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에 관한 명상
김종철 시집
출판사 문학수첩
발행일 2001
분야 시집
사양 128x188, 164쪽
ISBN 9788983920751

시인의 말

네 번째 시집이다.
삼 년 간 구도적인 묵상을 통해서
내 자신을 찾아 울며 헤맸다.
굽은 못 하나가, 가장 하찮은 녹슨 못 하나가
내 기도였다니!

이제부터 못을 소재로 평생 詩를 쓸 것이다.
『못에 관한 명상』은 좀 부끄럽기는 하지만
내 詩의 참회록이자 명상록이며
못 연작시 제1부작에 해당된다.
제2부작 『못의 사회학』을 비롯하여
전 5부작을 끝맺는 날
나는 詩와 못을 내 손에서 놓을 것이다.
이 말은 나와 내 詩와의 계약이다.
못의 司祭로서.

김종철

목차

1. 사는 법
고백성사―못에 관한 명상 1
오늘도 못질을 합니다―못에 관한 명상 2
TIME―못에 관한 명상 3
소인국의 꿈―못에 관한 명상 4
해미마을―못에 관한 명상 5
사는 법―못에 관한 명상 6
눈물 골짜기―못에 관한 명상 7
일곱 악령―못에 관한 명상 8
애기똥풀꽃―못에 관한 명상 9
굴뚝과 나일론 팬티―못에 관한 명상 10
드라큘라―못에 관한 명상 11
너는 누구냐?―못에 관한 명상 12
못―못에 관한 명상 13
나는 못이다―못에 관한 명상 14
네가 무서워―못에 관한 명상 15
간음했다는 이야기를 읽다가―못에 관한 명상 16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못에 관한 명상 17
큰 돌―못에 관한 명상 18
나를 지나서 너희는 간다―못에 관한 명상 19

2. 몽당연필
천막학교―못에 관한 명상 20
몽당연필―못에 관한 명상 21
완월동 누나―못에 관한 명상 22
서양귀신―못에 관한 명상 23
주팔이와 콘돔―못에 관한 명상 24
요셉일기―못에 관한 명상 25
계엄령―못에 관한 명상 26
죄를 묻다―못에 관한 명상 27
대리모―못에 관한 명상 28
매형 요셉―못에 관한 명상 29
돋보기를 쓰며―못에 관한 명상 30
황혼을 보며―못에 관한 명상 31
책을 읽으며―못에 관한 명상 32
카드 놀이―못에 관한 명상 33
명상법―못에 관한 명상 34

3. 청개구리
청개구리―못에 관한 명상 35
엄마 엄마 엄마―못에 관한 명상 36
조선간장―못에 관한 명상 37
어머니―못에 관한 명상 38
솔거의 새―못에 관한 명상 39
말하는 새―못에 관한 명상 40
새가 되는 법―못에 관한 명상 41
빈 새장―못에 관한 명상 42
눈사람―못에 관한 명상 43
설녀―못에 관한 명상 44
킬리만자로의 눈―못에 관한 명상 45
걸리버와 함께―못에 관한 명상 46
핵겨울―못에 관한 명상 47
알라딘 램프의 겨울―못에 관한 명상 48
2월의 끝―못에 관한 명상 49
장승 이야기―못에 관한 명상 50

4. 개는 짖는다
개는 짖는다!―못에 관한 명상 51
목어에 대하여 1―못에 관한 명상 52
목어에 대하여 2―못에 관한 명상 53
본다는 것은 보는 사람 속에 1―못에 관한 명상 54
본다는 것은 보는 사람 속에 2―못에 관한 명상 55
본다는 것은 보는 사람 속에 3―못에 관한 명상 56
처용을 위하여 1―못에 관한 명상 57
처용을 위하여 2―못에 관한 명상 58
그것!―못에 관한 명상 59
감사기도―못에 관한 명상 60
무신론의 마을에서―못에 관한 명상 61
마음 밖에서도 보이는 마음 하나―못에 관한 명상 62
나귀의 詩 1―못에 관한 명상 63
나귀의 詩 2―못에 관한 명상 64
白頭山―못에 관한 명상 65

