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간다 날아간다 흩어진다

최영철 지음

브랜드 문학수첩

발행일 2018년 6월 29일 | ISBN 9788983927033

사양 124x198 · 144쪽 | 가격 8,000원

시리즈 시인수첩 시인선 14 | 분야 시집

책소개

조용할 날 없는 세상을 궁굴리며 놀다

최영철 시집 말라간다 날아간다 흩어진다

 

‘시인수첩 시인선’ 열네 번째 시집, 최영철 시인의 『말라간다 날아간다 흩어진다』가 출간되었다. 1986년에 등단하여, 이미 오래전 자기만의 시적 언어와 세계를 구축한 한 중견 시인의 열두 번째 시집이기도 하다. 때로는 은근하게, 또 때로는 날카롭게 자연과 일상을 노래했던 시인 특유의 언어는 이번 시집에서도 여전하다. “조용할 날 없는 세상을 불러들여 조용히 그것들을 궁굴리며 놀았”다는 「시인의 말」처럼, 이번 시집에서도 최영철 시인은 그 자신이 궁굴리며 논 말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리뷰

일상의 언어로 가시화한 내면의 지리학

 

작품 속에서 시인은 일상 속 세계를 걸을 수도 있고, 일상을 초월한 이상의 세계를 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영철 시인의 시는 변함없이 일상에 발을 딛고 있다. 최영철 시인에게 일상과 자연은 내면의 지도를 가시화하는 매개이기 때문이다. 시집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고봉준은 일상 속 시인의 시선이 두 방향으로 분할되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바깥을 향한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시인 자신의 내면을 향한 시선이다. 전자의 시선이 ‘윤리’라면, 후자의 시선은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최영철 시인은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인 ‘윤리’와 ‘성찰’을 궁굴려서 특유의 언어로써 그것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맨 앞에 실린 시 「동감」은 외부로 향한 시선, 즉 시인의 ‘윤리’를 궁굴린 작품이다.

 

조그만 종이박스 하나를 놓고 껄렁하게 앉은 사내를 보았다 그 무성의가 마음에 들어 얼른 지폐 한 장을 그의 아가리 속으로 내동댕이쳤다 무척 화가 난 듯 새로 생긴 폐기물 처리가 걱정이라는 듯 굴러들어 온 돈을 그가 미심쩍게 내려다보았다

 

코 푼 휴지처럼 버려진 지폐를 사이에 두고

오래전의 약속인 듯

그와 나는

서로를 보며 씩 웃었다

―「동감」 전문

 

한편 「울창빽빽 옹졸」이라는 시에서 시인의 시선은 ‘옹졸’한 자신의 내면을 향한다.

 

옹졸이 싫지만 옹졸을 알아차리는 내가 더욱 싫네

명백한 과오를 편드는 내가 싫지만 그 소심을

예민한 촉수라 변호하는 내가 더욱 싫네 나는 나

하나만으로 족한데 또 다른 나 또 다른 나의 나를

알아차리는 또 다른 나가 있으니 싫네 (……)

―「울창빽빽 옹졸」 부분

 

이 시에서 화자는 내면을 향한 ‘성찰’의 시선을 “옹졸한 내가 어디/멀리 여행 가고 없는 나라 여행 가서 비명횡사하면/더 바랄 게 없는 나라 더 이상 옹졸이/핵분열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로 이민 가고 싶네”처럼 유머가 섞인 명랑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시인에게 일상은 친근하고 긍정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에 팽배한 속물성과 거기에 편승하는 스스로를 성찰하기 위해 천착해야 할 비판의 대상이기도 하다. 시집 『말라간다 날아간다 흩어진다』는 이러한 비판과 성찰을 시인 특유의 유머와 희극성이 돋보이는 언어로 들려준다.

 

내게 돈이 없는 건 돈이 내게 오지 않아서다

어쩌라고

오기 싫은 돈을 난들 어쩌라고

 

(……)

 

그 바람에 돈돈돈 돈이 돌아 버렸다

저렇게 미쳐 날뛰기만 하지

도통 내게 올 생각을 않는다

 

어쩌라고

―「돈의 이유」 부분

 

 

삶 가까이 죽음이 존재하는 유쾌한 인간의 처소로

 

“죽을 때가 가까우면 순하게 돌돌 말린다”(「돌돌」, 『돌돌』), “서산 해 넘어가자 문턱 하나 넘어/이승에서 저승으로 자리를 옮기신다”(「통도사 땡감 하나」, 『호루라기』)처럼, 최영철 시인은 여러 시집에서 인간을 포함한 자연 속 생명의 죽음을 그려왔다. 이번 시집 『말라간다 날아간다 흩어진다』에도 죽음의 장면들이 제법 등장한다. 그 죽음의 장면은 시 「이것」에서처럼 은근한 분노를 담고 있기도 하고(“이것이 젖으면 아이들이 떼죽음 당하는 일이 또 일어날지 모르니 방수 처리된 이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었다”), 「퇴로」에서처럼 담담하게 말해지기도 하고(“그날 119 구급차에 모시면서 버려진 할머니의 흰 고무신 한 짝이 흙을 불러들이며 오래 조용히 축담 밑에 엎드려 있다”), 「망일(亡日)」에서처럼 담담하다 못해 넉살 좋게 그려지기도 한다(“이젠 전화하지 마/술도 건네지 마/넌 지척이치만 난 몇 겁의 하늘을 건너왔잖아”).

