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게, 큐레이터

뮤지엄에서 마주한 고요와 아우성의 시간들

남애리 지음

브랜드 문학수첩

발행일 2022년 6월 24일 | ISBN 9788983929624

사양 115x183 · 240쪽 | 가격 11,500원

시리즈 일하는 사람 8 | 분야 에세이

책소개

“망했다! 이 직업을 사랑하게 되다니!”

누구도 알 수 없는, 오직 자신만이 솔직하게 평가할 수 있는 큐레이터의 ‘업무능력’

시시포스 같은 숙명을 달고 때로 시트콤처럼, 때론 정극처럼 살아가는 큐레이터의 일상

‘큐레이터’ 하면 미술관이나 박물관 안에서 세련된 정장 차림으로 관람객들과 전시품 사이를 거니는 우아한 직업인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소소하게, 큐레이터>의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큐레이터의 전혀 다른 세계를 이야기한다. 정장 스커트와 망치처럼 전혀 이질적이고 어울리지 않은 것들로 하루하루를 채워 나가는 일상이 바로 큐레이터의 삶이다. 이 책에는 전시 공간과 전시품으로만 관람객들과 소통할 수밖에 없는 큐레이터의 생생한 일상을 담고 있다.

2년 동안의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저자는 “모든 것이 초고속으로, 미래로 향하는” 사회를 벗어나 정적이고 조용한 세계로 향하고 싶은 마음에 큐레이터가 되었다. 대도시를 벗어나, 절반은 농촌이고 절반은 공업 지역인 작은 도시의 박물관에 자리를 잡았다. 방문객이 뜸한 평일에는 마당에서 고양이들이 따뜻한 햇볕을 즐기며 낮잠을 자는 이곳에서 자신의 속도대로 살아갈 것을 꿈꾸는 저자의 희망은 얼마 되지 않아 산산이 부서진다. 작은 도시의 박물관 큐레이터 본연의 업무만으로도 1인 다역을 맡아야 했고, 문제는 이토록 고단하고 힘든 일에 저자가 그만 푹 빠져버린 것이다. 집에서 늦잠도 자고 엄마가 해주는 밥도 먹고 뒹굴거릴 생각을 하던 휴일, 도서관 논문 검색대에 앉아 거북목이 되도록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저자는 자신이 이 직업을 사랑하게 된 것을 깨닫고 “망했다”는 푸념을 쏟아낸다. 어떤 노고를 겪고 어떤 정성을 들여 ‘전시’라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지 누구도 알 수 없고 “이쪽 세계”의 사람이 아닌 이상 누구에게도 쉽게 인정받지 못하는 큐레이터의 세계. 누구보다 자신에게 솔직하고 정직할 수밖에 없는 저자의 내밀한 이야기는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넘나들며, 직업인으로 하루하루 각자의 서사를 만들어 가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와 성찰의 시간을 선사한다.

 

 

“백 번의 전시는 백 번의 케바케!”

소소하고 경쾌하게! 매 전시마다 태클 거는 현실적 난관을 울고 웃으며 극복해 나가는 힘

밥벌이가 아닌 ‘소확행’의 영역에서 살아가는 어느 직장인의 수수하게 반짝이는 순간들

하나의 ‘전시’가 개막되기까지, 그리고 폐막되어 박물관(혹은 미술관)이 본래의 ‘화이트 큐브’로 돌아오기까지 그곳에서는 평범한 예상을 넘어 놀라운 일들이 펼쳐진다. 어떤 성격의 전시를 하느냐에 따라 박물관은 망치질과 드릴이 작동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공사판이 된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고 난 다음 오프닝 날에는 정관계와 문화계 인사들이 찾아오고, 전시가 되는 동안 어린이집을 다니는 꼬마 손님부터 머리가 허옇게 센 어르신까지 연령만큼이나 성격도 다양한 별의별 관람객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폐막일 다음 날부터 전시 공간은 개막 이전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한다. 이렇듯 박물관이 시공간의 변화를 겪는 일련의 과정 한가운데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이가 바로 큐레이터다. 특히 각자의 업무 영역이 전문화‧세분화되어 있는 대규모의 박물관과 달리 인력이 한정되어 있는 작은 박물관의 큐레이터인 저자는 온갖 궂은일을 마다할 수가 없다.

서울에서 열리는 ‘핫’한 전시에 눈높이가 올라간 지역민들의 관람 욕구를 충족하면서도 숨겨진 지역의 특색과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기획을 고심하고, 터무니없는 예산을 홍보에 조금이나마 더 쓰기 위해 직접 전동 드릴로 나사못을 박고, DIY 공예 솜씨를 뽐내듯 웬만한 목공작업은 물론 집에서 다리미를 챙겨 와 전시 전날 체험 코너에 비치할 옛날 의상들을 다리기까지 한다. 우아하고 기품 있어 보이는 큐레이터라는 직함에는 ‘업무 보조’와 ‘도슨트’, ‘사무 담당’이라는 숨은 역할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질구레하고 다양한 업무를 감당하면서도 저자가 작은 박물관의 큐레이터로 소소한 행복을 찾으며 살아가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저자는 예전에 규모가 큰 기관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당시 자신의 역할은 연구서 편찬을 위한 편집 방향과 전체적인 윤곽을 잡기 위해 박물관 상설 전시실을 참조하는 것조차 상사의 지적을 받아야 할 만큼 규칙과 틀 속에서 마치 ‘커다란 기계의 부속품’이 되어야 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때문에 늘 쥐꼬리만 한 예산의 한계에 직면하더라도 참신한 전시를 기획하고, ‘큐레이터’와 ‘도슨트’의 개념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상사를 설득해서 인력을 확보하고, 온갖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동원해서 전시 설치 작업과 목공 작업을 익히고 메워나가는 이 일에 짜릿한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다. 고달픈 밥벌이의 영역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큐레이터의 일상은 ‘소확행’을 꿈꾸는 평범한 직장인들에게 힘을 불어넣는 든든한 응원이 된다.

