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택배

김선태 지음

브랜드 문학수첩

발행일 2018년 8월 24일 | ISBN 9788983927149

사양 124x198 · 136쪽 | 가격 8,000원

시리즈 시인수첩 시인선 16 | 분야 시집

책소개

봄 햇살처럼 환한이순(耳順)으로 가는 도정

김선태의 일곱 번째 시집 햇살 택배

 

정치, 경제, 문화 모든 것들이 중앙과 주변으로 경계 지어지고, 사람들은 중앙에 대한 욕망을 감추지 않는다. KTX가 전국을 한나절 생활권으로 만들고 서울과 지방의 균등한 발전을 이끌어 낼 것이라고 했지만,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KTX를 타고 서울에 올라와 쇼핑을 하고 식사를 하고 해가 지기 전에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는 서울 생활권을 즐기게 되었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비록 생활의 근거로 지방에 거주하고 있지만 시인들 역시 시시탐탐 중앙의 호명을 기다리며 연연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이런 중앙의 자장(磁場) 밖에서 고향과 지역을 굳건하게 지키며 자신의 문학을 키워 가는 시인들이 있다. 중앙 시단에서 활동하는 시인들에게 밀리지 않는 시적 완성도와 개성을 일구며 당당하게 자신의 문학세계를 지켜 내는 지역 파수꾼과 같은 시인들이 있는데, 김선태 시인이 그중 한 명이다.

그는 평소 “결코 문명과 권력의 중심으로 나아가지 않고 나의 뿌리인 남도 땅에 남아 그 유순한 자연과 함께 스스로 중심이 되어 살아갈 것이며, 그것이 비록 답답하고 외롭고 서러울지라도 나의 시학을 완성하는 길임을 굳게 믿는다”는 말을 다짐처럼 자주 하곤 한다.

이런 김선태 시인의 『햇살 택배』가 ‘시인수첩 시인선’ 열여섯 번째 시집으로 출간되었다. 김선태 시인은 1993년 등단한 이래 『간이역』, 『그늘의 깊이』, 『살구꽃이 돌아왔다』 등의 시집을 통해 남도의 바다와 삶을 처연하고 아름답게 그려 냈다. 그는 특히 다양한 소재와 풍경들을 통해 삶의 고통과 슬픔의 미학을 표현하고, 정적인 풍경에서 동적인 움직임으로 전환되는 순간을 통해 쓸쓸함과 여유를 동시에 보여 주는 데 능하다. 적절하고 정제된 언어를 이용해서 고요함과 정적 그리고 살아 움직이는 것들에 대한 상상력이 김선태 시인의 시적 특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시집 『햇살 택배』에서 시인은 “봄 햇살처럼 환한 시간 쪽으로” 가닿고자 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마음은 아직도 무거운 시간을 내려놓지 못했”고 “애써 밝아지려는 표정의 배후에 어둔 그림자가 여전하”지만, “어두운 기억 속에서 꽃이 피길 바”(이상 「시인의 말」)라는 것은 시인 자신이 이순(耳順)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일까? 우리는 일곱 번째 시집에 이르러 어느 때보다 밝아진 중견 시인의 시세계를 만날 수 있다.

리뷰

이순의 경지를 내면화하다

 

‘이순(耳順)’이란 공자가 『논어』 「위정편」에서 나이 예순을 가리켜 “귀[耳]가 순[順]해져서 어떤 말을 들어도 곧바로 이해하는” 나이라고 쓴 데서 비롯된 말이다. 이순은 어떤 말이나 일도 원만하게 듣고 받아들이는 나이, 다시 말해 자연의 이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포용할 수 있는 나이를 말한다. 「시인의 말」에서 “벌써 이순이 눈앞이다”라고 고백하면서 저자는 ‘햇살 택배’라는 제목처럼, 무겁고 그늘진 마음에 “햇살”이 드리우길 바란다. 김선태 시인의 이번 시집은 봄 햇살처럼 환한 ““이순”을 위한 마음공부의 과정이며 결과다”.(홍용희)

