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한계에서 시작하다

우에노 지즈코, 스즈키 스즈미 지음 | 조승미 옮김

브랜드 문학수첩

발행일 2023년 3월 8일 | ISBN 9791192776439

사양 140x210 · 384쪽 | 가격 17,000원

분야 인문/사회

책소개

이런 차별은 이제 한계가 왔죠.”

여성의 새로운 길을 열어온 노련한 페미니스트와

젊고 자유분방한 페미니스트가 주고받는 솔직 대담한 편지

 

세계적인 페미니스트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와 두 차례나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오른 젊은 작가 스즈키 스즈미가 ‘연애와 섹스’, ‘결혼’, ‘남자’, ‘엄마와 딸의 관계’, ‘연대’와 ‘자립’, 그리고 ‘페미니즘’ 등을 주제로 주고받은 편지글을 엮은 책 《페미니즘, 한계에서 시작하다》(원제: 往復書簡 限界から始まる)가 문학수첩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고정된 성역할과 성별에 따른 위계질서, 그 굳건한 기반이 되어온 가부장제 등, 여성과 남성을 둘러싼 차별적인 구조가 한계에 이른 시대에 맞닥뜨리는 다양한 의문과 고민에 관해 이야기한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더 의미가 깊은 이 책에는 두 저자가 한국의 여성들에게 전하는 특별한 메시지가 실려 있다.

 

변화는 저절로 생긴 게 아닙니다.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난 겁니다. 변화를 일으켜 온 한국의 여성들도 그 사실을 실감하고 계시겠지요. 일본의 여성들은 한국 여성들의 움직임을 숨죽여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여성들께서도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관심을 보여주시겠지요. 우리 사이에 불행한 역사가 불러온 단절을 넘어서 ‘공통의 적’을 마주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우에노 지즈코, ‘한국어판 서문’에서)

 

 

에로스 자본’, ‘연애와 섹스’, ‘결혼에서 연대’, ‘페미니즘’, ‘남자까지,

이 시대의 키워드들을 둘러싼 페미니즘 문답

 

저자 중 한 명인 스즈키 스즈미는 1983년생으로, 페미니즘이 가져온 변화에 따른 희망과 좌절, 정체와 혼돈이 공존하는 시기를 온몸으로 맞닥뜨린 세대다. 스즈키 스즈미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사장이 되느냐, 아니면 사장의 아내가 되느냐, (……) 이 둘 사이의 좁은 틈 속에 있으면서 뭘 골라도 미련이 남는 탓에 어느 하나를 확실하게 선택하지 못한 세대”라고도 할 수 있다. 더욱이 일본경제신문사 기자로 일하기 전 AV 배우였던 과거가 낙인으로 남아, 사람들의 시선뿐만 아니라 남성 중심 성 시장에 가담했다는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한 개인적인 고민 또한 갖고 있다.

‘매력 자본(에로스 자본)’, ‘능력’, ‘자유’, ‘남자’ 등 열두 가지 주제와 관련한 열두 통의 편지를 보내면서 스즈키 스즈키는 우에노 지즈코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여성이 ‘피해자’라는 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여성운동에 찬물을 끼얹는 걸까요?”,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즐기고 싶은 사람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나요?”, “과거의 제가 어리석었다고 인정하면 그 자체로 다른 피해자를 상처 입히는 일일까요?” 이런 물음들은 비단 스즈키 스즈미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수많은 여성이 안고 있을 의문이다.

원제이기도 한 ‘한계에서 시작하다’는 스즈키 스즈미의 책 《귀엽고 심술 맞은 여동생이 되고 싶어》에 대한 우에노 지즈코의 논평에서 가져온 것이다(“이런 제목을 쓰는 건 이제 한계가 왔죠.”). 이 한계 밖으로 나가고자 발버둥 치는 젊은 작가에게 우에노 지즈코는 특유의 솔직하고도 직설적인 화법으로 페미니즘 사상의 정수를 전한다. 이는 노련한 학자의 경험과 관록이 깃든 인생 조언이기도 하다.