이번 시집에 등장하는 ‘죽음’을 긍정과 부정 가운데 하나로 환원할 수는 없지만, 최영철 시인은 대체로 ‘죽음’에 대해 밝은 목소리로 진술하고 있다.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유머와 명랑한 어조가 삶과 죽음에 관한 사유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고봉준 평론가는 시인이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슬픔의 정서로 반응하지만, 정작 스스로의 죽음에는 부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는 점에 특히 주목한다.

이처럼 죽음을 모티프로 삼은 작품이 다수 포함되어 있고, 시집의 전반적 분위기도 ‘상승’보다는 ‘하강’의 이미지가 더 강하지만, 이러한 ‘하강’의 무게감은 특유의 유머와 담담함, 유쾌함으로 상당 부분 상쇄된다. 다시 말해 언제나 삶 가까이 죽음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최영철의 시는 결코 삶에 대한 부정이나 절망의 느낌을 주지 않는다. 고봉준은 그 이유를, 최영철 시인의 시가 궁극적으로는 ‘생명’에 대한 관심을 배경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나는 이번 생에서는 별이 되지 않기로 작정하고야 말았네

떨며 선 달에게 겉옷을 벗어 주고

혼자 둑방을 건너 낮고 누추한

인간의 처소로 돌아오고야 말았네

―「산책의 새로운 방식-도요에서」 부분

 

시 「산책의 새로운 방식―도요에서」에서 화자는 “보장”된 “평화”를 마다하고 “눈물겨운 인간의 처소로 돌아”온다. 시 「퇴로」 속 축담에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앉았다 가는지 올봄에 또 새싹이 돋”는다. 별의 초월 세계가 아닌 “누추한/인간의 처소”에, 할머니의 죽음 이후 태어나는 생명에 주목하는 시선이야말로 세상을 향한 시인의 윤리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시인은 ‘길’을 나선다. 그의 발걸음의 성격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발걸음이 ‘외출’인지 ‘산책’인지, 또는 ‘방황’인지 고민하면서 걸음을 옮긴다. 길에는 가로등이 없고, 이정표가 없고, 신호등도 없다. 고속철도가 지나가고, 강이 등장하는가 싶더니, 이윽고 풀과 별이 주변을 둘러싼다. 하지만 시인의 발걸음은 결국 ‘인간의 처소’로 이어진다. 그의 발걸음은 결국 ‘산책’이 되고, 그는 “이번 생에서는 별이 되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고백한다. 최영철의 시는 ‘별’이 가리키는 ‘초월’의 세계보다는 ‘인간의 처소’에 더 가깝다.(해설, 「인간의 처소를 향하여」)

목차

■ 차례

시인의 말

1부
동감
저녁이다
아름다운 세상

말라간다 날아간다 흩어진다
다음 열차를 기다리며
최후의 만찬
교도소 특강
봄눈
언젠가 가능한 일
종말 룰랄라
하느님하느님
우산의 탄생
끝없는 전진
이것
?
화장의 기술

2부
파도의 파도
그리고…
봄의 복종
바다에 밤이 오고
슬픔에게
아침인 줄 아는 아침
종이의 독백
어느새, 눈물
아버지였던 아버지
고독사를 꿈꾸며
하하 하느님
꽃잎 혀에 바치다
멸종을 막는 사소한 방편
부식(腐蝕)
봄봄 봄노래―삼랑진에서

3부
이른 아침 구름 본다
아침
내 몸의 방공호
오랜 당신
씨앗들
너에게로 가는 길
달린다 약
하고
망일(亡日)
그리고 기적은 왔다
산책의 새로운 방식―도요에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퇴로
비비비
자갈치 사용설명서
돈의 이유

4부
밤의 탱고
잎들
소낙비 손님
어떤 윤회
암각화의 말
몸살, 봄
바람과 새와 잎
두 그루
극장의 추억
눈물
사방천지 멸치
밤의 도서관
저 별은 너의 별
울창빽빽 옹졸
호주머니의 계보
그날의 난파선
정답? 오답?

해설 | 고봉준(문학평론가)
인간의 처소를 향하여

작가

최영철 지음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 『돌돌』 『금정산을 보냈다』 『찔러본다』 『호루라기』 『그림자 호수』 『일광욕하는 가구』 외 다수, 육필 시선집 『엉겅퀴』, 성장소설 『어중씨 이야기』, 산문집 『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 등이 있다. 백석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최계락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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