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침착하게 예쁜 한국어

고운기 지음

브랜드 시인수첩

발행일 2017년 6월 30일 | ISBN 9788983926531

사양 124x198 · 110쪽 | 가격 8,000원

시리즈 시인수첩 시인선 1 | 분야 시집

책소개

“우리 시대의 중견 시인이 들려주는

사라져 가는, 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오랜 기억들에 대한 선연한 헌사”

그동안 새로운 시대의 감수성을 반영하고 정신적 가치를 담을 수 있는 시 전문지가 되고자 노력해 온 계간 『시인수첩』에서 2017년 6월 「시인수첩 시인선」을 새롭게 선보인다. ‘한국 시문학의 정체성을 새롭게 조명하고, 고유한 개성과 다양성을 펼칠 수 있는 장(場)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기존의 문예지 카르텔에서 배제당한 시인들을 함께 보듬고 그들이 비평가가 아닌 독자들에 의해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모든 힘과 열정을 보태고’자 했던 계간 《시인수첩》 의 창간 정신을 되돌아보고 시인선을 함께할 시인들을 모시게 되었다. 고운기, 유종인, 임동확, 고재종, 김병호, 황수아, 이지호 등 세대와 계열과 계파를 초월한 시인들을 통해 우리 시단이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시인수첩 시인선」에서 첫 번째로 선보일 시집의 주인공은 고운기 시인이다. 그는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는데, 시단에 새로운 정서적 충격을 일으키며 큰 주목을 받았다. 서정과 서사가 유기적으로 겹치는 신선한 리얼리즘을 선사하고 있다는 평가와 당돌하면서도 친화력 있는 표현들이 매력적이라는 당시의 평가는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시집  『어쩌다 침착하게 예쁜 한국어』는, 1987년 첫 시집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 이후, 꼭 30년 만에 출간하는 여섯 번째 시집으로 한국 정통 서정시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게 되었다. 시인과 가까운 이들이 그를 ‘저평가 우량주’라 아쉬워하는 것처럼, 지금까지 그의 시적 가치는 주류의 평단에서 다소 소홀하게 다뤄졌던 점이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서정시의 교과서라 불릴 정도로 지나치게 규범적인 그의 서정시법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려한 외피적 수사나 현학적 철학을 생래적으로 거부해 왔기 때문에, 그는 2천년대 미래파의 습격(?)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 서정시의 영역을 지켜내고 있는 낭만적 서정주의자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겨울철 어느 날 눈이 많이 왔다./황룡사 말단 스님 한 사람이 저물 무렵 삼랑사에서 돌아오다 천암사를 지나는데, 문밖에 웬 여자 거지가 아이를 낳고 언 채 누워서 거의 죽어 가는 것을 보았다./스님이 보고 불쌍히 여겨 끌어안고 오랫동안 있었더니 숨을 쉬었다./옷을 벗어 덮어 주고, 벌거벗은 채 제 절로 달려갔다.

기록에 나오는 우리나라 최초의 스트리퍼,/탈의의 목적이 달랐을 뿐이다.

여름철 어느 날 태풍 주의보가 내렸다./국회 앞 경찰 한 사람이 ‘중증 장애인에게도 일반 국민이 누리는 기본권을 보장해 달라’는 피켓을 든, 휠체어 탄 장애인을 보았다./경찰은 ‘태풍 때문에 위험하니 들어가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장애인은 ‘담당하는 시간’이라며 거절했다./가만히 뒤에서 우산을 들고, 아무 말 없이 태풍 속에 서 있었다.

하늘에서 왕사(王師)에 앉히라는 소리가 들렸다./트위터에 경찰청장 시키라는 댓글이 올라왔다.

– 「탈의나주(脫衣裸走) -삼국유사에서 3」 전문

고운기는 세상이 다 아는 『삼국유사』 전공자이자 권위자이다. 그는 20년 넘게 『삼국유사』의 현대적 해석과 재조명 작업에 몰두하면서 고대의 인문과 사상, 역사를 아우르는 문화사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이번 시집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고운기 시인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그는 『어쩌다 침착하게 예쁜 한국어』를 통해 풍요로운 서사와 문화적 콘텐츠를 새롭게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재구성함으로써, 우리 문화의 연속성과 확장성 규명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삼국유사』에서 빌려 온 혹은 거기서 착상한 연작들을 선보임으로써, 그는 고전의 상상력에서 수많은 서정적 순간들을 생성해 내는 일관성을 보여 준다. 새로운 언어에 참여하면서 거기서 신생의 순간을 발견하는 과정을 ‘깨달음’이라고 한다면, 고운기 시편은 바로 그 깨달음의 과정에서 쓰인 것이라 해도 틀릴 것이 없다. 그 점에서 우리는 고운기 시를 통해 그동안 인지하지 못한 삶의 관념이나 가치를 경험적으로 깨닫게 된다. 특히 그가 지닌 시적 감각이 단순히 생래적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고전 문학 연구자로서 현대시를 쓰는 과정에서 얻은 근원적 성찰과 균형감각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시집 전반에서 살펴볼 수 있다.

