뢴트겐행 열차

황수아 지음

브랜드 문학수첩

발행일 2017년 7월 31일 | ISBN 9788983926630

사양 124x194 · 128쪽 | 가격 8,000원

시리즈 시인수첩 시인선 5 | 분야 시집

책소개

등단 10년의 내공이 돋보이는

황수아 시인의 첫 시집 『뢴트겐행 열차』

그동안 새로운 시대의 감수성을 반영하고 정신적 가치를 담을 수 있는 시 전문지가 되고자 노력해 온 계간 『시인수첩』에서 2017년 6월 「시인수첩 시인선」을 새롭게 선보인다. 다섯 번째로 선보일 시집의 주인공은 바로 황수아 시인이다.

황수아 시인은 ‘경험적 구체성 속에 심미적 감각을 살려 재생하고 배열하는 언어적 힘이 밀도 있게 관찰되었다’는 평을 받으며 시 「통조림」으로 2008년 문학수첩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스물아홉 살에 시단에 나와 다시 십 년의 세월 만에 펴내게 된 그의 첫 시집에는 충만한 내공의 시편들이 담겨 있다.

등단을 하고 빠르면 이삼 년 후에 첫 시집을 출간하는 요즘의 흐름에서 황수아 시인은 많이 비켜서 있다. 그는 대학원(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공부와 결혼과 출산, 육아의 시간으로 우리 기억에서 잠시 밀려나 있었지만, 첫 시집 『뢴트겐행 열차』의 작품들을 일별해 보면 시인이 그동안의 세월을 허투로 보내지 않았음을 단박에 느낄 수 있다.

실제로 10년이라는 세월은 시집 곳곳에 표현되어 있다. 시 쓰기의 어려움과 시에 대한 자의식도 그 사연의 이유일 것이고, “내 배 속에서 음표가 하나 자라기 시작했다”(「존재의 가능성」)라는 말로 암시되는 출산과 육아, 그리고 “목숨 같던 회사”(「존재할 수 있을까」) 등으로 암시되는 ‘생계의 중력’도 시인이 오랫동안 ‘시’의 가장자리를 배회하게 만든 원인일 것이다. 반면 “시가 안 써져 힘들어 하는 나에게/돌 지난 나의 아이가 손을 뻗는다”(「손바닥」), “어느 날 한 아이가 동굴로 찾아와/나를 불러냈고”(「사라진 동굴」)는 나지막한 고백의 목소리도 듣게 된다. 시인은 겸손하게 오랫동안 ‘시’에서 떠나 있다가 다시 ‘시’로 돌아왔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은 어느 순간, 단 한 번도 시에서 떠나 본 적이 없음을 그의 시 행간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다.

10년의 세월이 한 권의 시집에 모여 있으니, 황수아의 시를 읽으려면 시간으로 형성된 몇 겹의 지층들 사이를 지나야만 한다. 시간이라는 이름의 그 지층을 따라 흐르는 기억의 물줄기들이 조각들로 모여 만들어진 한 권의 시집, 그 속에는 이질적인 시간들이 공존하고 있다. 황수아의 시에서 ‘시간’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잠시 시인의 삶을 살필 필요가 있다. ‘시인’이라는 직함을 얻으며 20대 ‘청춘’의 경계를 넘었고, 30대의 막바지에 이르러 첫 시집을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일까. 유년의 기억들로 가득 채워진 여느 시인들의 첫 시집과 달리 황수아의 첫 시집에는 ‘가족’이라는 세계와 불화한 유년의 기억, 가난, 이별, 슬픔 등으로 얼룩진 20대의 암울한 기억, 세속 도시에서 생활을 위해 발버둥 치다 불현듯 30대 중반을 맞이한 현존이 모자이크처럼 연결되어 있다. 실제로 황수아 시편 곳곳에는 젊음에 대한, 한 시절의 끝나 감에 대한, 특정 시간대의 소멸에 대한 자의식이 흩뿌려져 있다.

