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게, 큐레이터

 

“망했다! 이 직업을 사랑하게 되다니!”

누구도 알 수 없는, 오직 자신만이 솔직하게 평가할 수 있는 큐레이터의 ‘업무능력’

시시포스 같은 숙명을 달고 때로 시트콤처럼, 때론 정극처럼 살아가는 큐레이터의 일상

‘큐레이터’ 하면 미술관이나 박물관 안에서 세련된 정장 차림으로 관람객들과 전시품 사이를 거니는 우아한 직업인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소소하게, 큐레이터>의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큐레이터의 전혀 다른 세계를 이야기한다. 정장 스커트와 망치처럼 전혀 이질적이고 어울리지 않은 것들로 하루하루를 채워 나가는 일상이 바로 큐레이터의 삶이다. 이 책에는 전시 공간과 전시품으로만 관람객들과 소통할 수밖에 없는 큐레이터의 생생한 일상을 담고 있다.

2년 동안의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저자는 “모든 것이 초고속으로, 미래로 향하는” 사회를 벗어나 정적이고 조용한 세계로 향하고 싶은 마음에 큐레이터가 되었다. 대도시를 벗어나, 절반은 농촌이고 절반은 공업 지역인 작은 도시의 박물관에 자리를 잡았다. 방문객이 뜸한 평일에는 마당에서 고양이들이 따뜻한 햇볕을 즐기며 낮잠을 자는 이곳에서 자신의 속도대로 살아갈 것을 꿈꾸는 저자의 희망은 얼마 되지 않아 산산이 부서진다. 작은 도시의 박물관 큐레이터 본연의 업무만으로도 1인 다역을 맡아야 했고, 문제는 이토록 고단하고 힘든 일에 저자가 그만 푹 빠져버린 것이다. 집에서 늦잠도 자고 엄마가 해주는 밥도 먹고 뒹굴거릴 생각을 하던 휴일, 도서관 논문 검색대에 앉아 거북목이 되도록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저자는 자신이 이 직업을 사랑하게 된 것을 깨닫고 “망했다”는 푸념을 쏟아낸다. 어떤 노고를 겪고 어떤 정성을 들여 ‘전시’라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지 누구도 알 수 없고 “이쪽 세계”의 사람이 아닌 이상 누구에게도 쉽게 인정받지 못하는 큐레이터의 세계. 누구보다 자신에게 솔직하고 정직할 수밖에 없는 저자의 내밀한 이야기는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넘나들며, 직업인으로 하루하루 각자의 서사를 만들어 가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와 성찰의 시간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