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의 아름다움

정영선 지음

브랜드 문학수첩

발행일 2006년 2월 10일 | ISBN 8983921935

사양 347쪽 | 가격 9,000원

분야 국내소설

수상/선정 우수문학도서(한국문화예술위원회)(2006년 2분기 소설)

책소개

훼손된 관계, 환멸의 글쓰기

 

1980년대 중반 페미니즘 이론의 유입과 더불어 거대담론의 붕괴로 촉발된 사회운동의 영향으로 우리 문학에도 본격적인 여성 문학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이전의 여성 문학이 여성 문법의 개발과 남성적 억압 구조의 의식화라는 문학적 성취를 쌓아 왔다면, 1990년대의 여성 문학은 여성내면의 탐구와 가부장적 가족 제도로부터의 탈출 욕망을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냈고 2000년대의 여성 문학은 발칙하고 도발적인 상상력으로 한껏 가벼워지고  있다.

그러나 등단 10년 만에 첫 창작집 『평행의 아름다움』을 펴낸 정영선은 이러한 도도한 흐름을 거부한 채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우선 그녀가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는 위악과 폭력으로 일그러져 있거나 해결의 기미를 찾아볼 수 없는 전망부재의 세계이다. 그리고 소설을 지탱하고 있는 서사는 아이러니와 풍자를 바탕으로 한 수수께끼와 같은 미로의 형식으로 진행되고, 비대한 권력으로 점철된 남성지배 체계와 세계의 폭력에 좌절할 수밖에 없는, 전망이 소거된 현실주의를 담고 있다. 정영선은 원초적으로 훼손된 남녀의 폭력과 위악의 관계 양식을 통해 2000년대 여성 문학의 새로운 자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불가능한 낭만적 사랑에 대한 동경

 

정영선의 소설은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뚜렷한 전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채 위악과 폭력을 세상을 실상으로 인식하고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관계는 원초적으로 훼손되어 있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표제작「평행의 아름다움」에서 보여 지는 두 부부의 관계는 자본의 권력과 가부장적 권력에 의해 와해된 관계로, 불구적 의존과 예속으로서의 결혼이라는 관계양식이 전제되어 있다. 여성들은 가부장제의 희생물이 되거나 자본의 물신에 종속되어 있고, 가문과 계급, 지위 등의 사회적 조건들이 진정한 사랑의 이데올로기를 추상과 환상의 영역으로 밀어낸다. 불가능한 사랑에 대한 낭만적 동경이 바로 그것인데, 이때 작가는 불평등한 관계를 돌파하는 새로운 주체를 찾는 대신에 불평등한 관계 양식의 환멸성에 천착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녀의 인물들은 폭력적이고 불평등한 세상의 질서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오히려 세상의 폭력적 질서를 모방하고 추종한다. 이는 개인의 좌절이라기보다는 사적 욕망에 사로잡힌 인물들의 존재적 추락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맹인모상」의 경우 어린 딸을 잃은 남자와 아버지에 대한 성폭력의 상처를 안고 있는 여자의 관계가 그려져 있다. 아버지뻘의 남자와 딸쯤되는 여자의 관계는 권력에 의한 성적 지배라는 위선과 권력을 성과 바꾸는 위악의 교환관계로 사랑을 권력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환멸이 짙게 깔려있다. 「속 난중일기」역시 국가 정보기관에서 근무하면서 도청, 고문 등 불법적 행위는 일삼는 권력의 주구로 폭력의 논리를 신봉하는 주인공은 사회를 폭력에 의해 세워진 질서로 인식한다. 그리고 그에게 가족 또한 친밀성의공간이 아닌 권력 공간이며 따라서 새도-매저키즘이 가족을 지배하는 내적 원리로 작동한다.

 

가족과 모성의 신화는 없다

 

정영선의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가족은 더 이상 피난처로서의 안식을 주는 개념의 가족이 아니다. 소설 속에서 가족은 폭력에 의한 지배관계와 훼손되고 타락한 관계로 겹쳐져 있으며, 친밀성보다는 자본과 권력에 의한 지배 구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 구조 안에서 가족들은 가족 내부의 폭력에 의해 트라우마적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고통은 다시 자발적 선택을 통해 단절되고 해체되는 사회적 폭력으로 재연된다. 등장인물들 역시 속악적이고 남성적 폭력에 종속됨으로써 오히려 존재의 의미를 찾는 피학증적 타자들이다. 작가는 상처에 사로잡혀 사유와 정체성을 상실해 가는 여자들의 군상을 통해 더 이상 가족과 모성의 신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항변하고 있다. 「로취베이트」나 「그림자 살인」의 인물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소통불가의 관계 속에서 여성들은 불순하거나 비굴하거나 성적 방종을 일삼으며, 남성 중심의 폭력적 질서에 대한 하나의 알리바이 역할을 하며 성 정체성이 왜곡되어지고 있다. 작가 정영선이 지향하는 이 불온한 작품들은 음모와 폭력의 세계에서 고통 받고 상처 입은 이들의 삶을 효과적으로 기록하며, 세상과 동화하지 못하는 이들의 생경함과 황량함을 통해 우리 삶의 스산한 풍경들을 묘사하는데 있다 하겠다. 그간 타성에 젖었던 우리 여성문학에 독특하고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작가 정영선의 행보를 주목해주기 바란다.

목차

작가의 말맹인모상속 난중일기그림자 살인평행의 아름다움겨울비로취베이트작품해설/구모룡

작가

정영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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