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신불 시편
김종철 시집
출판사 문학수첩
발행일 2001
분야 시집
사양 130x210, 134쪽
ISBN 9788983920744

시인의 말

젊은 시절 나는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렸다 그러나 그 끝은
언제나 고통과 좌절뿐이었다

요즘 나는 한 말씀을 얻었다
그것은 결말을 구하지 않는 법(法)이다
이제는 어디에도 끝이 없다

2001. 2. 28.
김종철

목차

1. 등신불 시편
등신불―등신불 시편 1
성불하는 법―등신불 시편 2
몸 하나―등신불 시편 3
심심하다―등신불 시편 4
바보 등신―등신불 시편 5
밑 빠진 독―등신불 시편 6
오뚝이―등신불 시편 7
맨발의 유채꽃―등신불 시편 8
나는 없다, 없다, 없다―등신불 시편 9
너와 나―등신불 시편 10
깨침도 없이―등신불 시편 11
본다―등신불 시편 12
구화산 후기―등신불 시편 13

2. 소녀경 시편
강 저편에서는―소녀경 시편 1
구멍에 대하여―소녀경 시편 2
파본처럼―소녀경 시편 3
아프지 않어?―소녀경 시편 4
젖 물릴 여자―소녀경 시편 5
!―소녀경 시편 6
밤이 무서워―소녀경 시편 7
옥방지요 하나―소녀경 시편 8
잡타령―소녀경 시편 9
도는 법―소녀경 시편 10
구멍―소녀경 시편 11
이 짓 하나로!―소녀경 시편 12
오십고개―소녀경 시편 13
성불―소녀경 시편 14

3. 산중문답 시편
네팔에서―산중문답 시편 1
히말라야 설봉―산중문답 시편 2
마차푸차레봉을 바라보며―산중문답 시편 3
낮은 곳으로―산중문답 시편 4
구원의 노래―산중문답 시편 5
두타행―산중문답 시편 6
죽은 산―산중문답 시편 7
설련화―산중문답 시편 8
사모곡―산중문답 시편 9
곤충채집―산중문답 시편 10
하노이 연가―산중문답 시편 11
시화호를 바라보며―산중문답 시편 12
오줌을 누며―산중문답 시편 13
명상나무―산중문답 시편 14
오늘은―산중문답 시편 15
매미가 없다―산중문답 시편 16
휴거를 노래함―산중문답 시편 17
벌써 회갑이라니!―산중문답 시편 18
고개 속인 여정―산중문답 시편 19
우리들의 누님―산중문답 시편 20
4월의 노래―산중문답 시편 21
오도송―산중문답 시편 22

작품론/김재홍
등신불, 자유에의 길 또는 포월의지

시 읽기

등신불 -등신불 시편 1

등신불을 보았다
살아서도 산 적 없고
죽어서도 죽은 적 없는 그를 만났다
그가 없는 빈 몸에
오늘은 떠돌이가 들어와
평생을 살다 간다
성불하는 법
― 等身佛 詩篇·2
꿈속에서 누군가
성불하라고 한다
성불하는 법 일러주며
성불하라고 한다
화들짝 놀라 깨어나보니 꿈이었다
오늘은 구화산의 첫밤
뜬눈으로 두려움을 털다가
다시 깜빡 잠들었다
누군가 다시 나와
성불하라고 한다
나는 생시처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모든 것을 다 바꾸어라!’

맨발의 유채꽃 -등신불 시편 8

유채꽃 같은 슬픔
노오란 유채꽃 같은 절망
불경 따라 나선 길에 유채꽃은 웬말인가?
춘삼월 구화산 가는 길
유채꽃밭을 지나 유채꽃 등성이를 넘어
유채꽃 산맥을 넘어간다
몇 백 리 노오란 발길 물든
저 적막 끝에
문득 와 머무는 절벽 같은 독불,
부처도 맨발이구나!

곤충채집 -산중문답 시편 10

쓰르라미, 잠자리, 풀무치
생체로 잡아 핀으로 꽂아두었다
푸들거리며 갇혀 떠는 곤충들이
우리들 눈에는 즐거웠다
더 이상 자라지 않고
더 이상 죽지 않는 그들의 여름을
우리는 추억처럼 간직했다

삼십여 년이 지난 요즘도
꿈속에서 화들짝 놀라 깰 때가 있다
아직 숙제를 끝내지 못한 여름 하나가
밤마다 나를 잡기 위해
포충망을 들고 따라다녔다
등에서 복부를 관통한 핀 하나가

나를 더 이상 꿈꾸지 않게
더 이상 떠돌지 않게
그 여름의 끝에 매달아 두었다
그때마다 곤충이 아니길 기도했지만
내 옆에는 벌써 두어 사람이
십자가에 못질되어 울부짖었다

오줌을 누며 -산중문답 시편 13

어린 시절 오줌 마려우면
높은 곳에 올라가서 멀리 오줌을 누었다
포물선을 그으며 떨어지는 그곳
그곳 너머 한 발짝 더 가기 위해
뒤꿈치를 들고 안타깝게 아랫도리에 힘을 더 줬다
힘찬 오줌발이 한두 걸음 뻗어가듯
그렇게 젊은 날을 후회 없이 유랑하였다

사는 것이 오줌누듯 하지 않았다
숨어서 방뇨하던 시절
발 밑이 역시 인생이었다
요즘은 운 좋은 날이나 오줌발이 멀리 갈까
발 앞에서 몇 번 찔끔거리는
눈물 같은 이슬 같은 그것을 털고 또 턴다

남자가 아니면 모른다
대장부가 아니면 모른다면서
털어도 털어도 털리지 않는
아, 슬픔 같은 그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