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종말 시리즈 3 - 크리스털 세계

책소개

하드코어 SF소설 대가 J.G.발라드 지구멸망 3부작 완결편
모든 생명체를 보석으로 바꾸는 충격적 이상자연현상

1960년대 SF소설의 주류이던, 과학적 지식을 앞세운 외적 우주(outer space)의 흐름을 인간 내면의 정체성 문제와 결합한 내적 우주(inner space)의 흐름으로 전환시킨 뉴웨이브 아버지 J.G.발라드의 초창기 대표작 《크리스털 세계》가 출간되었다. 《물에 잠긴 세계》 《불타버린 세계》에 이은 지구멸망 3부작의 마지막 편인 이 소설은 지구의 모든 생물들이 광물(크리스털)로 변하는 이상 자연 현상으로 지구의 멸망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시작된다. 발라드가 즐겨 쓰는 시간과 공간의 조작이 크리스털화 현상으로 발현된 이 소설은 수정으로 변한 생명체들의 풍경을 몽환적이면서도 매혹적으로 묘사해 내며 독자들을 환상 세계로 안내한다.
은하계에서 처음 관측된 반물질 현상이 지구에 반시간 현상으로 재현되면서, 아프리카 오지와 러시아, 미국 일부 지역에서 크리스털화 현상이 일어난다. 태양 빛을 흡수하는 듯한 이상한 돌풍은 모든 생물을 크리스털로 변화시키며, 크리스털로 변한 생물은 반 가사(假死) 상태에 빠져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가 된다. 크리스털이라는 공간 속에서 시간이 멈춰 버리는 것이다. 학자들은 모든 물질의 소립자가 급증해서 일어나는 ‘허블 효과’로 이 현상을 설명하지만, 이를 저지할 뚜렷한 대책은 없다. 크리스털화가 일어나는 지역의 반경은 매일 수백 미터씩 확대되고, 10년 내에 전 지구는 크리스털에 뒤덮일 것으로 보인다. 시간과 공간, 빛마저 삼켜 버리는 크리스털화 과정의 고요함과 공포가 주인공들을 옥죄지만, 전 우주적 현상 앞에 인간은 속수무책일 뿐이다.

 

아름답고 매혹적인 파멸, 수정으로 변해가는 생명체
다이아몬드 갑옷에 갇힌 크리스털 세계

이 소설에서 지구 멸망의 원인으로 제시된 ‘크리스털화(crystalizing)’는 우주로부터의 반물질 현상이 지구에 반시간 형태로 발현되어 나타난 현상으로 점차 그 영역을 확장되면서 태양에서조차 크리스털화가 관측된다. 그 어떤 대안도 찾지 못한 채 전 인류, 나아가 태양계의 모든 행성이 크리스털로 변해 운행을 멈추게 될 운명에 처한다.
그럼에도, 발라드가 제시하는 파멸은 너무나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태양 빛을 무지갯빛으로 반사해 내는 나무들, 루비의 눈을 가진 악어, 바로크풍 성전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숲 속 별장, 시간이 지나면서 다이아몬드로 변해 가는 신발 등은 흐릿한 만화경으로 본 풍경처럼 모든 것이 무지갯빛으로 빛나던 어린 시절 천상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발라드는 크리스털화가 빛과 어둠, 生(생)과 死(사), 옳고 그름을 나누던 인간들의 정신적 불균형을 해소해 주는 세상의 선물이라고 본다. 일시적이고 물질적인 존재에 불과한 인류가 스스로의 가치를 깨닫고 받아들이게 하는 크리스털화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안식을 제공한다. 때문에 주인공들은 다가올 현실을 황홀하게 인식며 오히려 심리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인다.
아이러니한 점은, 저자가 시공간이 합쳐지는 크리스털화와 유사한 현상을 나병 세포의 확장 구조에서 찾는다는 데 있다. 매개체를 통해 자가증식하는 나병 현상과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시간에 면역되어 있는 크리스털의 투명한 결정 구조는 살아남기 위해 자기복제를 계속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며,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가 될 지구의 운명 역시 사람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나병 환자들의 현실의 연장선에 있다.
나환자들이 마치 축제를 즐기는 것처럼 춤을 추며 크리스털화 지역으로 향하는 장면은 인류가 선택해야 할 미래를 암묵적으로 형상화하는,  언젠가는 맞이해야 할 파멸을 수용하는 인류의 모습을 희망적으로 그려 낸 장치다.

