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촛불 켜기

김문희 지음

브랜드 문학수첩

발행일 2007년 8월 31일 | ISBN 9788983922489

사양 135쪽 | 가격 7,500원

분야 시집

책소개

이민의 삶, 그 안과 밖에서 일상의 숨결이 담긴 진지한 명상과 작지만 소중한 깨달음의 시 세계 로스앤젤레스에 30여 년 동안 거주하며 이민의 삶을 시 속에 녹여 내고 있는 시인 김문희의 시집『당신의 촛불 켜기』가 (주)문학수첩에서 출간되었다. 고국을 떠나 언어와 문화가 전혀 낯선 환경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민자의 삶. 당장 뿌리를 내리고 먹고사는 문제만으로도 정신이 없는, 그리고 그것이 해결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뛰어넘어야 할 장벽으로 남아 있는 언어와 문화의 벽 앞에 서게 되는 이민자들에게 문학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사치일 수도 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시인 김문희의 시 세계는 예사롭지 않다. 무엇보다도 그는 오랜 이민의 삶에도 불구하고 시 창작에 대한 열정의 끈을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단순히 열정의 끈을 놓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의 시 세계가 예사롭지 않은 것만은 아니다. 그의 시에서 우리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모국어와 만날 수 있는데, 그 점에서도 그의 시 세계는 예사롭지 않다. 적지 않은 경우, 오랫동안 모국에서 떠나 생활하다 보면 모국어 감각은 알게 모르게, 또는 미세하게나마 퇴화하게 마련이다. 아니, 퇴화하지 않더라도 정체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언어란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끊임없이 변하지만, 오랫동안 모국을 떠나 있는 경우 이 같은 변화를 예민하게 자신의 것으로 육화(肉化)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모국에서 생활하는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이민 사회에서 창작된 문학 작품의 언어는 어딘가 어색해 보일 수도 있고, 또는 시대에 뒤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실로 김문희의 시 세계는 이 같은 선입견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 주는 즐거운 예외 가운데 하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총 68편의 시를 담고 있는 김문희의 이번 시집이 아우르고 있는 시 세계는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체험할 법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마음의 움직임에 대한 기록으로서의 시 세계고, 다른 하나는 이민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독특하게 체험할 수 있는 마음의 움직임에 대한 기록으로서의 시 세계다. 물론 양자에 대한 구분은 지극히 자의적(恣意的)인 것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문화 공간에서 체류하며 활동하는 시인들의 시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시적 정조와 문제의식이 김문희의 시 세계에서 확인됨을 부정할 수는 없다. 어떤 특정한 곳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을 것인가라는, 이민자의 제1의 문제를 주차에 비유한 시 「주차하기」, “목마른 더위를 견뎌야” 하는 곳에서의 삶, 다시 말해, 사막에서의 삶과 같은 이민의 삶을 노래한 「선인장의 꿈」 등 그의 시 곳곳에는 이미자로서 느낄 수 있는 단상들이 가득하다. 메마른 사막 한가운데에서 때로는 고통스러움에 마음이 쩍쩍 갈라지기도 하고 때로는 자기 방어를 위한 가시도 세워야 하는, 이미 뿌리를 깊게 드리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살아야 하고, 때로는 자존심을 죽인 채 살아가야 하는 삶일 수도 있는 분주하고 각박한 이민의 삶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김문희의 시 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은 이민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체험하는 마음의 움직임에 대한 기록뿐만이 아니다. 그의 시 세계에는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체험할 법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마음의 움직임에 대한 기록으로서의 작품도 적지 않다. 누구에게나 추억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추억이 추억임은 분주한 일상의 삶 뒤편에 숨은 채 좀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추억이 추억임은 분주한 일상의 삶 뒤편에 숨어 있다가 불현듯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김문희의 시 세계에서는 이처럼 무언가의 계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 풍경을 관찰하고 이를 시라는 거울에 생생하게 비춰 내는 예가 적지 않다. 「정전」이라는 시에서 시인이 자신의 내면 풍경을 되돌아보는 데 계기가 되고 있는 것은 “촛불”이다. 김문희에게 있어 “촛불”은 곧 시를 상징한다. 즉, 시가 있기에, 또는 누군가가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기에, “어질러진 실내가 아름다워 보이고 / 때 묻은 커튼과 먼지 묻은 창문도 / 추억의 연극이 오르는 아름다운 무대”가 될 수 있다. 말하자면, 각박하고 고단한 삶조차 어느 사이에 아름다운 빛에 감싸일 수 있다. 아니, 시가 있기에, 우리는 “사는 일이 아름다운 것”일 수 있음을 깨닫기도 하고, “찬찬히 나를 바라볼 수”도 있다. 분주하고 야단스러운 “밝은 불”에서 벗어나 “때때로 촛불을 켜고 앉아서 / 찬찬히 나를 바라”보는 것, 이것이 바로 시를 읽거나 쓰는 일이 아니겠는가.

작가

김문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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