가령,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에로스 자본’이라 여기고 고등학생 시절부터 성을 팔았던 스즈키 스즈미에게 우에노 지즈코는 ‘자본의 소유자가 그 자본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재화를 자본이라고 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AV 여배우들이 피해를 증언하기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라면서 피해자로 여겨지고 싶지도 않고 약자로 취급받고 싶지도 않다는 스즈키 스즈미의 편지에 대한 답장에서는 일본 미투 운동의 시작을 이끈 이토 시오리, 그리고 위안부 피해자들을 들며 “[스스로가] 피해자라고 밝히는 것은 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강함의 증거”라고 말해준다.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이른바 ‘PC(정치적 올바름) 논쟁’에 대해서도, 자칫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까 염려하는 스즈키 스즈미에게 “무엇이 정치적으로 옳은지에 대한 ‘상식’이 이제야 겨우 정착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면서, “정치적 올바름이 무엇인지 아직 모두가 알지 못한 상태인데, 정치적 올바름이 낡고 진부하다고 하기에는 이”르다고 이야기한다.

10대 시절 성노동 현장에서 목격한 남자들의 모습에 사로잡혀 있는 스즈키 스즈미가 책에서 수없이 되풀이하는 질문, “우에노 님은 어떻게 남자들에게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나요?”라는 물음에는 냉소주의를 경계하면서 이렇게 조언하기도 한다.

 

‘어차피 남자는 다 그래’라고 저는 말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남자는 다 그래’라든지 ‘어차피 여자는 다 그래’ 같은 말은 ‘어차피 인간은 다 그래’와 비슷한 정도로 모독적인 말이라서입니다. 인간은 비열하기도 교활하기도 하지만, 고매하기도 하고 숭고하기도 합니다.(‘10장 페미니즘’에서)

 

현실에서도, 심지어 책 속에서도 얼마든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믿을 만한 사람과 만났을 때 사람을 믿을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 안에 있는 것 가운데 가장 무구한 것, 가장 좋은 것을 끌어낼 수 있”다고 우에노 지즈코는 말한다. 그리고 ‘11장 자유’에 이르러 스즈키 스즈미는 “‘남자란 것들은 변하지 않아’라고 느끼는 그 시점에서 페미니즘은 말라비틀어지고 공허한 울림이 돼버”린다는 걸 깨닫는다.

연애나 결혼에 관한 문제부터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살아가는 법, 최근의 페미니즘과 그에 대한 반발(백래시)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서 펼쳐지는 폭넓은 논의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여성들과 남성들, 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자극을 주는 것은 물론 앞으로의 삶에 지침이 되어준다.

 

 

막다른 곳에서부터 시작된 페미니즘

난무하는 폭력과 백래시 속에서 더욱 확고한 연대를 위하여

 

이 책에서 두 저자가 이야기하는 일본의 ‘백래시(페미니즘에 대한 반발)’는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익숙하다. 일본 행정 부처는 ‘남녀평등’ 대신 ‘남녀공동참획’을 공식적인 용어로 썼고, 애당초 적게 편성된 여성 관련 예산을 쪼개 남성 관련 정책에 할당했다. 한국의 ‘여성부’가 ‘여성가족부’로 바뀐 것이나 ‘여성가족부 폐지’를 버젓이 선거 공약으로 내세우는 것도 어찌 보면 여성을 지워버리려 했던 일본의 정책을 답습하려는 모양새다. ‘여자들은 이제 충분히 강하다’, ‘오히려 남자가 차별받는 세상이다’ 같은 주장이 난무하는 지금, 한국이나 일본이나 더 이상 개도국이 아닌 선진국의 젠더 관념이 절실한 때다. 이 책 《페미니즘, 한계에서 시작하다》는 중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는데, 이로써 동아시아 여성들이 살아가는 현실의 동시대성을 알 수 있다.

우에노 지즈코가 ‘5장 승인 욕구’에서 쓴 것처럼 “페미니즘은 내가 나이기 위해 남자의 승인 따위 필요 없다고, 내 가치는 내가 만든다고 주장하며 실천해 온 사상”이다. 하지만 페미니즘이 미치지 못한 곳에 있는 여성들에게는 남성의 승인뿐만 아니라 세상의 승인까지도 필요한 시대가 됐다. 거꾸로 말하면, 옛날과 달리 남성들과 나란히 고등교육을 받고 부모의 기대를 받고 자란 능력 있는 여성은 많아졌지만 그런 여성들을 받아들일 여건은 제도 면에서나 사람들의 의식 면에서 아직 미흡한 상황이다. 두 저자는 한 챕터를 할애해(‘9장 연대’) 이런 상황을 타개할 한 방법인 여성들의 연대에 대해 이야기한다.