시 읽기

고백성사 - 못에 관한 명상 1

오늘도 못을 뽑습니다
휘어진 못을 뽑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못이 뽑혀져 나온 자리는
여간 흉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성당에서
아내와 함께 고백성사를 하였습니다
못자국이 유난히 많은 남편의 가슴을
아내는 못 본 체하였습니다
나는 더욱 부끄러웠습니다
아직도 뽑아내지 않은 못 하나가
정말 어쩔 수 없이 숨겨둔 못대가리 하나가
쏘옥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천막 학교 -못에 관한 명상 20

작은 등대 하나 오또마니 서 있는 바다
갈매기 부리에 찍혀
먼 수평선이 활처럼 휘어졌다
다시 펴지는 바다
푸른 파도가 기슭에 부서지면
까만 자갈돌이 와르르 손뼉치며
물가로 내닫는 유년의 맨발
질경이와 강아지풀 위에 세워진 천막학교에서
우리는 갈매기와 바다만 지겹게 그렸다
그러다 어느 날
미군이 사용하다 철수한 건물로 이사 가게 되었다
낡은 책걸상을 들고 왁자하게 산등성이 오를 때
낯익은 갈매기도 따라왔고
바다는 조금도 멀어지지 않았다
다만 그날 우리 앞을 가로막는 것은
미군부대 기름탱크가 새카만 얼굴로

철조망을 가리고 있었고
폭발물 주의! 붉은 글자와
흰 해골바가지 그림이 우리를 놀라게 하였다
선생님은 조례 첫날부터 이상한 물건을 보면
못이나 망치로 두들기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우리는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었다
어쩌다 재수 없이 똥마려운 날
미군놈 변기통이 얼마나 깊고 컴컴한지
허리춤 쥐고 밖을 나오면
그때사 철버덩 하는 소리에 기겁한 적이 한두 번 아니었다
비만 오면 군용트럭 지나간 운동장은
물웅덩이를 이루었고
어떤 것은 무릎 위까지 빠졌다
지네처럼 교정을 슬슬 기어다니는
바퀴자국 따라 우리는
갈매기와 함께 나는 꿈도 꾸고
헬로 껌! 헬로 껌!
신작로까지 걸어나간 꿈도 한두 번 아니었다

청개구리 -못에 관한 명상 35

어머니 유해를 먼 바다에 뿌렸다
당신 생전에 물 맑고 경치 좋은 곳
산화처로 정해 주길 원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비오고 바람 불어 파도 높은 날
이토록 잠 못 이루는 나는 누구인가
저놈은 청개구리 같다고
평소 못마땅해하였던 어머니가
어째서 나에게만 임종 보여 주시고
마지막 눈물 거두게 하셨는지 모르지만
당신 유언대로 물명산을 찾았는데
오늘같이 비만 오면 제 어미 무덤 떠내려간다고
자지러지게 우는 청개구리가
이 밤 내 베개맡에 다 모였으니 이를 어찌나
한 번만 더, 돼지 발톱 어긋나듯
당신 뜻에 어긋났더라면

비 오고 바람 부는 날
이처럼 청개구리가 되어 울지 않아도 될 것을

본다는 것은 보는 사람 속에 - 못에 관한 명상 54

밤마다 그대 만나기 위해
우주 정거장으로 나간다
내 잠시 머문 은하수 나변에
아내와 아이 함께 작은 집 짓는 것
이제 보니 먼 하늘 별자리로
서로 모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그래 우리가 본 세상 이름과
우리 그리던 형상 끊어버리니
깨달은 바 다른 경지 아니구나
우주의 언 이마에
허상의 별빛만 초롱초롱 맺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