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를 훔치다

이근배 지음

브랜드 문학수첩

발행일 2013년 12월 30일 | ISBN 9788983925039

사양 135x210 · 252쪽 | 가격 10,000원

분야 시집

책소개

사라져버린 시대의 아름다움을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되살리다

이근배 시인의 시집 『추사를 훔치다』가 출간되었다. 1961년부터 1964년 사이에 『경향신문』 『조선일보』 『서울신문』 『동아일보』 등 주요 일간지 신춘문예에 시, 시조, 동시 등이 당선된 이후 52년 시력(詩歷)을 이어온 한국 시문단의 터줏대감인 시인이 9년 만에 출간하는 새 시집이다. 유교적 정서가 담긴 시어들로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을 아우르는 온고지신의 정신을 시에 담아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추사 김정희와 방랑시인 김병연 등 우리 국토의 미학을 향기로운 붓으로 그려낸 유선(儒仙)들을 통해 사라져버린 시대의 전통과 아름다움을 구현한다.
이 땅의 산과 물, 역사, 사람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솜씨가 빚어낸 글씨, 그림, 청자 백자 등의 예술품들이 꿈자리를 어지럽히고 귓속말로 혼을 두드려 이번 시집을 펴내게 되었다고 서문에서 밝힌 시인은, 그 소중한 것들의 부름에 값할 말을 찾기 어렵다며 자기 자신을 낮춘다. 그러나 <한국문학작가상> <고산문학상> <만해대상>을 수상하는 등 오랫동안 자신만의 시세계를 문단과 대중에게 인정받아온 시인은 “사람의 생각이 우주의 자장을 뚫고 만물의 언어를 캐내는 것”이 자신의 시작(詩作) 정신임을 이번 시집을 통해 확고하게 밝히기도 한다.
독자들을 한 세기 전의 유연한 묵향 속으로 돌려놓는가 하면, 우리 사회가 속도와 실용성만을 강조하면서 잃어버린 여유와 기품의 정신을 시를 통해 고스란히 전한다.

전통적 가치에 바치는 뜨거운 헌사

우리 고유의 정신을 찾는 과정에서 세계의 본질과 진실을 발견해나가는 이근배 시인의 시정신은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율곡의 『격몽요결』을 통해 어린 시절 시인을 훈육한 할아버지, 그리고 “나라 찾는 일 하겠다고/감옥을 드나들더니 광복이 되어서도 집에는 못 들어오”(「자화상」)던 선비이자 독립운동가인 아버지로부터 유교의 도(道)와 애국의 정신을 배운 그는 돌팔매와 가난의 족쇄를 물려받아야 했던 유년기에 대해 “어느 권력 어느 재산과도 바꾸지 않을/내게는 값진 유산”이라며 그 시절에 얻은 정신적 유산들이 자신의 시의 핵심을 이루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밝힌다. 시조와 시를 함께 써오며 한국적인 것, 전통적 가치를 꾸준히 보존하고 그것들을 아름답게 연마해나간 시인의 시들은 그 자체로 한국 문화에 대한 오마주이며 전통적 가치에 바치는 열정적인 헌사이다.
이근배 시인이 시 속으로 불러들이는 옛 인물들은 우리 정신사를 꿰뚫는 대승과 선비들로 가득하다. “마르지 않는 신명으로/(……)/피리를 들면/하늘엔 노을이 타고/거문고를 안”(「정철」)는 것을 바라보던 송강, “살아서 못 이룬 꿈/죽어서 묻힐 땅에 심었으니/그 누구도 가져가지 못할/뜨거운 목숨”(「윤선도」)을 노래한 윤선도 등에 대한 찬사로 북을 치고 신명을 낸다. 또한 유학자의 후손인 시인은 민족사의 지사들에게 가장 뜨거운 헌사를 바친다. 정몽주에게서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듯/펄펄 끓는 넋이 보입니다”(「정몽주」)라며 그 뜨거운 뜻을 기리고 사육신의 성삼문에게서는 “내 살아서 임금을 못 섬겼으니/죽어서 허리 굽은 소나무가 되어/장릉(莊陵)의 비바람을 막으리라”(「성삼문」)며 그의 충절을 높였으며 면암에게서 “부끄럽고 부끄럽다/다만 내 여윈 뼈를 바쳐/한 자루 척화의 도끼가 되리라”(「최익현」)는 비장한 결의를 발견해 그의 정신을 깊이 기린다.
이근배 시인이 격찬한 선비들의 정신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벼루’를 통해서다. 전통에 대한 시인의 축약된 정서를 전하는 돌과 벼루는, 시인이 실제로도 굉장히 아끼는 물건이다. 여러 편으로 이루어진 ‘벼루 읽기’ 연작시는 그가 이 문방(文房)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를 실감케 한다. 그는 “한 뼘 돌에서/천만 석도 더”한 완당과 “손수 필경사를 짓고/온 땅 가득” 상록수를 심은 심훈을 부러워하고, “옛 벼루를 들고 와서는/얼굴이며 몸뚱이를 씻기는 일에는/시간을 물쓰듯” 하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이처럼 부지런히 씻겼으면 “사람값도 하고 글도 잘 풀릴 것”(「세연」)이라고 탄식한다. 시인은 이렇게 아끼는 벼루를 꿈과 같은 세계와의 조우를 이루는 예술적 매개체로 여긴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감상하며 “피를 기름으로 촛불을 피우고 있음이여/문득 내가 자루 들여다보는/신의 솜씨로 깎은 조선 초기 벼루들이/저 그림과 글씨를 거둔 논밭?”이라고 표현한 것은, 시인이 벼루를 통해 발견한 것이 우리 고유 정신의 정수이며 그것은 곧 가장 뜨겁고 높고 아스라한 예술세계가 이루어지는 터전임을 밝힌 것이다.

소멸하는 세계를 간직하는 시심

도(道)와 인(仁)을 통해 흐리고 어두운 세계를 구체화시키고 그 과거·현재·미래를 일궈낸 선비의 정신을 구현하되 그 안에 갇히지 않은 시인은, 그것을 승화의 경지로 보여주면서 “눈으로 듣고 코로 보고 귀로 말한다”고 자신의 시심을 설명한다. 침묵으로 이 세계를 듣고 눈을 감고 보며 말 없음으로 들려주는 선승의 경지, 그것이 이근배 시인이 전통적 가치를 통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점인 것이다. 젖어드는 세상과 사물과 풍경과 말이 하나의 공허로 화(化)하는 존재의 설움, 잘 익은 배의 향기와 같은 이근배 시인의 고즈넉한 시에서는 세계와 인간의 텅 빔으로 사라짐을 채워주는 묵향이 느껴진다. 이렇게 그는 지난날의 선비다운 언어들로 오늘 번잡하고 눅눅한 시대를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내면의 세계로 이끈다.

작가

이근배 지음

호는 사천(沙泉). 충남 당진 출생.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서 김동리, 서정주의 창작지도를 받음. 1961~64년 『경향신문』 『서울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시조, 동시 등 당선. 시집 『노래여 노래여』 『사람들이 새가 되고 싶은 까닭을 안다』, 장편서사시 『한강』, 시조집 『동해바닷속의 돌거북이 하는 말』, 시선집 『사랑 앞에서는 돌도 운다』 등이 있음. 제2회, 제3회 문공부 신인예술상, 한국문학작가상, 중앙시조대상, 고산문학상, 만해대상 등 수상. 은관문화훈장 수훈. 『한국문학』 발행인 겸 주간, 『민족과 문학』 『문학의 문학』 주간 역임. 한국시조시인협회장, 한국시인협회장 등 역임.

자료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