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이 되어가고 있다

차재신 지음

브랜드 문학수첩

발행일 2024년 2월 20일 | ISBN 9791192776996

사양 115x190 · 120쪽 | 가격 12,000원

분야 시집

책소개

문학수첩 시인선 118

영원이 되어 가고 있다

 

당신의 이름을, 삶을 시로 만들어 드립니다
한 명의 목소리가 아닌 여러 명의 목소리를 내는
한국 문학의 새로운 시인, 차재신의 첫 시집

 

‘최고의 시’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필요한 시’를 지향하는 문학수첩 시인선이 동시대의 감수성과 정신적 가치를 보다 잘 담아내고자 오랜만에 새로운 표지로 단장했다. 그리고 문학수첩 시인선의 새로운 걸음을 함께한 시집은 2023년, 계간 《가히》 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차재신 시인의 첫 시집, 《영원이 되어 가고 있다》이다. 시인은 동료에게 그 사람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시를 선물로 써서 주다, 이러한 창작 방식이 보다 많은 사람의 이름으로 쓰인다면 더욱 커다란 울림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결과 성별도, 연령대도, 살아온 환경도 전혀 다른 50명을 만나 대화하고, 끄덕이면서 그들의 삶을 한 편의 시로 엮고 또 한 권의 시집으로 묶어 냈다. 차재신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현시대에서 시의 쓸모를 다시금 고민하는 시인의 자세와 동시에 사람의 이름이 시로 피어날 때 새롭게 들리는 나와 너, 우리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만약 시가 어렵게 느껴졌던, 혹은 시가 어떤 쓸모가 있느냐고 생각했던 독자라면 《영원이 되어 가고 있다》를 통해 한 명의 목소리가 아닌 여러 명의 목소리를 통해 그동안 느껴 보지 못했던 시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연휴 같은 사랑이 지나고 있었다
내 곁을 스쳐가는 의미들의 반짝임을 살펴보다

 

어느새 눈으로 뒤덮인 선로 위였습니다 밑으로 그동안 뛰어내렸던 유리창들이 눈송이처럼 흩어져 있었습니다 한 걸음 발을 내딛자 사방이 점점 환해집니다 허리가 끊어진 길 너머로 기차가 달려오고 있습니다 나는 이 세계가 빛무리처럼 다시 태어날 것임을 망각합니다 눈을 질끈 감자 몸을 통과한 빛이 무수히 쏟아집니다

― 〈연정모〉 부분

 

우리가 샛별이 아닌 셋별로 만났을 때.

 

샛과 셋이 다르듯 숨과 품이 다르다. 씨앗을 심는 일과 씨앗을 품는 일. 녹빛을 흩뿌리며 정원으로 흩어지는 이파리들.

― 〈이셋별〉 부분

 

차재신이 다룬 시적 인물들을 공통된 카테고리 안에 넣기란 어렵다. 시의 제목이 모두 시적 인물의 실명인 고유 명사로 이루어져 있거니와, 신원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차재신이 이름에 상징성이 부여되는 걸 막기 위해, 즉 한 사람 한 사람을 그저 그 인물 자체로 드러내고자 의도한 방식이다.

시인은 깊은 애정과 각별한 충실함을 통해 개인을 시적 인물로 발화하면서, 그 인물을 형상화하기 가장 적합한 형식과 기법, 이미지 등을 맞춤으로 만들어 냈다. 사전에 있는 ‘샛별’이란 단어 대신 누군가의 이름인 ‘셋별’로 만나 녹빛을 흩뿌리듯이, 눈발처럼 흩날리는 무수한 이름들을 그러모아 빛무리로 일구어 내듯 말이다. 그렇기에 얼핏, 연관된 부분이 없어 보이는 차재인의 시편들은 기실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과 그 개인들이 연결해 만들어 내는 사회의 ‘미니 맵(Mini map)’으로 거듭나게 된다. 작지만 주목할 수밖에 없는, 반짝임으로 가득한 차재신만의 세계인 셈이다.

 

소희는 도시에서 도시 공학을 공부했다. 도시를 공부할수록 알게 된 것은 도시 전체를 관통하는 배관의 원리나, 맨홀 뚜껑의 규격, 도시의 오물을 원활히 통하게 하는 도랑의 조건 따위였다. 소희는 점점 잿빛 얼굴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도시의 색인지 소희의 색인지는 알 수 없었다.

 

길고 긴 연구 끝에 소희가 새로운 도시를 세웠을 때, 보성이 어디론가 떠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소희는 희미해진 보성의 윤곽을 떠올렸다. 소희와 보성은 밥과 빵처럼 다르기도 했고, 밥과 빵처럼 닮아 있기도 했다. 도시의 변두리를 달리며 소희는 보성이 떠난 곳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소희는 마지막으로 보성에 간다.

연휴 같은 사랑이 지나고 있었다.

