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라이즈》 《태양의 제국》 《크래시》 등 하드코어 SF의 대가 J. G. 밸러드의 문제작!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를 크리스털로 만드는 신종 바이러스
이 섬뜩하고 매혹적인 죽음 앞에서 인간이 원하는 건
아름다운 종말인가, 삶의 희망인가?
나병원 전문의 에드워드 샌더스 박사는 옛 연인이자 친구인 수전이 보낸 편지를 읽고서 충동적으로 아프리카의 카메룬 공화국으로 떠난다.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문구는 단 한마디 “숲이 마치 보석의 집과 같다”는 것.
그러나 수전 부부가 체류 중인 몽 루아얄 지역은 이상 자연 현상으로 접근이 통제된 상태다. 할 수 없이 그곳으로 갈 방법을 찾으며 호텔에 머무르던 어느 날, 샌더스 박사는 원주민들이 시장에 몰래 내다 파는 정교한 크리스털 조각을 발견한다. 한눈에 봐도 평범한 물건이 아님을 알아채고는 기이하게 여기던 와중에, 팔에 크리스털 장갑을 낀 듯한 익사체가 강으로 떠내려온다. 샌더스는 강렬한 끌림을 느끼며 이상 현상 발생지인 숲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물건과 식물은 물론 동물과 사람마저도 크리스털로 만드는 크리스털화 현상을 실제로 경험한다. 크리스털로 겹겹이 쌓인 숲은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며 사람들을 유혹하지만, 사실 이것은 생물을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박제해버리는 기현상이다. 게다가 크리스털화되었다가 가까스로 구출된 사람들은 오히려 고통을 호소하며 다시 크리스털이 되기를 희망한다. 샌더스 박사 역시 목숨의 위협을 느끼며 간신히 수전 부부를 만나지만, 결국에는 다시 크리스털 숲으로 향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 소설에서 지구 멸망의 원인으로 제시된 ‘크리스털화’ 현상은 우주에 반은하(anti-galaxies)가 생기면서 양자가 무작위하게 방출되고, 그 결과 태양계 물질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 고갈되면서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소설 속의 인류는 그 어떤 해결책도 찾지 못한 채 서서히 멸망할 위기에 처하며, 나아가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의 모든 행성이 크리스털로 변할 운명에 놓인다.
그럼에도 밸러드가 소설 속에서 묘사한 파멸은 너무나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태양 빛을 무지갯빛으로 반사하는 나무들, 루비 눈을 가진 악어, 바로크풍 성전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별장, 다이아몬드로 변한 신발 등은 어린 시절에 상상했던 천상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점은 고통 속에서 삶을 지속하느니 차라리 크리스털이 되기를 자처하는 나병 환자의 모습을 통해 극대화된다. 마치 죽음이 가까워지는 시점에서 지지부진하게 삶을 이어나가느니, 차라리 아름다운 종말을 선택하겠다는 인류의 마지막 결정을 역설하는 듯이.
밸러드가 상상력을 동원해 창조한 새로운 공간 가운데 ‘크리스털 숲’이 가장 뇌리에 깊이 박혔다. 보석 격자에 갇힌 금빛 꾀꼬리, 다이아몬드 갑옷을 입고 미라가 된 정복자 콘키스타도레스가 있다니. 《크리스털 세계》는 마법 같은, 놓쳐서는 안 될 작품이다. ★《가디언》
아름답게도, 황홀함의 극치가 밸러드를 시인으로 만들어주었다. ★앤서니 버지스, 《시계태엽 오렌지》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