 

겨우내 춥고 어두웠던 골방 창틈으로 누군가

 

인기척도 없이 따스한 선물을 밀어 넣고 갔다

 

햇살 택배다

 

감사의 마음이 종일토록 눈부시다

―「햇살 택배」 전문

 

시적 화자가 사는 곳은 춥고 어두운 “골방”이지만 시의 분위기는 밝고 환하다. “인기척도 없이 따스한 선물”이 “택배”로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햇살 택배”의 발신자는 누구일까? 정작 발신의 주체는 밝혀 있지 않은데, 이 모든 것이 화자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공짜다/공짜는 둥글다 텅 비어 있다/애초 주인이 없으니 느끼는 자가 임자다”(「풍경은 공짜다」)라는 표현처럼, 쉽게 말해 세상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즉 세상일의 주인이자 주체는 바로 ‘내 마음’이다. 이처럼 시인에게 ‘이순’이란 마음가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는 것을 깨닫는 나이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세상은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이 보고 느끼는 심미적 주관의 대상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세상을 제멋대로 재단하거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다는 뜻은 아니다. 마음이 세상의 주인이자 주체가 되려면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줏대가 서야 한다. 시 「얼굴」에서는 이 ‘마음’이 ‘정신의 줏대’인 ‘얼’의 이미지로 변주되고 있다.

 

얼굴이고 얼꼴인 얼굴은

얼의 형상이 내비치는 거울이라지

거기 마음의 신산고초 서린 골짝이 있고

오욕칠정까지 낱낱이 드러난 바닥이 있어

낯바닥이라지

 

그러므로

얼굴은 말이 없지만 가장 명료한 언어

귀를 떼어 버려도 잘 들리는 청각적 이미지와

눈을 감아 버려도 잘 보이는 시각적 이미지가

뒤엉켜 살고 있지

 

(……)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로 천형을 살면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늘상 웃고 있는 이가 있어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붉게 상기된 이가 있어

그래서 더욱 슬픈지도 몰라

 

그는 누구일까

얼골이나 얼꼴을 완벽하게 지워 버린 채

가장 깊은 감정을 마음의 골짝에 꼭꼭 숨긴 채

물 흐르듯 세월의 강을 묵묵히 건너가는

―「얼굴」 부분

 

이 시에서 “얼굴”은 “얼의 형상”이다. 세상을 듣고 보는 본질적인 주체는 “귀”와 “눈”이 아니라 “얼”이다. 세상을 제대로 듣고 보려면 “귀”와 “눈”이 아니라 “얼”로 보고 들어야 한다. 얼굴은 또한 “마음의 신산고초 서린 골짝”이기도 하다. “가장 깊은 감정을 마음의 골짝에 꼭꼭 숨긴 채/물 흐르듯 세월의 강을 묵묵히 건너가는”, 그래서 “더욱 슬픈” “그”는 이순을 눈앞에 두고 애써 밝아지려는 시인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일 수 있다. 「낚시」라는 시에서 시인은 “마음의 골짝에 꼭꼭 숨긴” “가장 깊은 감정”, 즉 “마음의 심연”을 바라본다.

 

마음의 심연에 낚시를 드리운다

 

느닷없이 이순(耳順)의 물고기가 물고 늘어진다

 

무겁다

―「낚시」 전문

 

시적 화자가, 시인이 “마음의 심연”에서 낚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순(耳順)의 물고기”다. 이순, 무슨 말이든 듣는 대로 원만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이러한 나이의 경지를 시인은 생활철학으로 내면화하고자 한다.

