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보내다

오탁번 지음

브랜드 문학수첩

발행일 2014년 4월 2일 | ISBN 9788983925114

사양 135x210 · 176쪽 | 가격 10,000원

분야 시집

책소개

품격 높은 유머로 삶의 본질을 꿰뚫는 독보적인 시인

오탁번 시인의 시집 『시집보내다』가 출간되었다.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오 시인은 시, 소설, 동화 등 다방면으로 활동해왔으며, <한국문학작가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등을 수상했고 오랜 기간 동안 시 계간지 『시안(詩眼)』을 발행하여 한국 시문학의 발전에 공헌했다. 한국문학 전통의 현대적 확인과 그 전개로써 가난한 사람들이 당하는 어려움을 통시적 상징의 구조로 파악한 것으로 평가받는 시인은, 천진함과 무구함과 유쾌함을 동반한 골계미를 통해 일상의 삶과 추억성의 사물들을 빛나는 감성으로 되살려왔다. “어릴 때 무엇이든지 신기하고 궁금하듯이 나이가 들면 다시 아이 때로 돌아간다. 솔잎에 맺힌 빗물도, 처마에 달린 거미줄도 모두 아름답게 보인다”고 얘기하기도 했던 시인은 특유의 유머와 재치를 통해 삶의 숨겨진 진실과 본질의 탐구라는 주제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풀어낸다. “술래잡기하는 아이처럼 되똥되똥 뛰어가다가 넘어지는 나의 시”라는 친밀한 말투로 자신의 시들을 다시 불러낸 오탁번 시인은 그동안 보여주었던 ‘재밌는’ 시를 억지로 뛰어넘으려 하지 않고 ‘더 재밌는 시’로 자연스레 옮겨간다. “요즘 젊은 시인들 시보다도 눈이 간다. 저도 모르게 웃고 있는 나 자신을 느낀다”고 시집의 작품론을 쓴 방민호 교수(서울대 국어국문학과)가 밝힐 정도로 오탁번 시인의 시는 과거 어느 때보다 생기 있고 탄탄한 웃음을 머금고 있다.

‘웃음’이라는 음표로 수놓인, 성과 사랑의 통찰이라는 악보

웃음은 좋은 약이다. 웃음은 삶의 쓸쓸함, 지루함을 잊을 수 있게 한다. 그간 출간한 시집들을 통해 ‘낯 뜨거운’ 유머를 보여준 바 있는 오탁번 시인은 ‘한국 시도 유머와 웃음이 깃들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새 시집 『시집보내다』에서도 품격 높은 유머 감각이 여전히 살아 있다.

젊은 날 술집에서 / 유두주乳頭酒 마시며 희떱게 논 적 있다 / (중략) / 오디빛 젖꼭지의 / 도드라진 슬픔은 모른 채 / 내 젊음의 봄날이 / 깜박깜박 반짝이는 불빛에 / 만화방창 활짝 핀 적 있다 // (중략) //그때 그 아가씨의 젖꼭지가 / 콧속으로 들어와서 / 숨을 막으며 벌주는 것일까 / 유두주 죗값 치르는 / 피 흐르는 봄날!
-「봄날」중에서

오탁번 시인은 강한 성의 감각을 유머로 바꿔내어 독자들을 웃게 한다. 웃음 짓게 하는 성적 감각은 생명의 활기이자 삶의 긍정성과 맞닿는다. 죽음이라는 숙명과 언젠가는 마주서야 할 우리에게 남자와 여자가 생명 에너지를 주고받는 과정은 축제와 같다. 그것은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게 해주고 절망을 견디게 해준다. 오탁번 시인의 시에서 이 성은 필사적이지 않아서 여유가 묻어나며, 인간적인 한계와 약점을 의도적으로 노출함으로써 그 과정이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눈으로 볼 수 있는 5천 개의 별은 우리 은하수 별의 고작 0.0001%에 지나지 않는다 // (중략) // 아내여 주민등록등본을 떼면 나하고 1cm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아내여 그대의 아픈 이마를 짚어보면 38조km나 이어져 있는 우리 사랑의 별빛도 아득히 보인다
-「별」중에서

