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음악처럼 흐르는

신혜정 지음

브랜드 문학수첩

발행일 2018년 4월 13일 | ISBN 9788983926951

사양 124x198 · 152쪽 | 가격 8,000원

시리즈 시인수첩 시인선 11 | 분야 시집

책소개

9년 만의 두 번째 시집, 일대일 대응의 말과 세계

신혜정 시인의 여전히 음악처럼 흐르는

 

‘시인수첩 시인선’ 열한 번째 시집이자 2018년의 첫 번째 시집인 『여전히 음악처럼 흐르는』이 출간되었다.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어느덧 등단 18년 차인 신혜정 시인은 그동안 시집 한 권과 산문집을 출간한 바 있다. 9년 만에 출간한 두 번째 시집 『여전히 음악처럼 흐르는』에서 시인은 첫 시집 『라면의 정치학』에서 보였던, 세상에 대한 비판 의식을 시인의 개성적 언어와 비유를 통해 어김없이 보여 준다. 등단 이후 일관되게 문학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해 오고 있는 시인은, 문학의 사회역사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시세계를 미학적으로 구축한 성숙한 경지를 선보이고 있다.

작품 해설은 맡은 함성호 시인은 신혜정의 이번 시집에 대해 “마치 날아가는 화살을 따라가서 거기에 과녁을 그리려는 사람처럼”(함성호), 세계와 일대일 대응 관계에 있는 언어로써 모순된 세계를 그려 내고 있다고 평가한다.

 

리뷰

작품 해설은 맡은 함성호 시인은 신혜정의 이번 시집에 대해 “마치 날아가는 화살을 따라가서 거기에 과녁을 그리려는 사람처럼”(함성호), 세계와 일대일 대응 관계에 있는 언어로써 모순된 세계를 그려 내고 있다고 평가한다.

 

마땅히 그러한 것이 지켜지지 않는 세계의 모순

머릿속 또는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 때 사람은 언어라는 도구를 이용해 그것을 표현한다. 작가, 특히 시인은 언어 중에서도 문자를 매개로 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스스로의 시선을 드러낸다. 그렇게 세상의 모순을 그려 내고, 그것을 글로써 치유하고자 하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다.

그러나 마음속 생각과 글은 일대일 대응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가 합리적이고 논증 가능한 곳이 아니라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신혜정은 이 모순된 세계, 병든 세계를 표현하고 치유할 언어를 찾기 위해 ‘마땅히 그러한 것’에 관해 생각한다. 신혜정의 시는 이 ‘마땅히 그러한 것’이 지켜지지 않는 데 대한 놀라움에서 시작한다.

 

(……)

잠에 든 적도 없는데 나날이 악몽이지

살을 섞은 적도 없는데 애인을 오래 끌어안은 듯 속이 쓰리지

누굴 만난 적도 없는데 군데군데 멍투성이지

 

사흘 밤낮을 자고 일어나면

다른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하지

 

그래서 아픈 데도 없이

운명처럼 앓지

―「신화적으로」 부분

 

신혜정은 이러한 놀라움에서 비롯된 비명을 삼키고,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데 그러하지 않은 것’들을 과학 이론을 들어 탁월하게 표현한다(「유연」, 「우주정거장」, 「E=mc2」, 「상대성이론」 등). 또한 낮은 신음으로도 표현하는데, 이는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윤리의 잣대(‘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가 비명과 함께 삼켜져 있기 때문이다(2부의 ‘낮은 자의 경전’ 연작). 이러한 낮은 신음은 자연의 원리와 윤리의 구성이 반드시 ‘마땅히 그러한 것’으로 결정되지 않는 세계의 모순에서 기인한다.

