․ 김종철 형제 시인처럼 현역으로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며 한국문단에 새로운 기운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노력하는 형제 시인은 드물며, 게다가 이렇게 형제가 마음을 모아 한 권의 시집을 엮은 예는 더욱 드물 것이다. 

 

이 시집은 두 형제 시인의 어머니를 위한 기도이자,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바치는 예찬이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 시절,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 한 사람을 쓰라고 했을 때, 당당하게 ‘어머니’라고 적었던 어린 두 형제는 이제 초로의 신사가 되어 어머니를 그린다. 한끼를 굶고 냉수 한 사발 쭉 들이키며 허기를 채우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던 그 시절, 어머니는 시장 어귀에서 떡장수, 국수장수를 하며 사남매를 키우셨고, 아이들은 물지게로 물을 길어 나르고, 절구통의 떡을 치고, 맷돌을 돌리고, 콩나물에 물을 주며 어머니를 도왔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어머니를 그리고 아파했던 마음을 시로 담아냈던 형제 시인이 어머니에 관한 시를 각각 스무 편씩을 골랐고, 한 편 한 편 마다에 경희대 김재홍 교수가 친절하게 시해설을 덧붙였으며, 서울대 장경렬 교수가 그들의 작품 세계를 깊이 있게 짚어주었다.

 

맷돌을 돌린다

숟가락으로 흘려넣는 물녹두

우리 전가족이 무게를 얹고 힘주어 돌린다

어머니의 녹두, 형의 녹두, 누나의 녹두, 동생의 녹두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녹두물이

빈대떡이 되기까지

우리는 맷돌을 돌린다

충무동 시장에서 밤늦게 돌아온

어머니의 남폿불이 졸기 전까지

우리는 켜켜이 내리는 흰 녹두물을

양푼으로 받아내야 한다

우리들의 허기를 채우는 것은 오직

어머니의 맷돌일뿐

어머니는 밤낮으로 울타리로 서서

우리드의 슬품을 막고

북풍을 막는다

녹두껍질을 보면서 비로소 깨친다

어머니의 맷돌에서

지금도 켜켜이 흐르고 있는 것

물녹두 같은 것

아아,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 김종해, 「어머니의 맷돌」전문

 

이 한 편의 시는 김종해와 김종철 두 형제 시인이 거쳐야 했던 유년기와 소년기의 삶이 얼마나 신산한 것이었던가를 미루어 짐작케 해준다. 어린시절이었던 1940-50년대, 가장 궁핍했던 시대를 건너오면서 겪었던 한국의 시대적 상황과 스산했던 삶의 어려움을 한 폭의 풍속화처럼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전하고 있는 이 시에서 ‘맷돌’은 힘주어 돌려야 겨우 돌아가는 삶 또는 견디기 어려운 무게로 압도해 오는 삶 그 자체를 암시하고 있다. 소년 김종해가 형과 누나와 동생과 함께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녹두물이 / 빈대떡이 되기까지” 맷돌을 돌리는 것은 “충무동 시장”에서 “밤늦게”까지 ‘장사’를 하는 어머니의 무거운 짐을 덜어드리기 위해 힘겹게 맷돌의 돌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고달픈 삶을 몸으로 견디어 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아직 둥지 안의 새끼 새들의 삶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어린 시인은 말한다. “우리들의 허기를 채우는 것은 오직 / 어머니의 맷돌일 뿐”이라고.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녹두물”에 뒤덮인 채 ‘스스로’ 돌아가는 맷돌, 힘겹지만 스스로 돌기를 멈추지 않는 맷돌은 곧 어머니 자신인 동시에 그녀의 삶인 것이다. “녹두물처럼 흘러내리는 눈물”에, 아니, 녹두물처럼 흘러내리는 ‘땀’에 자신의 몸과 삶을 맡긴 어머니인 것이다. 그러나 어린 시인은 “지금도 켜켜이 흐르고 있는 것 / 물녹두 같은 것”이 다름 아닌 “사랑”이었음을 당시에는 아직 깨닫지 못했다. 그리하여 깨달음이 때늦은 것임에 아쉬워하는 시인의 마음이 “아아”라는 탄식을 이끈 것이다. 바로 이 같은 때늦은 깨달음이 세상의 모든 아들과 딸을 슬프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이 어머니를 여윈 후에 왔다면 이로 인한 슬픔은 정녕 감당키 어려운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

사십이 넘도록 엄마라고 불러

아내에게 핀잔을 들었지만

어머니는 싫지 않으신 듯 빙그레 웃으셨다

오늘은 어머니 영정을 들여다보며

엄마 엄마 엄마, 엄마 하고 불러 보았다

그래그래, 엄마 하면 밥 주고

엄마 하면 업어 주고 씻겨 주고

아아 엄마 하면

그 부름이 세상에서 가장 짧고

아름다운 기도인 것을!

