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치킨 집

임경묵 지음

브랜드 문학수첩

발행일 2018년 8월 14일 | ISBN 9788983927095

사양 124x198 · 168쪽 | 가격 8,000원

시리즈 시인수첩 시인선 15 | 분야 시집

책소개

어쩌면 따스할지도 모를 골목 어귀

골목의 시인임경묵의 체 게바라 치킨 집

 

‘시인수첩 시인선’이 열다섯 번째로 선보이는 시집은 2008년 하반기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한 임경묵 시인의 첫 시집 『체 게바라 치킨 집』이다. 등단 10년 만에 첫 시집을 출간하는 임경묵 시인은 2006년에는 수주문학상을 수상하였고 2011년에는 대산창작기금을 수혜할 정도로 시단에서는 이미 실력 있는 시인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임경묵 시인은 말이 가진 당연한 의미를 경계하며 ‘참되고 애틋한 마음’을 갖고 불안한 세계를 극복하는 일에 동참하고, 궁극적으로 ‘사람살이’에 기여하는 것이 시인의 책무라고 배웠다고 한다.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우여곡절 끝에 교사로 발령받은 첫 학교가 서울의 철거민이 이주해 와 만든 ‘복음자리마을’ 공동체와 언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한 중학교였다. 골목은 이곳까지 밀려와 있었고, 골목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도시 변두리 골목을 하나하나 스케치하듯 그려 낸 이 시집에는 시인의 내면을 관통한 ‘골목의 감정’이 오롯이 담겨 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이름 없는 존재들을 사려 깊게 바라보고 그들의 신음에 귀 기울이는 임경묵 시인은 “골목에 소속”(시인의 말)된 자로서 내부에 시선을 드리운다. 시인 임경묵이 ‘조형’해 낸 골목의 감정들, 따사로운 시의 옷을 입은 골목의 풍경들을 지금 만나 보자.

리뷰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 그곳에 사람이 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알게 모르게 허물어지고 소멸하는 곳. “누군가에게는 이미 사라진 풍경이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골목의 풍경”(해설, 「골목의 생태학」)이다. 이제는 누구도 살지 않을 것 같지만, 그 후미진 골목 어귀에서는 여전히 밥 짓는 냄새가 난다. 아직도 그곳에 사람이 살기 때문이다. 더는 추락할 수도 없는 반지하 집과 “집어던진 세간들 쨍 짱 탁 부딪히는 소리”가 허공을 뒤흔드는 이 스산한 동네에서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있다. 살아 움직이는 생활의 풍경과 함께 비어 가고 사라져 가는 죽음의 기운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재개발지구 지정 안내판이 들어서자

집들은 하나둘 떠나갔다

골목도 이제 남은 골목을 거의 다 써 버린 듯하다

중학교 때

여기 사는 게 부끄러워

친구들에게 골목에 대해 부풀려 말한 적이 있다

 

일기예보에 한때 우박이 내린다고 했는데

섬모 같은 빗줄기가 비칠거린다

검은 비닐봉지가 맨홀 뚜껑에 납작 엎드려 있다

철거 딱지가 붙은 판잣집이, 거웃만 가린 담장이, 무당집 붉은 깃발이 젖는다

나팔꽃이 담장을 넘다가 들킨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젖는다

―「골목의 감정」 부분

 

그 골목에 들어서는 한 소년이 있다. 뽀글뽀글한 양떼구름이 몰려오는 시간, 두부 한 모 사 들고 집에 돌아가는 그 소년은 “두부찌개를 두부의 울음바다(「양떼구름이 몰려온다」)”라고 부른다. 집 나간 누이를 향한 그리움과 기다림 속에 울음을 삼키며 밥 한 숟가락을 뜨는 소년은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내일도, 내일의 양떼구름이 흘러야(「양떼구름이 몰려온다」)” 함을 알기 때문이다. 한편 21세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어느 노래방(「21세기 노래방」)에는 다국적 노동자들이 몰려오고 있다. 그들은 ‘끼리끼리’ 모여 “이름 모를 잡초”를 흥겹게 불러 댄다. 임경묵 시인이 바라본 그들은 비록 세상의 한 켠으로 밀려나 있지만 쉽사리 웃음을 잃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그가 그리는 가난의 풍경이 마냥 어둡고 암울하기만 하지는 않은 이유다.

