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와 바게트

리호

브랜드 문학수첩

발행일 2020년 6월 5일 | ISBN 9788983928214

사양 124x198 · 192쪽 | 가격 8,000원

시리즈 시인수첩 시인선 35 | 분야 시집

책소개

위반을 꿈꾸는 보헤미안의 마법,

리호의 첫 시집기타와 바게트

 

‘시인수첩 시인선’의 서른다섯 번째 책은, 2014년 〈오장환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후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면서 마법적 상상력을 통해 자기만의 시적 세계를 구축해 온 리호 시인의 첫 시집 『기타와 바게트』이다.

시집 전체에 가득한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우리가 사는 지구별 곳곳의 다양한 문화 양상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보헤미안의 노래를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기타와 바게트’라는 특이한 제목처럼, 이 시집에서는 특정한 사회적 관습이나 풍습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분방한 관찰력과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종횡무진 지구촌의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는 시인 특유의 시세계를 감상할 수 있다. 시집 속에는 “벼루에서 부화시킨 난”(「묵향」)에서부터 “가을로 앞치마를 만들어 단 드린딜을 입은 하이디”(「포스트 잇」)에 이르기까지 동양과 서양을 가리지 않는 미의식이 가득하다. 지구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과 현상들이 모두 자신의 삶의 경험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심정으로 그 모든 것을 체험하려고 하면서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떠도는 영혼을 소유하고 있는 듯한 시인을, 시집의 해설을 맡은 황치복 평론가는 “유목민(nomad)이자 방랑자(vagabond)”라고 평한다.

 

상식적인 관념에 균열을 가하고자 하는 시적 열망

 

지구별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문화적 향연과 지리적 경이로움이 시집 『기타와 바게트』의 후경에 자리 잡고 있는 풍경이라면 일상과 상식의 전복 및 일탈 현상은 전경화되어 있는 주된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시집 1부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에피그램 속 ‘적도의 펭귄’이 그러한 사실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적도 지역에도 몇몇 종류의 펭귄이 살긴 하지만, 펭귄은 사실 극한의 추위를 연상시키는 동물이다. 시인은 이러한 동물을 적도에 배치해 놓으면서 일상의 감각과 상식적인 관념에 균열을 가하고자 한다.

마법사 오즈를 찾으러 가자

두뇌가 없는 허수아비, 심장이 없는 양철나무꾼

용기를 얻고 싶은 사자

나는 도로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적도의 펭귄 1

 

마다가스카르에 가면

 

우리의 상식을 깨는 동물들이 참 많지

사막에서 사는 게의 이야기

둘 중 하난 죽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하면

누가 죽을까?

게를 너무 많이 잡아먹어서 게를 수없이 그린 이중섭처럼

사막게를 잡아먹고 홀로 남은 게는

그녀의 초상화를 그릴까 그의 누드화를 그릴까

아니면 전갈을 불러들여 볼까

보름달 면사포를 쓰고 혼인댄스 마친 암컷 전갈이 자른 수컷의 목은 무슨 색일까

새를 먹는 타이거피시는 어때?

아니지 유황 가스 속에 사는 새우는 뜨거운 명함을 팔 수 있을까

그도 아니면 심장까지 훤히 보이는 투명 개구리는 어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말야

상식을 깨는 일들이 참 많아

북극곰과 남극 펭귄의 만남이

가당키나 한 일인지는 신께 물어보자고

이따금 안개 뒤덮인 불면의 사막에서

북극곰의 손을 슬며시 잡고 잠든 펭귄이 있었다고 하니까

―「156페이지, 신의 잠꼬대 편」 전문

“불면의 사막에서/북극곰의 손을 슬며시 잡고 잠든 펭귄”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상식을 깨는 일들” 가운데 하나다. 이뿐만 아니라, 시집 전체에는 “10만 원어치의 코끼리를 빼내는 중이다//코끼리 떼가 현금지급기 속으로 언제 들어갔는지 아무도 모른다”(「인간에게 치명적인 다섯 번째」), “화이트홀을 빠져나온 북극곰과 펭귄이/등대로 승격한 가로등을 세우고 있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었다”(「북극곰과 펭귄」)처럼 좀처럼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예외적인 사건들과 이미지들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시인이 상식적인 현실, 고정된 관념을 거부하는 이유는 그것이 어떠한 창조적 에너지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단 그러한 현실에 균열을 내면, 그때부터 무궁무진한 상상 속에서 끄집어낸 이미지들로 독창적인 시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 일상과 상식의 전복과 일탈에 대한 리호 시인의 관심은 매우 강렬하고 지속적인 것이어서 현실의 지반을 이루고 있는 그러한 상식과 고정관념에 대한 전복과 균열의 열망이 시인의 시적 전개를 추동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남들보다 생각이 좀 짙다는 이유로 타박을 받으며 자랐다

 

(……)

 

남들보다 눈빛이 좀 길다는 이유로 난 여왕의 대관식에 서게 될 것이다

―「표준 사이즈」 부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여기의 일상을 잊지 않는

 

지구를 형성하고 있는 독특한 지리적 이미지들은 시집 곳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와 시적 공간에 돌발적이고 충격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리호 시인이 지구별의 기괴하고 독특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있음을 증명하는 장면들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구별의 기괴한 이미지들은 낭만주의자들이 상정하는 그때-거기의 어느 이국적인 곳에 신기루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 살고 있는 지금-여기의 일상적 공간에 녹아 있다. 시인은 일상 속에서 이러한 이미지들을 친근하게 소비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또한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넘나들거나 전 세계 다양한 공간을 순간이동 하듯이 불쑥불쑥 인용하면서 극적인 비약과 경이로운 경험을 창출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신기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호사 취미나 딜레탕티즘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도 아니다. 시적 맥락을 보면 우리의 지구별이 간직하고 있는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 유산을 자산으로 삼아서 풍부하고 그윽한 삶의 정취를 이루고자 하는 시인의 열망을 확인할 수 있다.