시인은 ‘순수한 사랑’을 통해서도 삶의 진리를 유쾌하게 드러낸다. ‘인간이란 우주에 비해 얼마나 왜소한 것이더냐’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끔 우리를 이끄는 것이다. 그에게 우리 인간과 우리가 만들어가는 역사는 보잘것없고 찰나적인 덧없는 것이다. 오탁번 시인은 그러한 우리의 모습을 일상적인 사랑의 풍경에서 발견하며, 우리들 인간들은 얼마나 서로로부터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냐고 독자들에게 묻는다. 그는 자신과 아내 사이의 사랑이란 지극히 가까워 거리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낯간지러울 지경이고, 주민등록 등본상으로도 “1cm”밖에 안 되는 눈금 속에 있지만, 그래도 “그대의 아픈 이마를 짚어보면”, 마치 지구의 가장 가까운 별까지의, 그 “38조km”처럼 “아득히” 멀리 보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시인에게 있어 사랑은 아무리 가까워도 늘 그리움으로 남는 아득한 것이며, 그래서 언제나 간절한 갈구를 불러일으킨다. 작은 인간 존재가 온몸을 다해, 필사적으로 사랑을 만들어가는 진지함이 반짝이는 유머 뒤에 자리 잡고 있다.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샘솟는 진한 웃음들

오탁번 시가 주는 또 다른 흥미로움은 그의 과거로의 회귀, 회상으로서의 시작법, 고향과 유년을 향한 열정 같은 것이 선사하는 이야기의 ‘자잘한’ 재미로부터 솟아난다. 비상한 시적 기억력의 소유자인 그는 활판시선집 『사랑하고 싶은 날』의 서문 첫머리에서 썼듯이, 지금도 “나는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가는 그 옛날의 나다”라고 하는 귀향의 흥분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먼 과거, 유년, 고향은 이미 회복된 것으로 존재하는 대신, 현재의 상실과 병듦에서 자신을 회복시켜줄 것으로 기대되는 낭만적 동경의 대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겨울밤 화투를 치다가 동치미에 국수 말아먹고 바라보는 우탄치의 밤하늘은 캄캄한 몽골의 초원 같다 송아지 낳는 암소의 울음이 꼭 마두금 소리처럼 애처롭다 산 너머 들리는 기적 소리도 우탄치 우탄치 목이 쉰다
– 「우탄치」중에서

그러나 고향은 그가 돌아와 있는 만큼 회복된 것일 수도 있고, 또 그만큼 선연하게 유년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때 고향은 마치 「첫사랑」의 기억처럼 바로 시인의 눈앞에 존재한다.

천등산 박달재 사이 / 낮에도 부엉새가 우는 깊은 산골 // (중략) // 굴뚝새빛 단발머리 / 주근깨 오소소한 소녀와 / 까까머리 코흘리개 소년은 / 퍼져나는 향냄새에 취해 / 영겁까지 약속하는 / 토끼풀 반지를 끼고 // (중략) // 영원히 현재진행형인 줄 알았던 / 그 옛날의 사랑이 / 이제는 과거완료가 된 / 지워진 행간 속에서 / (중략) / -너를 사랑한다 / 이 한마디 말 / 오작교 난간에 걸어둘까 한다
– 「첫사랑」중에서

맨살이 주는 시적 카타르시스

한 여성 시인은 오탁번 제4시집을 받고는 “그의 시를 읽으면 맨살을 만지는 것 같다. 옷을 모두 벗고 알몸으로 시를 쓰나 보다”라는 농밀한 표현을 썼다. 아이의 놀이와 같은, 반성력 없이 유희를 반복하며 이 반복을 변주해나가는 오탁번 시인의 시는 맨살을 만지는 것 같은 감각을 준다. 허위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시를 ‘지어나가는’ 대신 즐거움, 쾌감, 웃음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생명의 생명됨을 구가하는 유희로서의 독보적인 시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눈 오시는 날 / 밖을 가만히 내다본다 / 넉가래로 눈 치우느라 애를 먹겠지만 / 그거야 다음 일이다 / 그냥 좋다 / (중략) / 대각선으로 날리던 눈발이 / 좀 전부터 허공에서부터 춤을 추듯 / 송이송이 회오리치며 쏟아진다 / ㅅㅅㅅ, ㅎㅎㅎ, 소란스레 눈소리 들린다
– 「눈 오시는 날」중에서

