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우리 어머니
김종철 시집
출판사 문학수첩
발행일 2005
분야 시집
사양 양장 145x218mm, 152쪽
ISBN 9788983921789

시인의 말

1. ‘어머니’를 위해 부르는 두 형제시인의 애틋한 사모곡

신춘문예를 통해 나란히 등단하였고, 출판사를 경영하며, 문예지를 발행하고 있는 형제시인, 김종해·김종철 시인의 어머니를 기리는 사모곡 시편 『어머니, 우리 어머니』가 (주)문학수첩에서 출간되었다. 현재 우리 문단에는 형제시인이나 형제작가들이 더러 있긴 하지만, 김종해·김종철 형제시인처럼 현역으로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며 이렇게 함께 마음을 모아 어머니를 그리는 한 권의 시집을 엮은 예는 드물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는 어머니를 향한 두 형제시인의 기도이자,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바치는 예찬이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 시절,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 한 사람을 쓰라고 했을 때,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을지문덕 같은 역사상의 유명인물을 쓰지 않고 당당하게 ‘어머니’라고 적었던 어린 두 형제는 이제 등단 40년이 된 초로의 중진시인이 되어서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어머니를 향한 사모곡을 부른다. 한 끼를 굶고 냉수 한 사발 쭉 들이켜며 허기를 채우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던 그 시절, 어머니는 부산 충무동 시장 어귀에서 떡장수, 술장수, 국수장수를 하며 사남매를 키우셨고, 아이들은 물지게로 물을 길어 나르고, 절구통의 떡을 치고, 맷돌을 돌리고, 콩나물에 물을 주며 어머니를 도왔다.
시인으로 등단해 시를 써오면서도 두 형제시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가장 큰 시의 화두는 ‘어머니’였다. 그동안 시인으로 살아오면서 어머니를 그리고 사랑했던 마음을 시로 담아냈던 형제시인이 각자의 시집에서 어머니에 관한 시를 스무 편씩 골랐고, 한 편 한 편 마다 경희대 김재홍 교수의 시해설이 덧붙여졌으며, 서울대 장경렬 교수는 그들의 작품 세계를 깊이 있게 짚어주었다.

 

2. 시의 맷돌을 돌려 빚어낸 어머니의 사랑

맷돌을 돌린다
숟가락으로 흘려넣는 물녹두
우리 전가족이 무게를 얹고 힘주어 돌린다
어머니의 녹두, 형의 녹두, 누나의 녹두, 동생의 녹두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녹두물이
빈대떡이 되기까지
우리는 맷돌을 돌린다
충무동 시장에서 밤늦게 돌아온
어머니의 남폿불이 졸기 전까지
우리는 켜켜이 내리는 흰 녹두물을
양푼으로 받아내야 한다
우리들의 허기를 채우는 것은 오직
어머니의 맷돌일 뿐
어머니는 밤낮으로 울타리로 서서
우리들의 슬픔을 막고
북풍을 막는다
녹두껍질을 보면서 비로소 깨친다
어머니의 맷돌에서
지금도 켜켜이 흐르고 있는 것
물녹두 같은 것
아아,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 김종해, 「어머니의 맷돌」 전문
이 한 편의 시는 김종해와 김종철 두 형제시인이 거쳐야 했던 유년기와 소년기의 삶이 얼마나 신산한 것이었던가를 미루어 짐작케 해준다. 어린 시절이었던 1940-50년대, 가장 궁핍했던 시대를 건너오면서 겪었던 한국의 시대적 상황과 스산했던 삶의 어려움을 한 폭의 풍속화처럼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전하고 있는 이 시에서 ‘맷돌’은 힘주어 돌려야 겨우 돌아가는 삶 또는 견디기 어려운 무게로 압도해오는 삶 그 자체를 암시하고 있다. 소년 김종해가 “충무동 시장”에서 “밤늦게”까지 ‘장사’를 하는 어머니의 무거운 짐을 덜어드리기 위해 형과 누나와 동생과 함께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녹두물이 / 빈대떡이 되기까지” 힘겹게 맷돌을 돌리는 모습에서 우리는 고달픈 삶을 몸으로 견디어 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아직 둥지 안의 새끼 새들의 삶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어린 시인은 말한다. “우리들의 허기를 채우는 것은 오직 / 어머니의 맷돌일 뿐”이라고.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녹두물”에 뒤덮인 채 ‘스스로’ 돌아가는 맷돌, 힘겹지만 스스로 돌기를 멈추지 않는 맷돌은 곧 어머니 자신인 동시에 그녀의 삶인 것이다. “녹두물처럼 흘러내리는 눈물”에, 아니, 녹두물처럼 흘러내리는 ‘땀’에 자신의 몸과 삶을 맡긴 어머니인 것이다. 그러나 어린 시인은 “지금도 켜켜이 흐르고 있는 것 / 물녹두 같은 것”이 다름 아닌 “사랑”이었음을 당시에는 아직 깨닫지 못했다. 그리하여 깨달음이 때늦은 것임에 아쉬워하는 시인의 마음이 “아아”라는 탄식을 이끈 것이다. 바로 이 같은 때늦은 깨달음이 세상의 모든 아들과 딸을 슬프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이 어머니를 여읜 후에 왔다면 이로 인한 슬픔은 정녕 감당키 어려운 것이 될 수밖에 없다.