게르 지붕에 닿은 하얀 빛/기억하는 순간의 눈동자를 내게 말해 다오

고비의 아가씨여/나는 사막을 모른다/어쩌다 침착하게 예쁜 한국어가 그대의 가슴을 흔든다면/고렷적 시집 온 여인의 유전자라 여기겠다/귀축(歸竺)의 한나절/잠시 눈길을 준 젊은 승려가/지금 어디서 말 모는 지아비가 되어 있는지/살아 있는 매의 다리를 빌려 다오

전령이 되기에 늙은 나이/나는 이 사막을 한 번은 건너리라 기약하는 것이다

-「어쩌다 침착하게 예쁜 한국어 – 고비에서 3」 전문

특히 시집  『어쩌다 침착하게 예쁜 한국어』는 낭만적 진정성과 서정시의 심미성을 밀착하면서 우리가 도달해야 할 본질적 가치를 산뜻하게 그려 낸 시집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의 시들은 근본적으로 낭만적 속성을 띠면서 그와 동시에 절절한 자기 고백적 속성을 담아내고 있다. 작품 해설을 맡은 유성호 교수는, 그의 작품들이 낭만적이고 회귀적인 진정성으로 관통되고 있는데, 이는 시인으로서 경험적 실감에서 나온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의 작품 안에는 그만의 특유한 기행(紀行) 경험과 문헌 섭렵 경험이 단단하게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점 또한 고운기를 우리 시단에서 항상적인 서정시인으로 만들어 주는 원리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고운기는 이번 시집에서 견고한 현실 질서에 맞서 절실하고 감동적인 상상적 표지(標識)들을 하나하나 세워 나가는데, 그렇게 그의 시는 근본적으로 낭만적 속성을 띠면서 그와 동시에 절절한 자기 고백적 속성을 담고 있다. 이번 시집이 낭만적이고 회귀적인 진정성으로 관통되고 있다는 이러한 판단은 단연 시인으로서 그의 경험적 실감에서 나온다. 그 안에는 그만의 특유한 기행(紀行) 경험과 문헌 섭렵 경험이 단단하게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 점 또한 고운기를 우리 시단에서 항상적인 서정시인으로 만들어 주는 원리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낭만적 진정성이 그로 하여금, 하나하나 사라져 가지만 그 심층에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기억들을 톺아 올리게끔 하는 힘이 되어 주고 있다.

– 해설 「사라져 가는, 사라지지 않는 기억들 고운기의 시 세계」에서

고운기의 이번 시집은 낭만적인 감각과 사유, 그리고 그 결과를 삶의 보편적 이법으로 끌어올리는 유비적 상상력을 커다란 특징으로 내포하고 있다. 그의 시편에는 과장된 페이소스나 감상벽(癖)이 절제되어 있고, 그는 현실을 관통하는 소재를 끌어올 때도 모든 사물을 기억으로 수렴해 들이는 과정을 놓치지 않는다. 그는 가장 구체적인 지상의 사물들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것들에 얽힌 시간과 기억을 노래해 간다. 어느덧 등단 35년에 들어서는 우리 시단의 중견 시인이 들려주는, 사라져 가는, 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오랜 기억들에 대한 선연한 헌사가 아닐 수 없다.

목차

■ 차례

시인의 말

1부
사막의 농구 – 고비에서 1
지평선 360도 – 고비에서 2
어쩌다 침착하게 예쁜 한국어– 고비에서 3
여름 플라타너스
가랑잎처럼 외로운 저 사람이
겨울 안부 1
겨울 안부 2
눈이 온 설날 아침의 기억
봄날
봄의 노래
또 가는 봄날
시화호 왜가리

2부
응불확치(鷹不攫雉) – 삼국유사에서 1
득주지우(得珠之憂) – 삼국유사에서 2
탈의나주(脫衣裸走) – 삼국유사에서 3
적요명월(笛搖明月) – 삼국유사에서 4
총중호인(塚中呼人) – 삼국유사에서 5
삼사삼권(三辭三勸) – 삼국유사에서 6
대종역경(大種力耕) – 삼국유사에서 7
경중지우(鏡中之偶) – 삼국유사에서 8
이합유수(離合有數) – 삼국유사에서 9
일야작교(一夜作橋) – 삼국유사에서 10

3부
삼천포
길손으로 진주에 와서
군산(群山)
다시 벌교에 와서
오류동
유빙(流氷)을 보며
어머니의 남자
이층 침대
아침 버스
3학년 2반 교실 유리창
홍대 앞 초등학교
옛날의 이 길은
달과 함께

4부
꽃밭에는 꽃들이 –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어린 영혼들에게
벚꽃 세상으로 벗들을
기억
세월
여기가 명량인데, 뭘?
그 여학생
그날
오랜 벗 안도현의 일이 있어
맑은물관리사업소
속물(俗物)의 일상
쉰… 남자
쉰… 여자
밤의 검침원

해설 – 유성호(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사라져 가는, 사라지지 않는 기억들 고운기의 시 세계

작가

고운기 지음

1961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났다. 한양대학교 국문학과와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시힘’ 동인이다. 시집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 『섬강 그늘』 『나는 이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 『자전거 타고 노래 부르기』 『구름의 이동속도』 등이 있다. 현재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에서 『삼국유사』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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