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보다 소중한 것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하연수 옮김

브랜드 문학수첩

발행일 2008년 7월 15일 | ISBN 9788983922830

사양 340쪽 | 가격 9,800원

분야 비소설

책소개

“단기간에 이토록 많은 글을 쓴 건 작가가 된 이래 20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그가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장르로 돌아왔다. 소설, 에세이, 여행기 모두를 포용하면서 그 어떤 형식도 표방하지 않는 거침없는 문장. 『승리보다 소중한 것』에는 하루키가 아니라면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하루키는 말한다. 자신의 철학은 “나중에 생각해도 되는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가고 싶은 곳에 가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 그가 지구의 반바퀴를 돌아 23일 동안 시드니에 머물면서 원고를 썼다면 어떨까? 그것도 매일매일, 원고지 30매씩을!

 

하루키의 과감한 시도의 결과물

“내일, 내일, 그리고 또 내일. 우리는 계속 싸워 나가야 한다”

 

하루키는 ‘올림픽을 취재해 보지 않겠냐’는 잡지사의 의뢰를 받고 취재 기자 자격으로 시드니행 비행기에 오른다. 하지만 자유로운 영혼으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작가가 쓴 올림픽 관전기라면 평범하지만은 않을 터.

이 책의 프롤로그는 뉴저널리즘의 기법으로 일인칭과 삼인칭을 오가며 시작된다. 마라톤 코스를 달리는 선수의 시선이 작가의 시선과 겹쳐지고 때로는 분리되면서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시드니 일지”라는 제목의 본문은 하루키가 시드니에 머물며 매일매일 현지에서 전송한 원고로 묶여 있다. 전문가 못지 않은 시선으로 현장감 넘치는 스포츠 경주를 묘사한 부분도 주목할 만한 요소지만, 하루키의 시선은 스포츠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매일 신문을 보며 상어에게 공격을 받은 사람 이야기나 보석상을 턴 도둑 이야기 등의 가십거리를 소개하기도 하고, 트라우마를 겪는 코알라나 수족관에서 만난 동물들에 대한 감상으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독특한 시점으로 호주의 역사를 해석한 부분은 하루키가 아니라면 결코 쓸 수 없었을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 에필로그는 취재 형식을 빌려 선수에게 작가 자신을 투영하며 적어 내려간다.

 

현장감 넘치는 묘사의 진수 _“그건 정말로 일종의 영원이었다”

취재기자의 신분으로 시드니에 머물게 되었지만 하루키는 지루함과 태만을 오간다. 날씨가 안 좋다는 이유로 경기를 보다가 돌아와 버리고, 10만 엔이나 하는 개회식을 보다가는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나와 버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루함의 연속 속에서 탄생하는 순수한 감동”을 놓치지 않으며 현장감 넘치는 생생한 문장으로 감동을 이끌어낸다. 마치 현장에 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다카하시 나오코의 마라톤과 캐시 프리먼의 경주 장면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역시 하루키!”라는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국민 영웅으로 살아가는 선수들의 고독과 고뇌, 영원과도 같은 순간의 침묵, 응원 소리조차 낼 수 없는 경기 직전의 긴장감이 그대로 전달되어 숨조차 크게 쉴 수 없는 것이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함성이 울려 퍼진다. 그녀 안에서 뭔가가 녹아내린다.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녹기 시작한다. 그 순간 캐시 프리먼이 깊이 고민하고 상처받고 방황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무거운 짐을 메고 있었던 것이다.

경기장에 있던 11만 명의 관중도 똑같은 감정을 느낀다. 우리는 모두 거대하고 따뜻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한 명의 여성이 400미터를 뛰는 것만으로 이처럼 거대한 감동을 만들 수 있다니…….”   – 본문 중에서

 

하루키식 유머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핸드볼 경기를 보며 골키퍼를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하루키 특유의 진지함과 유머를 동시에 맛볼 수 있다.

“예금통장과 인감을 거머쥔 주부처럼 골문을 사수한다. 골키퍼들의 영혼은 진공 속의 고독한 바위섬이며 육체는 무자비한 공을 맞는 골대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핸드볼의 골키퍼만큼은 되고 싶지 않다.”    – 본문 중에서

 

“나는 승리를 사랑하고 승리를 평가한다”

 

작가는 시드니에서의 23일 동안 ‘지루하다’는 태도를 견지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오늘날은 ‘지루함을 통한 감명(과 비슷한 것)’이 현실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정신적 충만감이 아닐까”라는 정의를 내린다. 인간은 공격 본능을 가지고 있어 이를 대리해소하기 위한 방책으로 스포츠에 열광하며, 끊임없이 투쟁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그 투쟁도 경우에 따라서는 충분히 지루하다는 견해를 펴는 것이다.

우리는 스포츠에 열광한다.

선수들을 위한 전용 스케이트장조차 없는 나라지만 김연아의 경주 장면을 보느라 밤잠을 설치며, 박태환의 신기록 소식에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진다. 작가의 말처럼 이것은 공격적인 본능을 대리분출하는 창구이기 때문일 수도, 대리만족일 수도 있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승리를 사랑한다. 승리를 평가한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기분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깊이’를 사랑하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때로는 승리하고 때로는 패배한다. 그리고 그 후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하루키의 과감한 시도의 결과물, 스포츠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목차

애틀랜타-아리모리 유코의 레이스

히로시마

시드니 일지

시드니 도착

성화 릴레이

마라톤 코스를 돌아보다

철인3종 경기 코스를 자전거로 돌아보다

개회식

여자 철인3종 경기

남자 철인3종 경기

싸움이 끝나고

브리즈번까지의 긴 여정

브라질전의 밤

똑같은 길을 따라 시드니로 돌아오다

유쾌한 포환던지기

보공 모스 이야기

드디어 여자 마라톤

다카하시 나오코의 기자회견, 캐시 프리먼의 우승

비 내리는 본다이 해변

마츠자카가 던져도 패하다

특집 프로 : 호주의 역사

시드니에서 보내는 편지

하루가 남았다

남자 마라톤과 폐회식

축제가 끝나고

안녕 시드니

가와노 감독의 시점

악몽과 레이스

뉴욕

저자후기

역자후기

참고 문헌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1949년 교토에서 태어나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하였다.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데뷔하여 첫 장편소설 『양을 둘러싼 모험』(1982)으로 노마문예신인상,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1985)로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수상하였다. 『상실의 시대』(1987)를 발표하여 하루키 신드롬을 낳았고, 『해변의 카프카』(2006)로 카프카상을 수상하였다. 하루키는 수많은 장 · 단편 소설과 에세이로 상실감을 느끼면서 타인과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사는 현대 젊은이들의 혼란을 그려 내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외 주요 저서로는 『태엽 감는 새』 『해변의 카프카』 『어둠의 저편』 『회전목마의 데드히트』 『빵가게 재습격』 『TV피플』 『렉싱턴의 유령』 『도쿄 기담집』 『먼 북소리』 『슬픈 외국어』 등이 있다.

하연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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