― 〈김소희〉 부분

 

시집의 해설을 쓴 김병호 시인은 차재신 시인이 “자신의 시에 등장하는 시적 인물들에게 보편적 도덕률이나 사회적, 역사적 굴레를 강요하지 않”음에 주목하며 차재신이 “오히려 그들의 삶에 개별적 보편성을 부여하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사회를 규정하고 예측, 판단하는 사회학이나 혹은 추상화하는 역사학과는 달리, 문학이 지닌 힘은 사회를 이루는 요소로 기능했던 이름들을 개인에게 돌려주고 파닥이는 비둘기처럼 날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대기적 사건을 나열하거나 과거에 대한 실증적인 기록을 넘어 개인의 다채로운 삶을 조망하며, 실존적 인간의 삶과 경험 그리고 그것들이 지닌 이미지에 가닿고 있는 차재신의 시편들은 영리하고도 따뜻하게, 무엇보다 반짝이게 개인의 삶을 표현한다. 한 명의 목소리가 아닌 여러 명의 목소리 나아가 여러 명이 내는 하나의 목소리가 여기, 도착해 있다.

■ 본문 중에서
유령은 벗어나는 것. 넘어간 낱장과 넘어가는 낱장 사이. 창틀에 가려진 유리 사이. 날아가는 돌과 개구리 사이. 산 사람과 살 사람 사이. 이미와 아직 사이. 문틈으로 흐르는 빛.
_8~9쪽, 에서

기타는 배신하지 않는다. 수학처럼. 나는 정교한 것들을 사랑한다. 일정한 선의 간격. 정확한 코드를 짚으면 정확한 소리를 내는 것. 나는 가까스로 서 있다. 찌르면 정확히 절규한다. 정확히 좌절한다. 정확히 운다. 실수로 아름다워지려 한다. 선을 모조리 뜯어낸다.
_18쪽, 에서

침대란 꿈으로부터 나를 유예하는 것. 미온수의 형태로 흐르는 것. 수면 위로 나는 떠다니고 있다. 말하기 전에 이미 준비된 사람처럼. 죄를 짓기도 전에 죗값을 치른 것처럼. 편안해질수록 나는 침대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_24쪽, 에서

나의 업무는 버러지에게도 존대하는 것. 언어를 순화하는 것. 주민을 주민답게 응대하는 것. 인간을 상대할수록 나의 시간은 아까워져만 갔습니다. 사람이 아까운 것은 참을 수 있어도 시간이 아까운 것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이 아닌 파티션으로 둘러싸일 때 나는 가장 안정되었습니다.
_32쪽, 에서

책을 열면
젖은 글씨가 물에 번져 떠다니고

입을 벌려도 소리가 닿지 않는 곳

태어나지 않은 이야기와
끝만 남은 이야기 속에서

백지처럼
텅 빈 도서관

파묻은 얼굴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_66~67쪽, 에서

돌을 집으면
오래 생각하는 버릇이 생긴다

처음에 둔 돌이
가장 나중의 돌이 될 때까지

더 길게
기억하는 사람이 이기는 규칙
_74쪽, 에서

옷장 속에 몸을 넣고 문을 닫았다.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모서리마다 이끼가 자라고 있었다. 바글거리는 것들을 보니 살아 있구나, 느껴졌다. 이끼는 어디서든 살아갈 텐데. 어떻게든 살 텐데. 그렇게 살아 있다는 것을

영영 나는 말할 수 없었다.
_93쪽, 에서

리뷰

시집의 해설을 쓴 김병호 시인은 차재신 시인이 “자신의 시에 등장하는 시적 인물들에게 보편적 도덕률이나 사회적, 역사적 굴레를 강요하지 않”음에 주목하며 차재신이 “오히려 그들의 삶에 개별적 보편성을 부여하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사회를 규정하고 예측, 판단하는 사회학이나 혹은 추상화하는 역사학과는 달리, 문학이 지닌 힘은 사회를 이루는 요소로 기능했던 이름들을 개인에게 돌려주고 파닥이는 비둘기처럼 날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대기적 사건을 나열하거나 과거에 대한 실증적인 기록을 넘어 개인의 다채로운 삶을 조망하며, 실존적 인간의 삶과 경험 그리고 그것들이 지닌 이미지에 가닿고 있는 차재신의 시편들은 영리하고도 따뜻하게, 무엇보다 반짝이게 개인의 삶을 표현한다. 한 명의 목소리가 아닌 여러 명의 목소리 나아가 여러 명이 내는 하나의 목소리가 여기, 도착해 있다.

목차

■ 목차
박현근 … 8
송지연 … 10
박민지 … 12
한영선 … 14
손민이 … 16
이헌재 … 18
이새샘 … 20
김수민 … 22
김정민 … 24
연정모 … 26
임소희 … 27
정명석 … 28
이준기 … 30
이수빈 … 32
장한이 … 34
이충래 … 36
문성희 … 38
황수진 … 39
허슬기 … 41
김예림 … 43
정보경 … 45
김준엽 … 47
김형섭 … 49
김민지 … 51
전찬혁 … 54
안덕진 … 56
노현아 … 58
장희진 … 60
김미정 … 62
박희원 … 64
이재영 … 66
양건희 … 68
이셋별 … 70
김성아 … 72
나인채 … 74
이하정 … 76
김소희 … 78
김성은 … 80
피은선 … 82
김지수 … 84
홍은정 … 86
김소희 … 88
박선영 … 89
강나을 … 91
김은희 … 92
조다솜 … 94
이수현 … 96
정산호 … 98
윤태현 … 101
이준민 … 103

해설 | 김병호(시인)
가만 읊조리면, 어느새 내 곁에 와 있는 사랑과 사람들 · 105

작가

차재신 지음

199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23년 제1회 계간 《가히》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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