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가 사는 곳

정인 지음

브랜드 문학수첩

발행일 2009년 6월 20일 | ISBN 9788983923295

사양 324쪽 | 가격 9,800원

분야 국내소설

책소개

되물릴 수 없는 삶, 멈출 수도 없는 길 위의 삶

고통스러운 인간의 실존을 보여 주는 소설!

 

우리의 가슴을 파고드는 이 진하고 독한 여운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남송우(문학평론가, 부경대교수)

 

정인만이 가진 정인(正人)의 소설

소외된 타자에 대한 따뜻한 시

 

섬세한 디테일과 긴장감 넘치는 문장으로 주목 받았던 소설가 정인의 두 번째 작품집 《그녀가 사는 곳》이 출간됐다. 가족이라는 삶의 틀이 개인의 욕망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현대사회의 황폐한 단면을 그렸던 작가는, 첫 번째 소설집 《당신의 저녁》에서 보여 준 가족사 중심의 서사에서 더 나아가 이웃과 사회로 확장하여 세계 해석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 보이고 있다.

손자와 할머니의 고단한 삶을 그리면서 우리의 시선이 미처 닿지 못한 소외된 이들의 뒷골목의 지난한 삶을 다룬 <잔인한 골목>이나,  베트남 결혼 이민자의 다문화가정의 소통 부재의 삶을 다룬 <타인과의 시간>,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한국으로 온 베트남 처녀 리엔의 삶을 다룬 <그녀가 사는 곳>, 중국 조선족 여성을 화자로 내세워 현재의 세계화가 초래하는 이산적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운 <블루하우스> 등 개개인이 겪는 고통의 근원을 개인의 심리적 디테일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인종적 계급적 성적 디테일로 확대한다. 우리 사회가 이주 노동자, 국제결혼 등으로 급속히 다문화사회로 변해 가고 있는 오늘날, 작가는 그들도 우리의 하나임을 인식하고 보듬으며 그들의 고통을 절절하게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소설가 정인은 하나같이 결핍되고 주변화되고 낙오된 문제적 인물들을 등장인물로 한다. 이들은 모두 타자에게 상처받고, 심신이 감당하기 힘든 삶의 짐을 지고 죽음과 삶의 경계를 오가는 자들이기에 독자를 사로잡는 이야기의 근원적 힘을 부여한다. 《그녀가 사는 곳》은 인간들을 따뜻하게 보듬는 작가의 시선과 결합되어 억장을 무너지게 하는 진한 슬픔과 독한 아픔을 독자에게 선사할 것이다.

 

밀도 있는 심리 묘사와

반어적 세계에 놓인 인간의 실존 탐구

 

소설가 정인은 인간 존재 그 자체에 관심이 많다. 첫 번째 소설집인 《당신의 저녁》에서 밀도 있는 심리 묘사와 함께 인간관계의 불임성 혹은 허약성, 소통의 단절과 이로 인한 외로움에 주목했다. 이번 작품집도 반어적 세계에 놓인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특히 몸을 가진 인간이기에 피할 수 없는 생의 고통을 여러 인간군상으로 형상한다. 문학평론가 황국명은 정인 소설에 대해 “소외된 타자는 누구이며, 그들은 어떻게 삶을 견디는가 묻는 것, 그것은 정인의 소설에 접근하는 하나의 독법”이라고 말한다.

 

한국 속의 세계, 다문화사회에 사는 소외된 타자

 

이번 작품집 《그 여자가 사는 곳》은 무엇보다 작중인물이 겪는 고통의 근원을 개인의 심리적 세부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인종적 계급적 성적 세부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이주노동자, 국제결혼 등으로 급속히 다문화사회로 변해가고 있기에 작가는 이들도 이제 우리임을 보듬으며 우리 속의 그들이 겪는 또 다른 우리의 고통을 절절하게 이야기한다.

 

〈타인과의 시간〉에서 결혼 이민자인 쑤안은 자신이 낳은 아이와 소통할 수 없는 상황에 고통을 겪다가 친정 베트남으로 돌아가 버린다. 자신의 자식에게 이방인으로 남기보다 ‘모국어’를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쑤안의 고통은 한국어 습득 과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단순한 장애로 여겨지기 쉽지만, 작가는 세계화로 문화적 인종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음을 주목한다.

〈그 여자가 사는 곳〉의 경우, 심지어 한국어에 유창한 리엔조차 차이가 지닌 차별의 함정을 피하지 못한다. 가난한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취업을 위해 한국에 왔으나 한국인 브로커에게 속아 결혼한 남편과 가출해 얻은 직장의 사장에게 성적 소모품으로 전락한다.