 

 

어둠 속에서 은은히 배어 나오는 눈부신 빛의 경지

 

“이름만으로도/달빛 부서지는 문장”인 낙월도를 “세상 모든 달들의 무덤”이라고 부르거나(「낙월도」), “보름 무렵이면 중천에 떠서/일거수일투족을 환히 지켜”보는 보름달을 “마누라”에 비유하고(「보름달 마누라」), 웃는 얼굴을 “빙그레, 상냥한 초승달”, “껄껄껄, 유쾌한 반달”, “하하하, 환한 보름달”로 표현하는 등(「달인」), 시집 『햇살 택배』에서 “달(빛)”의 감각과 색채가 주조를 이루는 것은 시인이 지향하는 ‘이순의 이미지’와 관련이 깊다. “달빛”은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눈부심이다. 이는 “어두운 기억 속에서 꽃이 피”(「시인의 말」)는 형상에 대응하기도 한다.

 

물고기 아니 물고 중천에 보름 달빛 길고 가느다란 실타래를 풀어 수면 위에 수천수만 마리 물고기를 수놓고 있다 물의 살점을 잘게 물어뜯으며 튀는 달빛 멸치 떼처럼 바글거린다 어지럽다 그것들 내 눈으로 들어와 어항인 듯 마구 헤엄쳐 다니다 이윽고 마음의 심연까지 들락거리지만 한 마리도 잡히지 않는다 이는 분명 달빛이 나를 희롱하는 것이렷다

 

월인천강의 밤은 깊어 달빛이 수면 위를 어지럽히며 글씨를 흘려 쓴다 바다의 검은 치맛자락을 환히 들추며 은빛 붓으로 써 내려간 저 문장들은 무슨 달빛 경전이라도 되는가 어려워서 한 대목도 읽을 수 없다 이번에는 달빛의 교교한 선율에 취해 어부사시사를 읊조리며 낚싯대를 드리우지만 여전히 한 마리도 물지 않는다 결국 오늘 밤은 달빛만 낚았다, 아니 달빛에 낚였다

―「달빛에 낚이다」 전문

 

시인은 “달빛의 교교한 선율에 취해 어부사시사를 읊조리며 낚싯대를 드리우지만”(「달빛에 낚이다」), 그가 낚으려는 것은 그냥 물고기가 아니라 앞서도 말했듯 “이순(耳順)의 물고기”다. 또는 뭔가를 낚는 대신 “달빛에 낚”이고자 한다. 이는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고 긍정하는, 인간의 세상뿐만 아니라 자연마저도 원만하게 포용하는 이순의 경지다.

목차

■ 차례

시인의 말

1부
햇살 택배
감잎 물고기
밤바다를 낚다
풍경은 공짜다
꽃들의 전쟁
봉분
3월의 벚나무
윤슬
봄, 숨바꼭질
백화주
복어회 명인
단풍 군단
즐거운 착시
낙월도
보름달 마누라
달인
문짝

2부
독거
글씨 혹은 새 떼
물의 마법사
달빛에 낚이다
독방
수달
바다의 팜므파탈
집과 무덤
무안 갯벌
황홀한 이별주
말뚝
침식
월출산
얼굴
요니
목포에 오면 바다를 보라
만재도
월경
짝사랑

3부
몽골시편 1-몽골초원
몽골시편 2-게르 체험
몽골시편 3-어린 양 길들이기
몽골시편 4-몽골반점
몽골시편 5-흘레
몽골시편 6-별과 놀다
장가계 시편 1-천문산
장가계 시편 2-원가계

4부

시간론
가물치 이론
스마트폰을 잃다
버스가 쳐들어온다
민낯
죽겠다
옹기
옹관
장구목 절창
우여곡절
그 골목의 하모니카 소리
미귀 혹은 불귀
주눅
벽장 속의 시간
물속의 귀향
뻥튀기 사내
단상 5제
겨울비
낚시

해설 | 홍용희(문학평론가)
마음의 환한 풍경을 위하여

작가

김선태 지음

1960년 전남 강진 칠량에서 태어났다. 1993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와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간이역』 『작은 엽서』 『동백숲에 길을 묻다』 『살구꽃이 돌아왔다』 『그늘의 깊이』 『한 사람이 다녀갔다』 등과 평론집 『풍경과 성찰의 언어』 『진정성의 시학』 등을 출간했다. <애지문학상> <영랑시문학상> <전라남도문화상> <시작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목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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