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눈의 목격자

오성인 지음

브랜드 문학수첩

발행일 2018년 10월 25일 | ISBN 9788983927187

사양 124x198 · 160쪽 | 가격 8,000원

시리즈 시인수첩 시인선 17 | 분야 시집

책소개

서른두 살의 시인이 소환하는 오월의 광주

슬픈 언어의 결연함으로 어둠과 죽음이 도사리는

세상에 출사표를 제출한 오성인의 첫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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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슬픔답게 다루는 시인이 있다. 슬픔의 언저리를 맴돌거나 서성이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는 시인이다. 오성인 시인, 그가 응시하는 슬픔은 어둠과 죽음에 기인한다. 관념적인 어둠과 죽음이 아니다. 구체적인 사건과 장소에서 비롯되어 그의 삶에 체화된 실재적인 어둠과 죽음이다. 오성인 시인은 공포와 절규에 버무려진 슬픔을 끌어당겨 눈과 코와 입술을 어루만지며 보듬는다. 그의 슬픔을 한데 그러모은 이 시집은 태아의 첫울음처럼 맹렬하다. 수 세월 응축된 기억과 상념이 터져 나온 까닭이다.

요즘 활동하는 젊은 시인들의 시가 현학적이거나 지나친 개성에 대한 강제로 독자와의 괴리를 만들어내고 있다면, 오성인 시인의 작품들은 우직한 정통적 시법을 통해 현실을 직시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특히 오 시인은 광주민주화운동 이후의 세대이면서도 기꺼이 오월의 광주를 작품과 생활의 온몸으로 짊어지고 있다. 광주의 역사성을 우리 현대사로 이으려는 노력은 단순히 광주를 고향으로 하는 시인의 몫으로 치부될 부분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로서 오월의 광주를 형상화해 내고 의미를 부여하는 시적 모험인 만큼, 값지게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시인수첩 시인선’ 열일곱 번째 주인공인 오성인 시인은 앞서 출간된 열여섯 번째 시집 『햇살 택배』의 저자 김선태 시인의 제자이기도 하다. 2013년 『시인수첩』 신인상으로 등단해 차곡차곡 작품을 쌓아 온 그는 2018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으며 저력을 증명했다. 오래도록 머금었던 첫울음을 맹렬하게 터뜨린 만큼 그의 “시‒의지” 또한 비장하다. 이에 이 시집을 해설한 이성혁 평론가는 “시인이 세상에 제출한 출사표”와 같다고 표현한다. “시에 닿”기 위해 오랜 시간 어둠과 죽음을 응시하며 기꺼이 고독을 끌어안은 그의 첫울음 같은 시에 귀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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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으로 더욱 옹골찬 비극을 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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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토해 내는 첫울음 같은 시어들은 짙은 어둠을 가르는 유성처럼 반짝이며 슬픔을 위무한다. 슬픔을 더듬는 그의 내면에는 ‘죽음’의 기억들이 맺혀 있다. “출사표” 격으로 시집 첫머리를 장식한 「양림동」은 가족사, 나아가서는 현대사에 묻힌 옛 기억을 호출한 시다. 어떤 부연도, 묘사도 없지만 이 시에서는 비릿한 피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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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족을 향해 차마 총을 겨눌 수 없어

피보다 더 빨간 낙인이 찍혀 개명한

할아버지와 영문도 모른 채 군대에서

방망이를 깎아야 했던 아버지, 불순한

지역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유로

유명을 달리한 외삼촌

말하지 않아도 양림산

은단풍나무는 내막을 안다

(……)

―「양림동」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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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울음을 터뜨린 길”을 걸으며 시인은 생명과 죽음이 교차했던 어느 시절을 떠올린다. “죽음과 씨름”했던 그였기에 “비극보다 더 단단한 비극이 되어 세상 모든 비극들을 품으”라는 할머니의 유언을 따라 시인은 “단단하고 둥근 비극을 꿈”꿀 수 있다. 그가 꿈꾸는 단단하고 둥근 비극은 이 시집에 담긴 시 곳곳에서 얼굴을 내민다. 그는 “현대 세계의 비극성을 자기 몸으로 앓”(해설, 「비극의 기호와 시‒의지」)아 내며 비극의 맨얼굴을 생생히 드러낸다. 특히 4부에 실린 시들은 ‘사회적 타살’로 인한 비극을 다룬다.

