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이복구 소설집

맨밥

이복구 지음

브랜드 문학수첩

발행일 2015년 3월 30일 | ISBN 9788983925749

사양 152x224 · 312쪽 | 가격 12,000원

분야 국내소설

책소개

가엾은 이들에 대한 동정과 욕망을 좇는 이들에 대한 환멸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이복구 소설집

 

<불구경>으로 “부산 문단에 불을 지르며(?)” 화려하게 등단했다가 돌연 10년간 절필하며 야학교장으로 13년의 시간을 보낸 후 작품활동을 재개한 이복구가 《불구경》 이후 22년 만에 두 번째 소설집 《맨밥》으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그간 각종 신문과 잡지 등에 작품을 발표하고 언론사 촉탁 논설위원을 지내는 등 열정을 다해 소설가로 살아온 저자는 다양한 형식의 소설 여섯 편에 생명의 세계를 이탈한 인공도시에서 인간은 욕망의 노예가 되거나 그 잉여가 될 수밖에 없다는 냉엄한 전망을 내놓는다. 이복구 소설의 두 축이라 할 수 있는 “가엾은 이들에 대한 동정과 욕망을 좇는 이들에 대한 환멸”은 여전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한 환멸이 이룰 수 없는 구원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의 작품들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영혼의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죽음 언저리를 살아가는 고독한 현대인들의 이야기

차갑고 단단한 지금을 살아내야만 하는 나, , 그리고 우리

이복구의 소설들은 도심에서 벗어난 주변지역의 삶을 서술한다. 이는 저자가 처했던 경험적 현실에 연원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자본과 권력의 중심에 내재한 타락한 욕망이라는 배치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장애자나 가난한 사회적 약자들이 희망을 발견하기를 원한다.

 

<짖는 아이>

<짖는 아이>는 아동학대를 모티프로 한다. 부모에게 방치된 채 개줄에 묶여 학대받은 영아기로 인해 정상적인 인간관계 맺기가 어려운 ‘나’는 유치원에서 만난 여자친구에게 의처증에 가까운 집착을 보인다. ‘나’와 마찬가지로 부모에게 방치된 채 죽음에 이른 친구 지수에 대한 죄책감은 이상행동으로 이어지고, ‘나’는 30여 년의 시간 동안 성장을 거부한 채 정신병원에서 나날을 보낸다.

작품론에서 구모룡 교수는 “악동 이야기의 계보를 잇는 것이면서 어른들에 의해 만들어진 아동의 순결함이라는 관념을 비판하는 이 소설은 독창적인 인물의 창출을 통해 세계의 위악을 드러내는 서술 효과를 얻는다”고 썼다.

 

<식물의 시간>

식물인간에서 3년 만에 깨어난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아내의 얼굴에 순간순간 경멸의 표정이 스치지만 이유를 알 수 없다. 1년 후, 딸아이 둘을 잃은 후 밖으로만 나돌다 자살을 시도하던 날을 기억해낸 ‘나’는 다시 심연으로 몸을 던진다.

“냉정한 진술”로 써내려간 “환멸의 서사”인 이 소설을 통해 저자는 삶 자체가 환상일 뿐이라는 염세주의적 입장을 견지한다.

 

<맨밥>

어머니와 형의 희생을 바탕으로 가난한 집 둘째 아들이던 ‘나’는 유명 갈비집 다미정의 사장이 된다. 술주정뱅이가 된 형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어머니는 죄책감에 매 끼니를 맨밥에 간장을 찍어 때운다.

작가가 그려온 모성의 대표적인 표상으로 그려진 ‘어머니’가 평생 지켜온 식습관인 ‘맨밥’을 통해 작가는 사라져가는 삶의 진정성과 욕망의 세계에서 인간을 본래의 인간다움으로 이끄는 최후의 보루를 이야기한다. 이는 <겨울잠> <그물 깁는 남자> <처용의 노래> <탱크와 혀>와 같은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주었던, 초월 불가능한 교환관계의 욕망이 지닌 근원적인 허기를 잘 드러내고 있다.