내가 하는 일은 과연 이 세상에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고작 전시 따위”의 매너리즘으로 점철된 시간을 통해 삶과 일을 성찰하다

오늘도, 남들은 모르는 세계를 살아가는 세상 모든 직업인들에게 건네는 안부와 위로

소소하면서도 능동적인 직업인의 삶을 지향하는 저자도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이 희로애락의 사이클을 겪는다. 특히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유행병이 전 세계를 휩쓴 근래에 ‘큐레이터’란 직업에 대한 고민은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였다. 매일매일 삶과 죽음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의료인과 먹고 사는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고작 전시 하나 열고 닫는 것에 호들갑 떠는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가 된 듯한 기분에 빠져든다.

이러한 저자를 일으켜 세운 것은 바로 사람들이었다. 장애인 복지기관에 보내준 전시와 연계된 만들기 체험 세트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일상생활이 더욱 힘들어진 사회 소외계층에게 특별한 문화생활의 시간을 가져다주었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왜 일반인도 아닌 특수한 대상으로 기획했느냐는 면박을 당하면서 진행한 여성 암 환자를 위한 예술 프로그램에서는 ‘희망 님’이라는 여성에게 얼마나 큰 위안과 희망이 되었는지를 깨닫고 큐레이터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박물관의 가장 큰 고객이자 가장 경계해야 할 무시무시한 존재인 어린이 관람객이 건넨 종잇조각을 무심코 펼쳤다가 제 관점으로 해석한 그림을 보고 활기를 되찾기도 하고, 생애 처음으로 그림 전시를 보러 온 듯한 ‘작업복’을 입은 중년 남성을 어차피 제대로 보지도 않고 나갈 거란 생각에 기계적으로 맞아줬다가 그가 자신이 좋아하는 박생광의 작품을 보며 자신과 똑같은 감흥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고 큐레이터로서 부끄러움과 함께 전시의 힘을 깨닫기도 한다.

‘지금처럼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일이 과연 얼마나 힘이 될까?’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자기 직업에 대해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때가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이 하찮게 느껴지고,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여겨지는 매너리즘에 빠져드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순간들이야말로 자신의 일과 삶을 좀 더 진지하게 성찰하고 인생의 내공을 기를 수 있는 기회라고, 저자는 말한다.

목차

차례
프롤로그_‘학예사 자격증’이 데려다준 고양이와 고요의 세계… 6

1장. 전시展示는 늘 전시戰時 중
백 번의 전시는 백 번의 ‘케바케’… 17
전시 작업 중 제일 어려운 그것… 26
열정과 냉정 사이의 전시 보도자료… 33
전시 오프닝 때 하이힐을 안 신는 이유… 42
정장 스커트 입고 사다리 타기… 52
전시의 시작과 끝, 화이트 큐브를 만나는 시간… 62
미술품 도난 사건의 진실: 범인은 늘 가까운 곳에 있다!… 74

2장. 소소하게, 큐레이터
세상 모든 큐레이터를 이어주는 하나의 교집합… 87
소소하게, 큐레이터… 93
작은 박물관 큐레이터라서 다행이야… 101
사랑하지만 가져선 안 될 그 존재… 108
가끔은, 살아 있는 사람보다 역사 유물이 더 편하다… 115
어중간한 맛의 전문가… 124
큐레이터에게도 부캐가 필요해… 131
‘고작 전시 따위’가 지닌 힘… 140
‘성덕’의 은혜로운 월급 생활… 151
‘희망’의 장례식… 159

3장. 박물관 블루스
미술관에서 동물원까지의 거리… 173
전시 공간의 귀여운 반달리스트들… 177
덕후들이 만든 찬란한 세계, 뮤지엄… 190
70년 전의 편지… 197
작은 박물관의 짠내 나는 유물 정리… 204
‘그랜드 펜윅’의 큐레이터… 213
작업복 입은 아저씨의 예술 작품 감상법… 222

에필로그_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나는 ‘뮤덕’ … 232

작가

남애리 지음

생각 많고 책 읽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이 어쩌다 사람 만나는 일도 많은 큐레이터가 되었는지 지금도 의문인 평범한 직장인. 어릴 때 박물관 견학 가면 유물에서 눈을 못 떼고 있다가 선생님에게 혼나던 아이였지만 나중에 커서 전시를 기획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큐레이터로 일을 한 지 어느 덧 10여 년, 이런저런 창의적일 일을 하는 게 좋아서, 라는 이유로 업을 계속하고 있지만 매 순간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오늘도 새로운 일을 벌이고 있다.

자료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