오성인 시인이 포착하는 죽음들은 구체적인 것이다. 이 죽음들이 만든 구멍 바로 위에 세상의 가장 슬픈 바닥이 형성된다. 배고픈 동생을 위해 라면을 끓이다가 불이 나서 장애 남매가 모두 숨진 ‘파주 장애 남매 화재 사건’, 시리아 내전을 피하기 위해 지중해를 건너오다가 배가 난파되어 터키 해변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어린 시리아 난민 ‘알란 쿠르디’, 용광로에서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용광로에 빠져 생을 다한 청년, 광주민주화운동 유족인 김소형 씨, 사형을 앞두고 있는 뤼순 감옥의 안중근, 나아가 차에 치여 죽은 어미 고양이와 맛을 위해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거위(푸아그라)까지, 시인이 시적 조명을 드리우고 있는 이들은 죽거나 죽을 예정이거나 친족이 죽음을 당한 존재자들이다. 이 존재자들을 둘러싸고 있는 죽음들은 모두 사회적 역사적 원인을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슬픔과 설움, 분노를 불러일으킨다(해설, 「비극의 기호와 시‒의지」).

이 시집의 제목 ‘푸른 눈의 목격자’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카메라에 담아내어 전 세계에 알린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상징한다. 어쩌면 절망의 벼랑 끝에 매달린 이들의 몸부림과 아우성을 목격한 시인 자신을 상징하는지도 모른다. 오성인 시인의 시선은 이처럼 낮고 어두운 곳에 닿아 있다. 그에게 ‘시’는 더 낮은 곳으로 파고들어 비극으로써 또 다른 비극을 옹골차게 빚어내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그의 ‘시‒의지’는 다음의 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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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춘다는 것은 삶과 죽음의 무게를

동시에 겪어 내는 일, 혼신을 다해

희로애락애오욕을 지탱해 내는 일

(……)

―「바닥에 대하여」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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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기 위해 절망을 멈추지 않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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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보다 더 옹골찬 비극을 빚어낸 그는 이제 비극 너머의 세계를 표류한다. 비극적 소외의식으로 세상을 떠다니던 그가 능동적인 표류에의 의지를 발현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는 “일방적으로 씌워지는/ 모자들을 거부”(「어떤 모자에 관한」)하고 ‘바람’처럼 떠돌아다니기를 소망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어둡고 낮은 곳을 향한 시선을 거두어들이고 절망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더욱 절망하겠다고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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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리에 연연하며 머리 위의 하늘이

진실의 전부라고 여기는 모자 안의 맹목적인

나무들보다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는 뜨내기

바람을 신뢰합니다 일방적으로 씌워지는

모자들을 거부합니다 사라진 머리를

폐허로 규정하거나 함부로 절망을 내려놓을

자격이 나는 없습니다

―「어떤 모자에 관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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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절망을 내려놓을/자격이 나는 없”다는 그의 말은 곧 절망해야만 표류할 수 있는 자신의 정체성을 역설하는 것이기도 하다. 절망의 끝에 닿아 본 사람만이 한자리에 연연하는 ‘매임’과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시인은 이미 잘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표류하기 위해 절망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절망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더 깊고 짙은 어둠과 죽음에 가 닿아 더 웅숭깊은 슬픈 언어들을 길어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바람처럼 떠돌아다니면서 세상의 죽음을 포착하고 증언하여야 하는 사람이기에, 표류를 위해서 계속 절망할 수 있어야 한다. 절망을 내려놓을 때, “한자리에 연연”하여 종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해설, 「비극의 기호와 시‒의지」).

목차

■ 차례
시인의 말

1부
양림동

나무깎이 인형
고구마
닭전머리
치약팩
종만이 아저씨
율정점(栗亭店)
잠사연가(蠶絲戀歌)
대인시장

2부
삭금 전어
갈치
떡전어
군평선이
숭어
인형
울음이 지나간 자리
간이역전 공중전화
me-too
닫힌 공간의 悲歌

3부
안장 도둑
대박복권가게 앞 풍경
암각(岩刻)
늦은 고백
파란 눈동자
포켓몬Go
키덜트(Kidult)
바닥에 대하여
9월 21일
어느 사내의 벽화
독(毒)

4부
못다 끓인 라면-파주 장애 남매 화재 사건
알란 쿠르디(Alan Kurdi)
발렌타인-뤼순 감옥으로부터의 편지
에밀레-용광로 청년에 대하여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푸른 눈의 목격자
슬픈 생일-김소형 氏
葬猫
8
비로소 봄
춘설
푸아그라

5부
리스컷트 증후군
패스워드 증후군
드레이크 방정식
어떤 모자에 관한
폼페이
석이(石耳)
죽은 시의 사회
퍼즐
고독사
펭귄마을
파도소주방

해설 | 이성혁(문학평론가)
비극의 기호와 ‘시–의지’

작가

오성인 지음

1987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2013년 『시인수첩』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2018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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