 

<돌산>

시인이자 교수로 승승장구하는 부인,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지 못하고 낙오된 남편의 관계로 오랫동안 각방을 쓰던 이들 부부에게 불현 듯 이별의 순간이 찾아온다. 부인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남편의 옛 지인에게도 남편이 장기 해외출장을 갔다고 둘러댄다. 서울 근교의 고향 돌산을 바라보며 지인과 함께 옛 추억에 잠겼던 부인은, 자신이 평생 그리워하던 옛사랑이 실은, 권력에 대한 자신의 욕망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저자는 <돌산>에서 “정공법 서술로 가치와 이념이 사라지고 풍속과 욕망이 전면화된 시대의 인간성을 보여준다.”

<미친 발>

환경미화원 윤일도는 술주정뱅이 노름꾼이던 아버지 때문에 소설가의 꿈을 접는다. 동생들 뒷바라지로 평생을 보낸 그는 6년 동안 작품 노트를 쓰지만, 동생의 실수로 노트가 재활용품에 섞여 쓰레기더미에 묻혀버린다.

도심에서 벗어난 주변지역의 삶을 서술해온 작가는 <미친 발>에서 주변부의 삶을 가장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도시 개발에 따른 철거민들의 이주촌’과 인근의 ‘쓰레기 하치장’을 배경으로 환경미화원의 삶을 담아낸 이 소설의 주인공 윤일도는 세상 모든 낭비와 욕망의 찌꺼기들이 몰려들어 “쓰레기가 되는” 이곳에서 과거와 가족의 기억을 붙잡고 살아간다. 주요 인물들이 모두 과거의 추억에 사로잡힌 환멸적 염세주의자인 이 작품에서 저자는 <불구경>과 <사슬>에서 보였던 문학적 문제의식의 집약을 보여준다. 쓰레기가 되는 삶을 통한 현대성의 모순, 동생들을 위해 희생하는 장남의 가족사는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요 모티프다.

<매직 아워>

태어날 때부터 다리가 없는 나는 은행 지점장의 딸과 결혼해 두 아이를 얻는다. 역광으로 기가 막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석양의 찰나의 순간처럼, ‘나’에게는 매일이 매직 아워다. 그러나 부인이 돈벌이에만 몰두하다 파산하고, 첫째가 자살을 시도하면서, ‘나’는 집을 나와 노숙자 생활을 시작한다.

이 소설에서 저자는 “인간의 타락을 서사”라고 말하면서도 고유한 생명의 빛깔과 광채에 대한 그리움을 품은 인간상을 그려낸다. 환상의 욕망을 좇을 것인가, 환멸의 삶을 견딜 것인가? 그래서 <매직 아워>는 “환멸을 견디며 사는 이의 슬픈 고백”으로 읽힌다.

작가

이복구 지음

1946년 경북 영일에서 태어났으며, 1968년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이후 1972년 단편 <불구경>으로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해 촉망받는 신예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그러나 1973년부터 부산에서 산업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대성학교(노동 야학)을 개설, 운영하면서 10여 년간 절필의 시간을 보내다 1983년 《소설문학》에 <사슬> <왼쪽에 앉아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재개했다. BBS부산 연맹 총무, 《국제신문》 논설위원, 부산 소설가 협회장을 역임했다.

 

“존재론을 씨줄 삼고 예술론을 날줄 삼아 인간론을 직조한 문장과 사유들”이라는 극찬을 받은 소설집 《불구경》을 통해 알려진 이복구는 상처와 고통, 권태와 허무를 직시하면서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 새 삶을 살고자 하는 인물들을 제시한다. 또한 청년기의 월남전 참전 경험과 야학을 운영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도시도 시골도 아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현대사회의 표면을 부유하는 변두리의 삶을 날카롭게 묘사해낸 단편들을 써왔다.

 

《맨밥》은 《불구경》 이후 22년 만에 발간하는 소설집으로, 과거의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결국 죽음을 향해 치달을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고독, 인간 존재와 관계 맺기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한다. 차갑고 단단한 지금을 살아내야만 하는 나, 너,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낸 이 소설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래도 이야기하는 것은 희망이다.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성장이 멈춰버린 아이,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 시인이자 교수로 승승장구하는 부인, 사회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낙오된 남편, 빈둥지증후군을 이겨내지 못하는 큰형 등 현대인이 처한 단절과 인간 소외에 대한 고민을 <짖는 아이> <식물의 시간> <맨밥> <돌산> <미친 발> <매직 아워> 여섯 편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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