사막 한가운데 모여 태우는 비법을 배웠다 염전 위 허허벌판에서 모래 풀무를 불러 모았다 360도 회전하는 몰드에 화장 끝낸 계절을 넣고 불을 지폈다 목각으로 만든 거대한 모형인간을 몰드 위에 세웠다 문명을 거부한 아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모래바다에 비스듬 잠수함을 띄우고 알몸에 검은 깃털을 심어 흑조를 완성했다

―「버닝맨」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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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보이나요 고흐의 귀, 바리케이드, 땅콩, 엉덩이, 거품목욕, 비둘기 똥, 묵주의 기도, 급식소 노인들, 인디언추장의 목소리 (괄호를 채워 보세요) (ㅇㅇ), (ㅇㅇㅇ), (ㅇㅇㅇㅇ), (ㅇㅇㅇㅇㅇ), (ㅇㅇㅇㅇㅇㅇ)

―「인디언달력을 표절할 시인들」 부분

시인이 추구하는 균열과 일탈, 전복과 위반의 시의식은 일상적이고 강고한 상징적 세계에 대한 균열과 간극을 만드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환상이란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기제가 된다. 작품 해설 속 황치복 평론가의 말에 따르면, 환상이란 “확실하고 굳건하다고 믿는 현실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으로 현실의 장벽에 의해 가로막혀 있는 무의식, 혹은 실재의 모습을 현현하는 장치”다. 고정되고 정형화된 현실에서 벗어나거나 초월한 리호의 시세계는 현실의 균열을 통해서 새로운 현실을 불러오는 마법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 “가슴에 노란 빠삐용 문신을 새긴”(「기타와 바게트」) 또는 “엄마를 사러 간 아내는 계단에 앉아 울었다”(「엄마를 사고」) 같은 비유와 표현이 말해 주듯 그의 시 어느 한 구석에도 청승이나 구질구질함이 없다. 그의 시는 동시대의 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난해한 시와는 조금 다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화려하고 당돌한 비유와 표현의 밑바닥에 실핏줄처럼 陰刻되어 있는 숨은 그림이 보이기 때문이다. 張三李四의 한숨과 눈물도 보인다. 어쩌면 여기에 리호 시의 참맛이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신경림(시인)

목차

■ 차례
시인의 말

1부
허들링의 황제들
묵향
156페이지, 신의 잠꼬대 편
버닝맨
다리 세 개 달린 탁자
기타와 바게트
툰드라의 눈
조율
노아
인간에게 치명적인 다섯 번째
기억 저장고의 미스터리
위장의 법칙
폭설의 카르마
검은 산호
바다를 뜯는 헤밍웨이
사면
표준 사이즈
스틸, 컷 1125
적도의 펭귄―열여덟 번째 기타와 열아홉 번째 태양에 관한 보고서
이니피(inipi)
북극곰과 펭귄

2부
건조한 악기
극장 옆자리
틱틱
크롭

부재중 이메일
새우깡 주문하는 남자
들어 봐, 갈대
인덱스
초성신공
체체
에베레스트섬―여름이 시작된다고 했고 에베레스트섬은 여전히 눈에 덮여 있다고 한다
다리와 꼬리의 일교차
사이다를 위한 엠바고
원형감옥의 다다이스트
나가는 곳 Exit Music

3부
부랴부랴 과속
장화 신은 비상구털이 소녀에 대한 인터뷰
그녀, 카주 입술 심드렁
겸을 던지다
희희낙락
잘 자라 우리 아가 앞뜰과 의자에서 별들도
냉동 밥도 잘도 자는데
엄마를 사고
포스트 잇
바다에 사는 소
호떡과 뽀뽀
천재지변
그렇게 폈다
인디언달력을 표절할 시인들

4부
위험한 중독
닥터 K 노시보 계시록
어린왕자는 죽지 않았어요
플라네타리움 켜는 황소
윤이월 동백 가출사건의 전말
운세 좀 봅니다
고구마를 먹는 꿈은 태몽 빵을 먹는 꿈은 길몽 파를 먹는 꿈은 흉몽 천장에 자몽을 그리고 잠들면 워워
마법사들·
모처럼 시리즈
구름, 속도를 부등호로 나타내시오
정말, 두 번째 거짓말
신이 나를 이 세상에 보낸 이유―괄호 속 글씨가 보인다면 당신은 이미 천사입니다
흘러가다
괄호를, 놓치다
기말고사

해설 | 황치복(문학평론가)
지구별에서 부르는 보헤미안 랩소디
―리호, 『기타와 바게트』의 시세계

작가

리호

2020년 전에 M2-9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는데 아무도 그 행성을 가 본 이가 없다.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14년 『실천문학』 제3회 〈오장환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제3회 〈이해조문학상〉과 제4회 〈디카시작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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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1. 최동훈
    2020년 6월 2일 12:42

    붉은 표지만큼이나 강렬한 문장들이 상상속에서 튀어나와 눈 앞에서 머물다가 심호흡 한번에 다시 숨어드는 어귀들을 찾아 다니며 작품을 이해하기 보다는 느낌으로 조금씩 알아가는 시집이라 생각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