                       ―김종철, 「엄마 엄마 엄마」 전문

 

위 시에서 시인 김종철은 “엄마”란 말이 “그 부름이 세상에서 가장 짧고 / 아름다운 기도”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러한 깨달음은 아직 어머니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행운아나 김종철 시인과 같이 어머니를 저 세상에 보내고 애끓어 하는 모든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시를 읽다 보면 그런 깨달음이 “엄마 하면 밥 주고 / 엄마 하면 업어 주고 씻겨 주”는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읽힌다는 데 있다. 깨달음의 계기가 그러하다면, 이는 지나치게 유아적인 것이 아닐까. 사실 이 시의 묘미는 자신의 나이를 뛰어넘어 홀연 유아로 변신하는 시인을 짚어볼 수 있다는 데 있다. “엄마”를 부르는 순간 시인은 이미 “사십”을 넘긴 어른이 아니다. 그는 다만 “엄마” 앞의 한 어린아이일 뿐이다. 그 어린아이가 마음의 눈으로 본 어머니는 바로 “엄마 하면 밥 주고 / 엄마 하면 업어 주고 씻겨 주”는 그런 “엄마”인 것이다. “사십”을 넘긴 어른이 어린아이의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시인은 현실과 관념의 일방적 간섭과 방해를 뛰어넘어 ‘어린 아이’가 된다. “엄마 하면 밥 주고 / 엄마 하면 업어 주고 씻겨 주고”라는 구절에서 시인은 이미 “엄마”의 품 안에 안겨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한 것은 바로 “엄마”라는 그 신비로운 “부름”이다. 시인에게 “엄마”는 하나님의 ‘말씀’과 같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세기 1장 3절)라는 성경의 구절이 암시하는 기적이 우리 인간에게도 가능하다면 그것은 바로 “엄마”라는 신비한 부름 때문이다. 그 부름이 우리에게 또 하나의 세계, ‘보기에 좋은’ 따뜻하고 아늑한 세계로 불현듯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그 부름이 세상에서 가장 짧고/ 아름다운 기도”임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다. “엄마”라는 말은 단지 세상의 모든 아들과 딸에게 푸근함과 부드러움, 따뜻함과 편안함만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나이 먹은 어른이라고 하더라도 그를 즉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도 “그 부름이 세상에서 가장 짧고 / 아름다운 기도”이다.

 

부산 천마산 아래 초장동 산비탈에 옹기종기 모여 살던 시절, 한밤에 잠이 깨어 옥수수밭에서 밤똥을 누는 아이 곁을 지켜 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에서처럼, ‘어머니’는 우리들 모두에게 개별적이며 유일한 의미를 지니는 존재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세상의 모든 자식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고, 삶의 온갖 고통과 절망을 이겨 나아가게 하는 분이다. 어머니는 어느 한계를 뛰어 넘는 순간사랑과 희생의 초월적 표상으로 영원히 되살아나, 자식들이 살아가는 현실세계의 힘이 되고, 위안이 되고 희망이 된다. 꿈같고 동화 같은 세월, 가난했지만 아름다운 유년시절을 그리워하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 ‘어머니’를 불러보는 형제 시인의 시집에는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때늦은 후회가 점칠 되어 있다. 이 같은 때늦은 깨달음은 세상의 모든 자식들을 슬프게 하고, 더욱이 어머니를 여윈 다음에 찾은 깨달음일 때는 “청개구리의 슬픔”처럼 정녕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되고 만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며, 오늘 열 손가락 중 하나였던, 그 잇자국 선명한 사랑 하나가 보고 싶다는 시인의 절규가 깊은 우물 안의 메아리처럼 너울진다.

 

이 시집의 작품해설을 맡은 장경렬 교수는 이 시집이 출간되면 “나는 한 권 들고 한 마리 새가 되어 ‘기우뚱 기우뚱’ 어머니를 향해 날아갈 것이다. 그리고는 날개를 접고 달려가, 어릴 때와 달리 이제는 내가 어머니를 안을 것이다. 문을 열고 나를 맞는 어머니를 힘껏 안을 것이다. 50여 년 전에 느꼈던 푸근함과 부드러움, 따뜻함과 편안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환한 웃음을 새삼 다시 맛보기 위해, 여전히 ‘엄마’를 부르면서 말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목차

김종해 시편

사모곡

어머니와 설날

가족

부산에서

별똥별

시루떡

손빨래

어머니의 맷돌

항해일지 22

어머니의 아침 1

어머니의 아침 2

마지막 항해

가족 모임

찔레꽃 2

그녀의 우편번호

섬 하나

어머니의 날개

제삿날

개동백 꽃잎으로 피다가

항해일지 26

김종철 시편

청개구리

종이배 타고

엄마 엄마 엄마

조선간장

사모곡

만나는 법

닭이 울 때

소녀경처럼

옥수수밭 너머

죽음의 둔주곡 三曲

죽음의 둔주곡 八曲

내 잠의 눈썹에

해뜨는 곳에서 해지는 곳까지

금요일 아침

어머니가 없다

간밤 꿈속에서

목련지는 날

죽은 산에 관한 산문

– 작품해설 / 장경렬(서울대교수, 문학평론가)

작가

김종해 지음

김종철 지음

1947년 부산 출생으로 1968년 한국일보, 197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었다.

1990년 윤동주문학상 본상, 1992년 제4회 남명문학상 본상, 같은 해에 제3회 편운문학상 본상을 수상하였으며, 2001년에는 제13회 정지용문학상 본상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 『서울의 유서』 『오이도』 『오늘이 그날이다』『못에 관한 명상』『등신불』 영문시집 『The Floating Island』(EDITION PEPERKORN 간)가 있다.

현재 경희대 대학원 겸임교수, 한국시인협회 이사로 활동중이며, 종합문예지 계간《문학수첩》을 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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