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멀고 흐리다

김혜정 지음

브랜드 북@북스

발행일 2005년 10월 12일 | ISBN 8988182901

사양 123쪽 | 가격 7,000원

분야 시집

책소개
리뷰

짧은 사랑 긴 고통

김혜정 시집 ‘내게는 멀고 흐리다’ 시인의 젊은 남편이 하루아침에 의문사를 당한 건 1989년의 일이다. 그는 범죄자들을 추적하던 검사였다. 이제 아장거리며 걷는 아이를 데리고 젊은 아내는 깊은 어둠 속으로 자맥질할 수밖에 없었다. 그 악몽 같은 터널을 통과할 때 그나마 유일하게 빛이 되어준 건 시였다. 그 시들을 수록한 김혜정(48·사진)의 ‘내게는 멀고 흐리다’(북@북스)에는 짧은 사랑과 긴 고통을 맛본 이의 깊은 정한이 담겨 있다.
“그가 떠나갔다./ 사랑한다는 거짓말을 남기고/ 혼자 남겨진 새벽 거리에 서서/ 웅크린 가게 문의 침묵을 바라본다./ 그리움도 증오도 문이 되어 닫히고/ 수은등 밑으로 사라져버리는 검은 고양이/ 나도 그 길을 따라 걷는다./ 밤새 버려진 한 짝의 구두 맥주깡통 담배꽁초와 함께/ 오직 나 홀로// 바람에 검은 비닐이 휘날린다.”(‘혼자 돌아가는 새벽 거리’ 전문)
‘사랑한다는 거짓말을 남기고’ 떠난 남편이 가슴에 사무쳐 시인은 홀로 새벽 거리를 거닌다. 걷지만 가슴속에는 휑한 바람이 불고 검은 비닐만 휘날릴 뿐이다. 도처에 떠나간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의 냄새가 났네. 꽁꽁 묶은/ 보따리를 풀자 담배와 스킨 향기가 뒤엉킨/ 낯익은 체취로, 삭아가는 내의 속에서/ 그는 천천히 걸어나오고/ 빛바랜 와이셔츠, 흐려진 세월 사이에서/ 아직 서성이는 그의 숨결이/ 내 몸으로 물결치듯 번져왔네.”(‘빈방’ 일부)
묘비에 찾아가 “쓸쓸히 소주 붓고 돌아가다가// 나 당신이랑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옛날처럼 아득한 먼 산처럼”(‘묘비 앞에서’)이라고 독백하며 가슴을 쓸어보아도 “그는 찾아온다, 느닷없이/ TV를 보며 웃거나 저녁 창을 닫는/ 내 등짝을 후려치며.”
언제까지나 짧은 사랑의 기억에 붙들려 살 수만은 없는 일, 시인은 가슴속의 무덤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다짐해보지만 사랑의 문신은 쉬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 어디엔가 있을 거야./ 분주한 아침을 알리는 첫 손길, 고요 속 맑은 새벽으로 깨어나/ 가슴과 가슴을 부딪치며, 나란히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뽀얗게 피어나는 그들의 아침 입김 속에 서고 싶어./ 다시, 사람들 속으로”(‘다시, 사람들 속으로’에서)
2000년 ‘작가’ 겨울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혜정 시인은 “시를 쓰는 동안 나는 참으로 고요했다”며 “내 속으로 침잠해 모든 더듬이를 내리고 시가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들은 쓸쓸하고 행복했다”고 밝혔다.
조용호 기자 jhoy@segye.com출처 : 세계일보

목차

1. 묘비 앞에서묘비 앞에서 / 원통을 찾아가 / 날아가는 모과향기 / 혼자 돌아가는 새벽거리 / 행복한 날 / 딸 / 노인 / 소녀 / 폭풍의 밤 / 빈방 / 먼 곳 / 겨울일기 / 어미 / 시의 시간 / 사랑2. 그녀가 있는 풍경그녀가 있는 풍경 / 봄날 아침 숲길을 걷다 / 폭포 / 당신께-불빛 따스한 방에서 / 수족관을 바라보는 여인 / 여름화음 / 바다 위 하루 / 추억 / 미열 / 도시의 밤 / 나는 진술한다 / 운명 / 가을 서정 / 홀로 하는 여행 / 도로 속 청소부 / 고백 / 다시, 사람들 속으로3. 유리창 너머유리창 너머 / 첫눈 내리는 날 / 봄밤 / 십일월 / 다시, 사랑은 / 그 침묵의 밤이 가고 / 삶은 이어져야 하니까 / 나는 내가 아니고 싶다 / 무저갱 / 겨울 숲에서 / 그녀의 죽음 / 황혼 속에서 / 문 닫아건 새벽 / 그때, 풍금 소리가 들려왔다 / 우야4. 그의 영혼이 일어나봄비 내리는 창가 / 그의 영혼이 일어나 / 목마른 순간들 / 마음 / 무엇이 저 하늘의 별을 빛나게 하는가 / 수상한 안개 / 부재 / 그는 찾아온다, 느닷없이 / 눈 내리는 밤 / 욕망과 슬픔, 그 사이 / 깊은 밤, 죽음의 저쪽 /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 시간 속에서 / 그런 마음도 있어요 / 나의 시 / 산정을 향하며

작가

김혜정 지음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 숙명여대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증평여자중학교 2학년 때 문학수첩에서 장편소설  『가출일기』 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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