 

아픔에는 결이 있다 밀도의 층위마다 결이 생긴다 나는 416가지 층의 어느 곳엔가 있다 충만해서 끼어들 틈이 없는 결에 있다 움직이면 무너지는 꽉 찬 공간을 물은 간단하게 밀고 들어오지 물결을 이루어 이곳에서 저곳으로 자꾸 옮겨 다니지 물 위에선 와르르 무너져도 무너지는 게 아니지 여전히 그 결은 흐르고 침범하지 숨이 막히지 언젠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별을 말했던 적이 있다 이승과 저승의 연결점이 입속에 가득 채운 쌀 한 되로 마감되는 꽉 찬 슬픔의 층위를 본 적이 있다 먹고 사는 일 대신 쌀들이 축축하게 젖은 흰나비가 되어 하늘을 날아가는 걸 본 적이 있다 그 나비들을 꺼내 눈물로 밥을 지어 먹고 싶던 적이 있다 돌아보는 건 언제나 겹겹의 아픔을 동반하지 416의 416곱 번이라도 돌아볼 때마다 아프지 물로 가득 찬 부피의 공간이 다시 간단히 물밀듯 허물어지는 것처럼

―「낮은 자의 경전―흰나비로 밥을 짓다」 전문

 

그런데 이 세계가 모순으로 가득 차 있고, 그래서 말과 세계가 일대일 대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침묵으로만 일관할 수 있는가? 그것은 불가능하고, 시인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 없다. 신혜정의 시는 모순투성이인 데다 마땅치 않은 세계를 끌어안는 운명을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써지는 시들

 

말과 세계를 일대일 대응시키려면 먼저 세계를 재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세계를 재구성하려는 자는 세계가 왜 이렇게 모순적이며 불확실한지 물어야 한다. 모순적이고 불확실한 세계를 그리면서 신혜정은 절망적인 상황과 마땅치 않은 현실에 대해 결코 우리를 위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비관적이지도, 감정을 절제하지도 않는다. 그는 기표와 기의가 자의적 관계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둘의 인과를 놓지 않는다. 마땅히 그렇게 되지 않으리란 걸 아는데도 불구하고 ‘마땅히 그러한 것’을 계속 붙잡고 있다.

해설을 쓴 함성호 시인은 신혜정의 이러한 시작(詩作)을 시시포스의 형벌에 비유한다. 계속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다시 밀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처럼, 신혜정의 시는 마땅히 그렇게 되지 않는 세계에서 마땅히 그러한 것을 찾고자 한다. 그러한 허기, 갈증, 절망, 허무 속에서 그는 이 형벌을 다할 수 있을까? 신혜정의 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써진다.

 

한쪽 다리가 짧은

당신은

의자 같았지

 

삐거덕거렸지

처음부터

 

거지처럼

체온을 구걸했지

 

백발의 노인과 소녀의 순정

만날 수 없는 평행선처럼

 

절박했지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지

 

내려다보면 언제나

절벽이었지

 

– 「불구하고」 전문

목차

■ 차례

시인의 말

1부
숨바꼭질
먼지벌레
유연
우주정거장
가령,
키스
E=mc2
상대성이론
블랙홀은 털이 없다
암흑을 바라보는 여자의 초상―캔버스에 구아슈, 수채화풍으로
고양이춤
나무 중력 대신 나비 속의 포화
껌을 씹는 오후 네 시
7번국도

2부
낮은 자의 경전―물의 노래
낮은 자의 경전―기원
낮은 자의 경전―바다를 위한 송가
낮은 자의 경전―나무
낮은 자의 경전―히키코모리
낮은 자의 경전―옵스큐라
낮은 자의 경전―연대하고 수색하고 대화로 이어지는 수상한 버스의 기록
낮은 자의 경전―흰나비로 밥을 짓다
낮은 자의 경전―침대가 있는 방
낮은 자의 경전―들에서 부르는 노래
낮은 자의 경전―사생아
낮은 자의 경전―승냥이의 시간
낮은 자의 경전―누구일까

3부
밤이 열매처럼
우리는 우리의 몰락 앞에 유적이라 이름 붙이고
우리끼리의 핑퐁 게임
달 스위치
가장 잘 울어 보겠습니다
관상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유예
부정맥
히스토리
연행의 기술
간단
생물
어둠의 속도
모히토
하우스 오브 카드
불구하고
아이러니
잘 지내냐고 묻지 않는 애인에게 키스를 했다
눅눅한 감자칩과 쓰고 난 콘돔에 대해
물로써 풀어지는 한 알의 환(丸)처럼
스모그적으로
분자요리
우주로 날아간 공에 대하여
신화적으로
보스톤 블루스
온칼로
나는 이제 새로운 허무에 대해 말할 것이다

해설 | 함성호(시인)
불구(不具, 不拘)하기

작가

신혜정 지음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라면의 정치학』, 산문집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나』 『흐드러지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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