 

| 내용소개

나병 전문 병원 부원장 샌더스 박사는 내연의 여인이자 친구 맥스의 부인인 수전을 찾아 마타레 항구로 향한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나병 전문의지만, 나병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은 샌더스를 외톨이로 만든다.
샌더스는 수전 부부가 있는 몽 르와얄로 향하려 하지만, 이곳은 이상 자연 현상의 발발로 접근이 통제된 상태다. 몽 르와얄로 갈 방법을 찾으며 호텔에 머무르는 동안 샌더스는 정교한 크리스털 조각물들에 매료되고, 십자가를 감싸고 있던 크리스털이 갑자기 녹아내리는 걸 목격하는가 하면, 크리스털 보호 장구를 낀 익사체를 발견하는 등 이상 자연 현상의 실체에 조금씩 접근하게 된다.
사람들은 태양 빛을 흡수하는 것처럼 대낮에도 기이한 어둠에 잠겨 있는 몽 르와얄에 가는 것을 만류하지만, 샌더스는 알 수 없는 끌림을 느끼며 이상 지역으로 향하고, 이곳에서 풀, 나무, 동물, 사람을 비롯해 모든 생물을 크리스털로 만드는 기이한 자연 현상을 경험한다. 크리스털로 겹겹이 쌓인 정글은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며 매혹적으로 사람들을 유혹하지만, 사실 이 크리스털 현상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고통조차 느낄 수 없는 처지로 생물들을 박제하는 기현상이다. 설상가상으로 크리스털화 되었다가 가까스로 구출된 사람들은 끝없는 고통을 호소하며 다시 크리스털 갑옷에 갇히기를 희망한다.
샌더슨은 이 숲에서 24시간 병원을 운영하며 원주민들을 돌보는 수전과 맥스를 만나지만, 불치병에 걸린 이 지역 환자들은 치료를 거부한 채 크리스털이 되기를 자처하며 숲을 떠돌 뿐이다. 나병에 걸린 수전 역시 크리스털에 매료되어 이상행동을 보인다. 결국 수전은 나병에 걸린 환자들을 이끌고 사라반드 춤을 추면서 크리스털화가 진행되는 숲의 중심부로 향한다.
한편, 마타레 항구로 올 때 샌더스와 같은 선실을 썼던 벤트레스 역시 몽 르와얄에 나타난다. 그는 광산업자 토렌슨이 납치해 간 자신의 부인 세레나를 되찾기 위해 필사적이다. 샌더슨 박사는 토렌슨의 별장을 찾았다가 세레나가 심각한 결핵에 걸린 것을 알고 병원으로 옮기려 하지만, 토렌슨은 그녀의 죽음을 보느니 영원히 크리스털로 박제하고자 한다.
시간과 공간이 합일된, 반물질·반시간의 장소에 생물들을 가두는 크리스털화 현상은 찬란한 빛을 발하며 남은 사람들을 매혹하고, 이상 자연 현상의 원인도, 해결방안도 찾지 못한 사람들은 가까운 미래를 침묵으로 받아들인다.
간신히 크리스털 숲 밖으로 탈출했던 샌더슨 역시, 다시금 크리스털이 진행되는 지역으로 되돌아간다.

리뷰

| 언론 소개

아름다운 표현. 폭발적인 매력을 쏟아 내는 시인 발라드. – 안토니 버게스

발라드의 상상력이 발현해 낸 모든 미지의 영역 중에서 크리스털 숲이 가장 인상적이다. 금빛 꾀꼬리들이 보석 격자 시렁에 걸려 얼어붙고 사람들이 정복자처럼 다이아몬드 갑옷에 갇혀 버리는 크리스털 세계는 절대 놓칠 수 없는 마법 같은 곳이다. – 가디언

이 책의 목적은 점차적으로 환경에 굴복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거대한 보석 눈을 가진 눈 먼 비단뱀과 크리스털로 변한 숲에서 춤추는 나병환자들의 실감나는 묘사로 고대 천국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떨쳐 버릴 수 없는 병든 아름다움. 발라드는 그것을 유독 강렬하게 표현한다. – 옵저버

발라드는 독자들을 다시 한 번 자신만의 신비롭게 반짝이는 시적인 우주로 데려간다. – 선데이 텔레그래프

발라드의 스타일은 소설 속의 음울한 숲을 둘러싸는 보석들처럼 반짝이며 증폭된다. 그 스타일이야말로 그의 가장 강력하고 가장 개성적인 특징이다. 이 소설은 다른 말로 바꿔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한 꿈의 작품이다. – 브라이언 앨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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