‘연대’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발휘된다. 실제로 함께 모여서 시위하는 것뿐만 아니라, 서명 운동이나 최근 활발해진 SNS를 통해서도 연대는 가능하다. 인터넷을 통해 다른 나라 소식을 빠르게 알게 되고 그 나라 사람들과 접촉하는 일도 더 쉬워졌다. 일본의 젊은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을 어떻게 알게 됐냐’고 물으면 에마 왓슨의 2014년 UN 연설로 알게 됐다거나 한국 여성들을 보고 알게 됐다는 답이 돌아온다고 한다. 디즈니 만화영화 속 여자 주인공이 ‘공주’에서 ‘영웅’이 된 것도,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인 사랑을 그리면서도 ‘힘 있고 능력 있는 여성’의 모습을 부각한 것도 연대의 한 형태이자 좋은 변화라고 우에노 지즈코는 말한다.

인간은 복잡한 생물이기에 페미니스트 사이에서도 ‘표현의 자유’나 ‘결혼 또는 연애’에 대해, 심지어 ‘성매매’에 대해서도 모두의 의견이 일치할 수 없고, 심지어 한 사람이 지니고 있는 생각도 오롯이 한결같을 수 없다. 자기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경우 ‘넌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며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우에노 지즈코는 “페미니즘이란 어떤 물음을 제기했을 때 정답이 바로 나오는 그런 자동기계장치가 아”니라면서 “그래서 여태까지 페미니즘 업계는 논쟁이 끊이지 않는 의견의 각축장이자 활발한 무대”가 되었다고 말한다.

 

페미니즘은 이러한 이단 심문이나 마녀사냥을 피해갈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페미니즘이란 스스로 깨닫고 알리는 ‘자기 신고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페미니스트란 이름을 내건 사람은 모두 페미니스트지, 올바른 페미니즘이 따로 있고 틀린 페미니즘이 따로 있는 건 아닙니다. 페미니즘은 중앙 조직도 없고 교회도 없고 성직자도 없는, 한 마디로 중심이 없는 운동movement입니다. 누구누구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이단으로 판정할 사람도 없고, 그래서 제명도 할 수가 없습니다.(‘10장 페미니즘’에서)

 

페미니즘은 페미니즘 교육을 받은 사람에게도 받지 않은 사람에게도, 또는 비혼을 선택한 사람에게도 결혼을 선택한 사람에게도, 스스로 인식하는 자기 성별과 염색체가 일치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자 버팀목, 안식처가 되어주어야 한다. 특히 요즘 SNS에서 전해지는 페미니즘의 말들은 예전처럼 일부 지식인층이나 엘리트 여성들에게서 나온 게 아니다. 계층과 직업에 상관없이 여러 입장에 있는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말하고 있다.

“일상을 살아내는 순간에 여성이 조금이라도 부자유스러움을 느낄 때, 설령 그런 부자유스러움이 남성들의 성차별 때문이라는 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해도, 페미니즘에는 실제로 나를 구해줄 사상이 있다고 여기게 됐으면 좋겠”다는 스즈키 스즈미의 말에 이 책의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목차

■ 차례

한국어판 서문_우에노 지즈코, 한국어판 서문: 스즈키 스즈미

1장 에로스 자본
2장 엄마와 딸
3장 연애와 섹스
4장 결혼
5장 승인 욕구
6장 능력
7장 일
8장 자립
9장 연대
10장 페미니즘
11장 자유
12장 남자
후기를 대신하여

옮긴이 후기_조승미

작가

우에노 지즈코 지음

여성학과 젠더 연구의 일인자. 1948년 도야마현 출생. 도쿄대학교 명예교수이자, 2011년부터 인정 NPO법인 WAN(Women’s Action Network, 여성 행동 네트워크) 이사장. 저서로 《스커트 밑의 극장》,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근대 가족의 성립과 종언》,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여자들의 사상》,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돌봄의 사회학》(근간) 외 다수가 있다.

스즈키 스즈미 지음

작가. 1983년 도쿄 출생. 대학생 때 유흥업소 직원, AV 배우 등으로 일한 후,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일본경제신문사에서 기자로 근무했다. 저서로 《AV 여배우의 사회학》, 《몸을 팔면 끝이야》, 《사랑과 자궁에 꽃다발을》, 《일본의 아저씨》, 《기프티드》, 《창부의 책장》, 《8cm 힐의 뉴스쇼》, 《그레이스리스》 등이 있다.

조승미 옮김

대학에서 일어 교육을 전공하고, 2007년 도쿄대학교 대학원 인문사회계연구과 사회정보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여자들의 사상》, 《증오하는 입》,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다키야마 코뮌 1974》, 《초솔로사회》, 《생명의 여자들에게》, 《그림의 길, 음식의 길》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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