〈블루하우스〉는 중국 조선족 여성을 화자로 내세워 현재의 세계화가 초래하는 이산적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녀가 태생지를 떠난 것은 물려받은 가난을 모면하기 위함이다. 할아버지는 “평생 떠나온 곳”을 잊지 못했고, 그의 그리움은 아버지에게까지 이어졌지만, 그녀에게 선조의 고향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조상의 모국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의무도 욕망도 지니지 않는다. 그녀에게 한국은 “먼 친척 정도에 불과”한 가깝고도 먼 나라일 뿐이며, 그녀는 “돈을 벌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야만 하는 신세”다.

 

운명의 여신은 인간 개개인의 덕성에 무관심하다

 

정인의 작품들을 보면, 오늘의 세계는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할 뿐 아니라 심지어 타인의 고통을 통해 전리품을 얻는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공언되는 신념이나 가치와 실제 사이에 건너뛸 수 없는 협곡이 있다. 생명에 대한 비정성을 우화적 수법으로 그려 낸 〈너는 모른다〉가 그러하고, 〈도시의 밤〉에서 “평생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 되어선 안 된다고 가르친 사람”이었던 전직 교사 출신의 경비원이 몰인정하고 야비한 아파트 주민과의 시비를 말리려는 선의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그가 불행한 결과를 맞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잔인한 골목〉 역시 두 세계, 즉 한편에 고급 음식점 ‘만찬’과 성채처럼 화려한 ‘낙원모텔’이 있고, 이 두 세계의 단절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소년의 세계에서 ‘낙원’의 ‘만찬’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신기루”와 같다. 굳게 닫힌 그 세계를 향해 문을 열어 달라는 소년의 절망적인 외침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이 일상의 조건이 되어 버린 세계에 대한 분노와 다르지 않다.

〈비수〉에서 화자의 아버지는 “평생 정직하고 성실하게만 살아온 사람”이지만, 후배라며 접근한 사내에게 전 재산을 잃고 농락당한 어머니는 자살하기에 이른다. 패덕한 인간이 오히려 잘 살아가는 것이 현대의 시적 정의이다. 그러므로 작중인물 나는 “우리가 흘린 눈물만큼 그의 피를 보고 싶은 갈망”에 비수를 품는다.

 

서로의 고통에 동참할 수 있다면 그래도 삶은 견딜 만하다

 

〈새벽이 올 때까지〉에서 실직자가 되어 버린 남성 인물은 마치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퍼질러 앉아 우는 여자를 외면하지 못해 친절을 베풀고 이 때문에 한밤의 지하철 역사에 갇히게 된다. 과거 배낭여행을 하면서 이국의 화장실에 갇혔던 경험이 있는 그는 “누구도 서로의 고통에 진실로 동참할 수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외로운 것인가를 절감했던 것이다. 신이 떠나 버린 무감동의 세계에서, 그는 타자의 고통과 내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삶의 남루에 대한 위안을 발견한다. “혼자보다는 둘인 것”이 비루한 시간을 견디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나의 아름다운 마차〉에서 일찍 객사한 남편을 둔 어머니가 불구를 비관하여 스스로를 유폐시킨 아들과 함께 초라한 삶을 이어 온 것도 같은 맥락에 있을 터이다. 사연 있는 사람들의 온갖 “넋두리와 투정과 탄식”을 순순히 받아 주기 때문에, 어머니와 어머니가 수십 년간 운영해 온 포장마차는 아름답다.

〈늪에서 졸다〉의 서술자 수양은 라디오 방송국 계약직 작가로 일하다가, “인생의 전환점”을 모색하려 사표를 제출한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일상에 넌더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녀의 사표가 한 번의 재고 권유도 없이 수리되자 그녀는 자기 역할과 존재의 하찮음을 깨닫고 당황하며, 무관심한 남자 친구와 닥쳐오는 카드빚과 월세 때문에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비정한 세계의 늪을 건너는 법

 

《그녀가 사는 곳》에서 작가는 현실의 음험함 가운데 개인의 남루한 삶을 위치시키되, 값싼 해결을 모색하지 않는다. 세계는 좀처럼 반성할 것 같지 않고, 개인의 삶도 나아질 것 같지 않다. 독자와 안이하게 타협하기보다 독자에게 비루한 일상의 진면목을 들이밀고,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비정한 세계의 늪을 건너는 법을 보여 준다.

목차

● 차례

작가의 말                     

그 여자가 사는 곳 | 도시의 밤 | 타인과의 시간 | 늪에서 졸다 | 새벽이 올 때까지 | 나의 아름다운 마차

비수 | 잔인한 골목 | 너는 모른다 | 블루하우스                 

작품 해설

작가

정인 지음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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