구체적 경험을 심미적 감각으로

재생하고 배열하는 언어적 힘

황수아의 시에서 거의 모든 ‘관계’는 엇갈림/이별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잃어버린 문장」에서 ‘나’는 “라테의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 있으나 ‘너’는 “쓰고 멀고 축축한 창밖”에 위치하고 있고, 「토네이도」에서 ‘카페’를 빠져나온 ‘나’와 ‘너’는 “서로 다른 돌풍 속으로 빨려들”어 가고 있다. 그녀의 시를 읽으면 종종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이 연상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운명적인 이별, 엇갈림, 헤어짐……. 이 비극적인 사건들은 황수아의 시에서 한 번으로 종결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갈라지는 길들, 이별하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반복되어 시집 전체를 불가능한 만남에서 비롯되는 슬픔의 정념으로 물들인다. 하지만 이것들을 일상적인 사건의 재현으로 한정하지 말자. 때때로 시인은 이러한 ‘관계’의 부재 내지 이별을 “전해지지 않은 말들과/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은/불립 문자를 만들었다.”(「모죽(毛竹)」)처럼 ‘시 쓰기’의 문제로 재전유하기도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황수아의 최신작 중 하나인 「우리는 두 번쯤 만난 적이 있다」를 보면 시인의 마음이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다는 것이다. 시는 “너는 가로수길을 세로로 걸었고/나는 세로수길을 가로로 걸었다.”라는 진술로 시작된다. 시인은 ‘가로수길’이라는 지명에서 출발하여 ‘가로수길-세로수길’, ‘세로-가로’의 언어적 관계에 ‘만남’과 ‘이별’이라는 사건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초기 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시인은 만남과 헤어짐, 즉 이별이나 엇갈림의 운명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는 ‘이별’을 이별/헤어짐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가로와 세로가 만나는 곳은 분명히 있다.”처럼 ‘만남’에 대한 믿음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만남’에 대한 믿음을 낙관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모든 관계를 엇갈림/이별의 형식으로 노래하던 예전과는 분명히 달라진 모습이다. 이것을 ‘나이 탓’, 그러니까 “서른일곱이라는 희뿌연 속살”(「바나나를 먹으며」) 때문이라고 말할 수야 없겠으나 ‘청춘’ 특유의 불안감에서 벗어난 존재만이 발화할 수 있는 언어임은 분명해 보인다.

시인은 등단을 해야 시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시집을 내야 진짜 시인이라는 시단의 속설이 있다. 황수아 시인은 비록 10년 전에 시인의 이름표를 얻었지만, 오늘에서야 비로소 ‘시인’으로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등단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세상에 내놓은 황수아 시인의 첫 시집 『뢴트겐행 열차』. 등단작에서 단연 돋보였던 시인의 언어적 힘이 여전히 단단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시집이다.

목차

■ 차례

시인의 말

시인의 말
뢴트겐행 열차
책갈피
우리는 두 번쯤 만난 적이 있다
잃어버린 문장
시를 쓰지 않으리
생존한다는 것
값싼 커피의 맛
불꽃
세렝게티의 노트
토네이도
가브리엘 마르케스
모죽(毛竹)
바나나를 먹으며
도시, 빛, 간판
통굽 샌들
우리는 실존주의 강의를 들었지
부산행 열차
통조림
존재할 수 있을까
광화문에서 시청까지
추상적인 여자
청동좌상
바다는 나에게
구멍 난 풍경
형광색 잠바를 입고 있어서 괜찮아
접속
가방
바람의 깊이
희생 번트
불가피한 직유와 상투적 결말
맨홀
불립 문자
주민 센터
여름이 왔다
손가락

댕댕댕
장갑
실루엣
손바닥
한 그릇
화석
불어 터진 밤은 언제나 늦게
존재의 가능성
버그
사진
2루타
P교수와 러브레터
서른 해
불확실성의 나비
64층
누구든, 아무도
검은 고양이 초록 눈망울
엉킨 낚싯줄을 풀어야 할까
일기장은 비어 있다
아버지의 집
온기
사라진 동굴
남아야 할 이유

해설 | 고봉준(문학평론가,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동굴’로 돌아가는 길

작가

황수아 지음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8년 문학수첩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안양예고와 대림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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