 

3. “엄마”, 세상에서 가장 짧은 아름다운 기도!

나는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
사십이 넘도록 엄마라고 불러
아내에게 핀잔을 들었지만
어머니는 싫지 않으신 듯 빙그레 웃으셨다
오늘은 어머니 영정을 들여다보며
엄마 엄마 엄마, 엄마 하고 불러 보았다
그래그래, 엄마 하면 밥 주고
엄마 하면 업어 주고 씻겨 주고
아아 엄마 하면
그 부름이 세상에서 가장 짧고
아름다운 기도인 것을!
― 김종철, 「엄마 엄마 엄마」 전문
위 시에서 시인 김종철은 “엄마”란 말이 “그 부름이 세상에서 가장 짧고 / 아름다운 기도”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러한 깨달음은 아직 어머니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행운아나 김종철 시인과 같이 어머니를 저세상에 보내고 애끓어 하는 모든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시를 읽다 보면 그런 깨달음이 “엄마 하면 밥 주고 / 엄마 하면 업어 주고 씻겨 주”는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읽힌다는 데 있다. 깨달음의 계기가 그러하다면, 이는 지나치게 유아적인 것이 아닐까. 사실 이 시의 묘미는 자신의 나이를 뛰어넘어 홀연 유아로 변신하는 시인을 짚어볼 수 있다는 데 있다. “엄마”를 부르는 순간 시인은 이미 “사십”을 넘긴 어른이 아니다. 그는 다만 “엄마” 앞의 한 어린아이일 뿐이다. 그 어린아이가 마음의 눈으로 본 어머니는 바로 “엄마 하면 밥 주고 / 엄마 하면 업어 주고 씻겨 주”는 그런 “엄마”인 것이다. “사십”을 넘긴 어른이 어린아이의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시인은 현실과 관념의 일방적 간섭과 방해를 뛰어넘어 ‘어린아이’가 된다. “엄마 하면 밥 주고 / 엄마 하면 업어 주고 씻겨 주고”라는 구절에서 시인은 이미 “엄마”의 품 안에 안겨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한 것은 바로 “엄마”라는 그 신비로운 “부름”이다. 시인에게 “엄마”는 하나님의 ‘말씀’과 같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세기 1장 3절)라는 성경의 구절이 암시하는 기적이 우리 인간에게도 가능하다면 그것은 바로 “엄마”라는 신비한 “부름” 때문이다. 그 부름이 우리에게 또 하나의 세계, ‘보기에 좋은’ 따뜻하고 아늑한 세계로 불현듯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그 부름이 세상에서 가장 짧고/ 아름다운 기도”임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다. “엄마”라는 말은 단지 세상의 모든 아들과 딸에게 푸근함과 부드러움, 따뜻함과 편안함만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나이 먹은 어른이라고 하더라도 그를 즉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도 “그 부름이 세상에서 가장 짧고 / 아름다운 기도”이다.

 

4. 삶의 위안이자 시의 생명인 ‘어머니’

부산 천마산 아래 초장동 산비탈에 옹기종기 모여 살던 시절, 한밤에 잠이 깨어 옥수수밭에서 밤똥을 누는 아이 곁을 지켜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에서처럼, ‘어머니’는 우리들 모두에게 개별적이며 유일한 의미를 지니는 존재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세상의 모든 자식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고, 삶의 온갖 고통과 절망을 이겨 나아가게 하는 분이다. 어머니는 어느 한계를 뛰어넘는 순간 사랑과 희생의 초월적 표상으로 영원히 되살아나, 자식들이 살아가는 현실세계의 힘이 되고, 위안이 되고, 희망이 된다. 꿈같고 동화 같은 세월, 가난했지만 아름다운 유년시절을 그리워하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 ‘어머니’를 불러보는 형제시인의 시집에는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때늦은 후회가 점철 되어 있다. 이 같은 때늦은 깨달음은 세상의 모든 자식들을 슬프게 하고, 더욱이 어머니를 여읜 다음에 찾은 깨달음일 때는 “청개구리의 슬픔”처럼 정녕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되고 만다.

“어머니가 주신 하늘을 덮고 잠을 자고 꿈을 꾸고 자라난” 두 형제시인이 오늘 “그 잇자국 선명한 사랑 하나”를 한 권의 시집 속에 옮겨놓은 것은 언젠가는 돌아가 다시 만날 영원한 고향인 어머니에 대한 끊을 수 없는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두 시인에게 ‘어머니’는 삶의 위안이자 시의 생명이 된다.

이 시집의 작품해설을 맡은 장경렬 교수는 “이 시집이 출간되면 나는 한 권 들고 한 마리 새가 되어 ‘기우뚱기우뚱’ 어머니를 향해 날아갈 것이다. 그러고는 날개를 접고 달려가, 어릴 때와 달리 이제는 내가 어머니를 안을 것이다. 문을 열고 나를 맞는 어머니를 힘껏 안을 것이다. 50여 년 전에 느꼈던 푸근함과 부드러움, 따뜻함과 편안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환한 웃음을 새삼 다시 맛보기 위해, 여전히 ‘엄마’를 부르면서 말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목차

김종해 시편
사모곡
어머니와 설날
가족
부산에서
별똥별
시루떡

 
김종철 시편
청개구리
종이배 타고
엄마 엄마 엄마
존선간장
사모곡
만나는 법
닭이 울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