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 레몬

임혜기 지음

브랜드 문학수첩

발행일 2006년 4월 27일 | ISBN 8983922036

사양 348쪽 | 가격 9,000원

분야 국내소설

책소개

하이테크 시대에 펼쳐지는 불안한 사랑의 고전적 원형

 

뉴욕에서 활동 중인 작가 임혜기의 신작소설 『열려라 레몬』이 (주)문학수첩에서 출간되었다. 작가는 그동안 많은 작품과 에세이를 통해 사랑과 욕망, 성에 대한 치밀하면서도 깊이 있는 사유의 영역들을 보여주었는데, 이번 소설 역시 그러한 맥락을 유지하고 있다. 작가는 머리말에서 사랑의 방식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사랑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했다고 말하면서, 하이테크 시대의 연애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쓰고 나니 정작 사랑의 고전적 원형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고 고백한다. 인류의 역사와 같이해온 사랑의 존재론적 주제에는 더 이상의 진화가 없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고수하면서도 사랑에 대한 욕망을 감추지 않는 주인공은 작가의 말대로 ‘요즘 여자’를 대변한다. 주인공 현신애는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을 위해 노력하지만 정작 그 성공의 의미를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현대 여성의 정체성과 일상의 합리적 계산에만 익숙할 뿐 감정의 제어에는 능하지 못한 평범한 여성이다. 그리고 현신애와 관계를 맺고 있는 제이나 노 박사, 문교수 역시 성공과 안정의 기회를 저버리기 싫어하며, 사랑의 열망을 애써 다스리는 현실적인 ‘요즘 남자’이다. 이렇게 평범한 남자와 여자가 뉴욕을 배경으로 펼치는 사랑 이야기는 그리 낯설지 않다. 이는 뉴욕이라는 공간이나 서울이라는 공간이 모두 근대성의 상징일 뿐 더 이상의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다루고 있는 주제가 앞서 지적한 대로 사랑의 고전적 원형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가 이번에 말하는 사랑은 이전의 방식에 비해 좀 더 쿨하고 예민해졌지만 여전히 사랑이라는 영원한 주제의 변주에 불과하다. 

 

작가가 자신의 대리인격인 주인공 현신애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세계는 ‘여건에 맞는 친숙한 사랑’이다. 그러나 그녀의 사랑은 순수한 섹스를 원하는 남자와 더러운(?) 플라토닉을 찾는 나의 갈등으로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언제든 쉽게 새로운 시작의 기회를 찾는다.

 

누구에게든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와 그 충족을 위해 숱한 갈등을 겪는다. 하나 오늘 사랑받는 건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사랑해야 한다. 나의 감정을 움직여 사랑하는 것이 사랑받는 것보다 찬란하고 황홀할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에 숨은 사랑의 고통을 두려워한다. 그 고통에서 도망치려고 사랑을 외면한다. 사랑을 주지 말고 안 받아도 좋다는 무생물이 되려 한다.   – 본문 119쪽 

 

삶의 근본적 공허와 부유하는 성(性)

 

사랑의 책임성, 성실성, 집착성 같은 속성을 무시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하는 경계인인 주인공은 이혼녀로서 생의 근본적인 공허함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뉴욕에서 펼치는 사랑은 제도화된 기성의 눈으로 볼 때 매우 혼란스럽고 부도덕한 형태의 사랑이지만  작가는 이 사랑에 삶의 근본적 공허를 투영시키고 오히려 그것을 옹호한다. 뉴욕이 무대라는 점도 이러한 공허를 극대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작가는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축으로 하여 사랑이라는 복잡한 서사를 엮어내고 있는데, 특히 문학과 미술, 연극과 영화가 함께 어울리는 예술적 사변을 통해 근원을 알 수 없는 허무를 앓고 있는 도시 현대인들의 본질적 내면을 격자무늬로 설명해준다.

 

작품해설을 맡은 권영민 교수도 지적하였지만 이 작품에서 드러난 성에 대한 관점은 명백하게 페미니스트의 그것이지만 페미니즘 이전의 본원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즉 성에 대한 자유화 경향이 가족의 위기라는 또다른 사회 현상과 맞물려 성이라는 것이 쾌락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여성의 권리인지, 성이 선택의 영역인지 의무의 영역에 놓여 있는지를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인공은 여성의 성적 권리를 보장해주는 결혼과 가정에 대한 불안을 통해 정통적 가치를 상실해가고 있는 가족의 문제에 보다 밀도 있게 접근하고 있다. 

 

또한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것은 등장인물들인데, 그들은 하나같이 파편화된 인간상을 지닌 이들로, 언뜻 깊이 있는 자의식의 소유자들로 보이지만 사실 그들의 내면에는 이렇다 할 깊이가 없다. 인간의 본원적 깊이나 진지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고 오히려 기이하고 우발적인 모습으로 왜곡된 자의식의 인물들이다. 이는 그들이 변화해가는 현실에 지배당하는 부정형적 삶의 이미지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사를 주동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신애는 자신의 삶의 지표가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혼란스러워하며, 그녀의 사회적 근거도 불분명하다. 개인적 삶의 사회적 조건을 규제해온 가정이라는 사회단위에서 벗어나 있는 그녀는 사회의 구속력에서 벗어나 부유하는 삶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자기 내부의 상념에 따라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그 행위에 필연성보다는 상황성에 근거하는 경우가 다수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는 정통적 서사가 보여주었던 인과적 논리가 철저하게 거부당하고 상황의 변화에 따른 내밀성의 천착으로 인해 서사가 해체되는 경향마저 보인다. 이야기는 연속성에서 벗어나 단편적으로 재단되어 일종의 콜라주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는 경험적 현실 세계의 다층성과 가변성 그리고 불연속적인 자의성을 드러내기 위해 작가가 의도적으로 고안한 하나의 전략으로 읽힌다. 삶에 의해 폭로되는 일상성의 문제와 인간의 근본적 허무와 환멸은 열정적 사랑과 욕망이 오히려 결핍과 부재의 다른 이름임을 알려준다. 결국 작가는 미로와 같은 도시 한복판을 부유하는 사랑에 대한 의미 평가를 유보한 채 우리에게 그 답을 강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목차

작가의 말그 인물컬러리스트이별이 두려워 사랑을 피하랴질투는 나의힘게리슨의 강물그리움 뒤에 숨는 법과격하다고?노블레스 피규린준비와 기회의 동침아픈 마음을 달랠 수 있다면돌아오기 위한 여행애플 하우스한결같은 모습으로꿈을 위해서험한 코스시시 비난파워 런치화가와 모델추억을 수집한단다色의 미학혼인 약정서모던 러브작품해설 – 권영민

작가

임혜기 지음

서울 출생으로 진명여고, 이대 정외과를 졸업했다.
1974년 뉴욕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뉴욕 한국일보 기자 등을 역임했으며, 1980년 뉴욕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노객]이 당선되었다.
장편소설로 [셋은 언제나 많고 둘은 적다][사랑과 성에 관한 보고] 수필집[결혼한 여자의 자유][여자가 왜 술 마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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