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을 통한 존재탐구의 긴 여정
출판사 문학수첩
지은이 이숭원
발행일 2022
분야 평론
사양 128x188 · 232쪽
ISBN 9788983929792

책 소개

‘김종철 시인의 작품 세계’ 시리즈는 고故 김종철 시인의 시 정신과 시 세계에 대한 논의를 정리하는 뜻으로 발간하는 작품론 모음집입니다. 도시 문명에 대한 날 선 비판과 풍자, ‘못’을 인간 실존의 등가물로 형상화하여 포착해 낸 철학적 사유까지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통찰을 안겼던 시인의 삶과 작품 세계를 조명하고자 합니다.

따뜻한 통찰이 돋보이는 문단의 대표 평론가의 눈에 포착된 못을 통한 존재 탐구의 긴 여정

1986년 등단 이후 꾸준한 평론 활동을 펼치며 김달진문학상, 편운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유심작품상, 한국가톨릭문학상 등을 수상한 이숭원 평론가의 평론집 《못을 통한 존재 탐구의 긴 여정》이 출간되었다. 우리 문인들과 시를 꾸준히 지켜보며 순연한 슬픔을 바탕으로 하는 본원적 서정을 탐구해 온 저자는 한층 더 서정적이고 정밀한 현미경으로 김종철 시인의 삶과 작품세계를 들여다본다.

‘못’을 시의 테마로 삼아 평생 연작시를 꾸준히 발표해 온 고(故) 김종철 시인은 ‘윤동주 문학상(9회)’, ‘정지용문학상(5회)’, ‘박두진문학상(8회)’ 등 권위 있는 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 서정시의 내질을 깊이 있게 천착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저자의 예리한 시각에서 김종철 시인의 작품과 시 세계는 더욱 내밀한 의미를 띠고 깊이 있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시인이 ‘못’을 존재론적 탐구의 상징물로 삼고 40대 이후 그 탐구에 전념한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는 시인의 이러한 변화는 그의 초기 작품에서 이미 그 싹을 조용하게 틔우고 있다는 사실을 짚어낸다. 또한 20년 넘게 시인과 교류해 온 저자는 독자들이 시인의 작품은 물론 시인의 작품세계를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데 따뜻한 안내자 역할을 한다.

 

김종철 시인의 작품 세계 발간에 즈음하여

김종철 시인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이제 6년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는 느낌을,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이는 우리 곁에 그의 시가 있기 때문이다. 김종철 시인은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 마주해야 하는 아픔과 슬픔을, 기쁨과 즐거움을, 부끄러움과 깨달음을 특유의 따뜻하고 살아 있는 시어로 노래함으로써 시의 본질을 구현한 시인으로,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는 시를 통해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우리 곁을 떠났다는 엄연한 사실을 어찌 끝까지 외면할 수 있으랴. 이를 외면할 수 없기에 그와 가깝게 지내던 몇몇 사람이 모여 ‘김종철 시인 기념 사업회’를 결성했고, 시인의 살아생전 창작 활동과 관련하여 나름의 정리 작업을 시도하자는 데 뜻을 모은 것이 오래전이다. 네 해 전에 가족의 도움을 받아 이숭원 교수가 주관하여 출간한 『김종철 시 전집』(문학수첩, 2016)은 그와 같은 작업의 결실 가운데 하나다.

김종철 시인 기념 사업회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시인의 작품 세계에 대한 이제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는 작업과 함께 새로운 논의를 촉진하기 위한 시도를 병행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우선 이제까지 이어져 온 김종철 시인의 작품 세계에 대한 논의를 정리하여 매년 한 권씩 소책자 형태로 발간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런 작업의 첫 결실로 앞세우고자 하는 것이 김종철 시인과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던 김재홍 교수의 김종철 시인 작품론 모음집인 『못의 사제, 김종철 시인』이다.

김종철 시인의 작품 세계 발간 작업은 매년 시인의 기일에 맞춰 한 권씩 발간하는 형태로 진행될 것이다. 가능하면 발간 사업의 첫 작품인 김재홍 교수의 평론집과 같이 논자별로 논의를 모으는 형태로 이루어질 것이며, 필요에 따라 여러 논객의 글을 하나로 묶는 형태로도 진행될 것이다. 아울러, 새로운 비평적 안목을 통해 새롭게 시인의 작품을 읽고 평하는 작업을 장려하는 일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며, 이 같은 일이 결실을 맺을 때마다 이번에 시작하는 시리즈 발간 작업을 통해 선보이고자 한다.

많은 분들의 애정 어린 관심과 질책과 지도를 온 마음으로 기대한다.