아이의 유희의 차원에서 독자들은 “맨살을 만지는 것 같”은 생생함, 생동감을 그대로 느끼게 된다. 이 ‘날것’으로서의 경험을 놀라움과 새로움 그 자체에 어울리게 표현하고자 하는 아이의 발성법은 오탁번 시인이 사용하고 동원하는 언어를 생생하게 만든다. 하지만 어른의 몸을 지닌 그는 몸을 통해 마냥 치기 어린 유희에 머물지 않는다. ‘오체투지’라는 육체를 통한 본질의 성찰 과정과 자연인으로서의 모습을 대조하며, 자연적 존재이며 우주적 소산으로서의 삶을 성찰한다.

오체투지五體投地 하는 티베트 사람들이 / 정녕 사람이라면 / 나는 한 마리 짐승이다 / 먹이를 쫓아 아무나 흘레붙는 / 몹쓸 짐승이다 / 더는 사람이 아니다
– 「나는, 아니다」 중에서

몸으로 보여줄 수 있는 쾌락과 성찰이라는 두 극점을 시로 표현함으로써 오탁번 시인은 가장 본질적인 삶의 아우라를 보여준다. 하지만 아주 유연하게, 여기저기가 비어 있지만 절대 허투루 비어 있지는 않은 상태로 그것들을 보여준다. 독자들은 그의 시 속에서 가장 본능적인 감각을 자극하며 삶을 성찰하는 흔치 않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목차

1
비백(飛白) ·17
마늘밭 1 ·19
마늘밭 2 ·21
풍경(風景) ·23
엄동설한(嚴冬雪寒) ·25
겨울잠 ·27
하일서정(夏日抒情) ·28
동창회 ·30
눈 오시는 날 ·32
우탄치 ·34
이소(離巢) ·35
우체부 ·37
느린 우체통 ·39
버스승강장 ·41

2
시인과 소설가 ·45
벼 ·47
코스모스 ·49
할까? ·51
춘몽(春夢) ·52
지훈유감(芝薰有感) ·56
오래된 편지 ·58
유작(遺作) ·60
시인 1 ·63
시인 2 ·64
이름에 관하여 ·65
오목눈이 ·67
먹반달 ·69
시집보내다 ·71

3
그림자에게 ·79
개꿈 ·82
진화론에 관한 명상 ·84
서울 길 ·86
첨성대 ·88
무인도(無人島) ·91
망졸(忘拙) ·93
개꼴 ·94
궁둥이 ·95
에잇! ·97
나의 유전자 ·99
부재중 전화 ·100
아뿔싸! ·102
지하철에서 ·104
봄날 ·106

4
얼굴 ·111
포유도(哺乳圖) ·112
빈대떡 ·115
태몽(胎夢) ·117
첫사랑 ·118
별 ·120
약속 ·121
젖동냥 ·122
적막(寂寞) ·123
개불알꽃 ·124
제비꽃 ·125
그냥! ·126
그리움 ·127
이별 ·128

5
나는, 아니다 ·133
미인도(美人圖) ·135
티베트의 초승달 ·137
야크 똥 ·140
야크 램프 1 ·142
야크 램프 2 ·143
우주달력 ·144
날짜변경선 너머 ·146
태양계에 관한 명상 ·148
천마도장니(天馬圖障泥) ·150
한글 ·152
녹두꽃 ·155

방민호|작품론·159
알몸으로 쓴 맨살의 시

작가

오탁번 지음

충북 제천 출생. 고려대 영문학과, 동 대학원 국문학과 졸업. 1967년 『동아일보』(동화), 1967년 『중앙일보』(시), 1969년 『대한일보』(소설) 신춘문예 당선. 시집 『아침의 예언』 『너무 많은 것 가운데 하나』『생각나지 않는 꿈』 『겨울강』 『1미터의 사랑』『벙어리장갑』 『손님』 『우리 동네』. 시선집 『사랑하고 싶은 날』 『눈 내리는 마을』이 있음.
<한국문학작가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한국시협상> <김삿갓문학상> <고산문학상> 수상. <은관문화훈장> 수훈. 1971~2008년 육군사관학교, 수도여자사범대학, 고려대 교수 역임. 계간시지 『시안』 발행·편집인 역임. 한국시인협회 회장 역임. 고려대 국어교육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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