 

 

풍잣 풍잣애잔한 가락이 들리는 시

 

임경묵 시인은 시각과 청각의 이미지를 활용해 감정을 기록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소유한 시인이다. 그는 분절된 단어에 가락을 입혀 소리를 ‘보여 줌’으로써 내면에 침잠해 있는 숱한 감정을 다채로운 빛깔로 버무려 낸다. 한편 그는 음률이 살아 있는 시어들로 저마다의 리듬을 형성해 내기도 한다. “쿠바 쿠바 쿠바쿠바” “부웅­ 부웅­” “투루루루 투루루루” “투, 투, 투,” “돌, 돌, 돌” 등의 시어들이 그러하다. 이는 무겁고도 지난한 현실을 뚫고 나아가는 인생의 한 길목에서 흥얼거리는 시인의 경쾌한 입소리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아버지가 툇마루에 한갓지게 앉아

하모니카를 붑니다

입술이 잘 미끄러지게 하모니카에 침을 쭈욱 바르면서

도–레–미–파–솔–라–시–도

도–시–라–솔–파–미–레–도

두 손으로 하모니카를 포옥 감싸고

입술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풍잣 풍잣

리듬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풍자자 풍잣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우울―어

풍잣 풍잣

―「하모니카를 불어 주세요」 부분

 

그의 시는 신명 나게 한 가락 노래를 뽑는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야 이것저것아무것도 없는 잡초라네” 노래하며 이름 없는 잡초를 불러 대거나 “삘리– 삘리리–” 날라리 소리가 애잔하게 울리는 어느 날을 추억하기도 한다. 이 가락은 어딘가 모르게 쓸쓸하고 처연하지만 정겹고 애틋하기에 읽는 이로 하여금 충일한 위로를 느끼게 한다. 어쩌면 따스할지도 모를 골목 어귀에서 듣는 노래 한 자락. 노래가 흐르는 그 골목에 함께 들어서 보자.

 

임경묵의 시를 읽으며 독자들은 아직도 현존하고 있는 골목의 풍경을 마주하기도 할 것이고, 지금은 이미 사라진 오래전 골목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임경묵의 시가 그려 보이는 골목의 풍경은 현재의 시간은 물론 과거의 시간과 미래의 시간을 동시에 품고 있다. 비어 가는 골목의 풍경은 사람들로 왁자지껄하던 과거의 골목의 시간을 환기할 뿐 아니라 텅 비어 마침내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릴 미래의 시간까지 비추고 있다. 그런 점에서 임경묵의 시가 그리는 골목의 생태학은 도시의 현재를 실감 있게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해설, 「골목의 생태학」).

목차

시인의 말

1부
제노비스 신드롬
골목의 감정
봄 1
양떼구름이 몰려온다
육식의 습관
21세기 노래방
체 게바라 치킨 집
개그콘서트
벼룩의 노래
장미(藏米) 공연장
골목에 사는 여자
기타 노동자
게임 중독자
사워크림 초코쿠키

2부
누룩뱀과 사귀다
염소가스 누출 사건
빈집
회칼과 파리
단풍 구경 가는 길
월드시네마 오락실
옛 염전 소금 창고
티크, 티크를 위해
내원암 도둑게
백제손해사정사무소
질경이의 꿈
옥수수 심장
안락사
진달래 병사

3부
하모니카를 불어 주세요
굿하는 집
국수의 가족사
돌확 속의 쉬리
제 꿈에서 뭐 하시는 거예요
독거
우산 수리 전문가
구미호
폴라로이드 카메라
버럭론
간장게장이 익어가는 저녁
날라리
봄 2
배춧잎 줍는 여자

4부
꽃의 식자(植字)
압화(押花)
낙타
잔나비걸상버섯
얼음 소녀
무궁화 울타리 그 집
나비장
호텔 르완다
토룡(土龍)
김쿼파 씨의 메일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블레이즈 씨의 첫 면접
폐교의 풍향계
버려진 곰 인형
오소리 길

해설 | 이경수(문학평론가,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골목의 생태학

작가

임경묵 지음

경기 안양에서 태어나 충남 천안에서 성장했다. 공주대학교 한문교육과와 한신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8년 하반기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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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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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창규
    2018년 8월 11일 07:19

    선생님 축하합니다
    “체 게바라 치킨 집” 상상속으로
    흠뻑 젖셔져
    이 무더운 여름나기를 풍요롭게
    벗어나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