 

2020년 5월 말 그 하루 무덥던 날에 김종철 기념 사업회의 이름으로 장경렬 씀

목차

■ 차례

김종철 시인의 작품 세계 발간에 즈음하여_장경렬 …5
머리말: 김종철 시의 올바른 평가를 위하여 …8

내가 만난 김종철 시인: 김종철 시인과의 인연 …17
제1시집 『서울의 유서』: 조숙한 청년 시인의 탄생 …29
제2시집 『오이도』와 제3시집 『오늘이 그날이다』: 새로운 형식 탐구와 모색의 과정 …62
제4시집 『못에 관한 명상』과 제5시집 『등신불 시편: ‘못’의 시와 존재 탐구의 길 …96
제6시집 『못의 귀향』: 존재 탐구의 다양한 층위 …141
제7시집 『못의 사회학』: 존재의 전환을 위하여 …168
제8시집 『절두산 부활의 집』: 생의 종말, 혹은 부활 …193

김종철 시인 연보 …227

본문 중에서

■ 본문 중에서

그는 마지막 차표를 끊어 천상의 언덕으로 갔고 우리도 언젠가는 그곳으로 가는 차표를 끊게 될 것이다. 저세상에 가서 그를 만난다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기발한 농담으로 그를 웃기고 싶은데, 그는 영락없이 이렇게 말해 내 기를 죽일 것이다. “이 교수는 왜 그렇게 농담을 못해?” 직선적으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금생에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깊고 섬세한 애정을 화통한 웃음으로 표현하던 그의 모습이 책 속에 흑백사진으로 남아 있다._27~28쪽, <김종철 시인과의 인연>에서

그의 초기작 두 편은 성격이 다소 다르지만 언어와 정서의 운용 방식은 유사하다. 「재봉」은 미래의 희망에 초점을 맞추고 아름답고 고운 언어로 정갈한 상징의 공간을 직조했다. 「초청」은 외롭고 차가운 자기 집을 방문해 줄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을 애상哀傷과 거리를 둔 정갈한 언어로 표현했다. 이처럼 그의 등단작들은 경건한 아름다움과 신비롭고 애잔한 이미지가 중첩되어 있다. 가혹한 청년기의 고초를 아름답고 정결한 이미지로 극복하려고 한 그의 시도가 유례를 찾기 힘든 독창적 성취로 결집된 것이다._37~38쪽, <조숙한 청년 시인의 탄생>에서

김종철 시인이 40대를 넘어서면서 ‘못’의 존재론적 탐구에 전념한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이 시기 그의 초기작들에 ‘못’의 표상과 연관된 시적 표현들이 많이 나온다는 사실은 거론한 사람이 거의 없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전도서』 1장 9절에 기록되어 있거니와 ‘못’ 시편의 씨앗이 초기 시에 잠복해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새롭게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이미 오래전에 잠재해 있었던 것이고, 어떤 계기에 의해 못이 솟아오르듯 표면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김종철 시인의 ‘못’의 주제 탐구도 어느 날 문득 솟아난 것이 아니다._53쪽, <조숙한 청년 시인의 탄생>에서

이 시집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장시의 기획이다. 장시는 그의 첫 시집에서도 「죽음의 둔주곡」이나 「네 개의 착란」 등에 시도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 시집에서는 「떠도는 섬」, 「해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까지」에서 본격적으로 시도되고 있고, 연작시인 「오이도」와 「몸」도 연작 형식의 장시로 읽을 수 있다. 요컨대 그는 단형의 서정시보다 호흡이 긴 장형의 작품을 통해 자신의 정동情動의 흐름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_63쪽, <새로운 형식 탐구와 모색의 과정>에서

과거의 삶의 과정에 잘못된 못처럼 박힌 자국은 상처처럼 남아 자신에게 자책감과 죄의식을 불러일으킨다. 그러
나 그 죄의식으로 하여 인간은 성숙해지고 정화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상처로 남은 ‘못’은 형벌이자 구원이며 저주이자 축복이다. 이러한 못의 상징성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김종철 시인은 자신의 실존 세계를 보는 독특한 시선을 획득했다._97~98쪽, <‘못’의 시와 존재 탐구의 길>에서

못과 망치는 따로 떼어서 생각하기 어렵다. 망치가 없으면 못은 무용지물이 되고 못이 없으면 망치도 쓸 데가 없다. 김종철의 시에서도 망치와 못은 한통속이다. 인간은 못을 치는 망치이기도 하고 망치에 박히는 못이기도 하다. 인간은 고통을 주고받는 존재이며 상처를 서로 확인하는 존재다. 고통과 상처가 확인되면 그것을 그냥 두지 않고 덜어내거나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가 또한 인간이다._152쪽, <존재 탐구의 다양한 층위>에서

김종철 시인은 용서와 망각을 통해 진정한 사랑과 공감을 기원한 것이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의 육체는 사라지고 그가 남긴 작품도 망각의 늪으로 가라앉지만 목 잘린 못의 표상은 주님의 복음과 함께 영원히 이어진다. 세상의 헛됨을 넘어서는 진실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다. 김종철이라는 사회적 존재는 망각되지만 그가 남긴 시가 진리 가까이 다가갔다면 세상의 헛됨을 넘어서는 영원의 달로 그 빛을 유지하게 된다._226쪽, <생의 종말, 혹은 부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