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제 6회 시인수첩 시인상 당선자 발표

제6회 <시인수첩 신인상>에 우현순윤보성 두 시인이 공동 당선되었다. 종합문예지 『문학수첩』과 이어서 헤아리면 벌써 열세 번째 신인 공모로, 『문학수첩』과 『시인수첩』을 통해 등단한 여러 시인과 소설가, 평론가 들은 지금도 우리 문단에서 활약하고 있다. 올해 <시인수첩 신인상> 심사위원으로는 『시인수첩』 편집인인 감태준 시인과 주간인 김병호 시인, 문학평론가 황치복 교수께서 수고해주셨다.

심사총평 발췌

신인상에 대한 심사는 어떤 경향적 규정을 갖고 응모 작품을 재단하지 않는다. 시인의 다양한 개성을 존중하며 그 안에서 가능성과 미학적 성취도를 가늠할 뿐이다. 그래서 이번 당선자인 우현순 시인과 윤보성 시인의 나이 차이가 31세라는 것도 그리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시단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경우는 아니지만, 그만큼 신인상의 작품 경향과 세대를 아우르고자 한 『시인수첩』의 무의식적 욕망이 아니었나 싶다.


1. 제6회 시인수첩 신인상 당선 – 우현순

우현순. 여주 출생.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과정 수료.

나무가 돌을 깨뜨리네 외 4편

나무들이 돌을 지나가네

돌과 돌 사이

침묵인지 침식인지 알 수 없는 무게가

커다랗게 자라네

그때마다 말을 삼켜버린 돌덩어리

세상이 쿵쿵 밟고 지나간 자리

돌이 가슴에서 자라는

어느 여자의 역사를

누군가 가만가만 들여다보네

아직 읽지 못한

낯선 돌 하나

이 무거움을 들고 들어가는

깊은 동굴보다 더 어두운 생(生)들은

어디서 단단해지나

오랫동안 들끓다

딱딱해져 짓이겨도 분해되지 않는 돌

끊임없이 커져가는 돌의 심장

뿌리를 내놓고

나무가 돌을 깨뜨리네

웃고 있네

우현순 집중심사평 발췌

우현순 시인의 시적 비전은 감각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돌과 돌 사이’에서 ‘침묵’과 ‘침식’의 ‘무게’를 지각한다든가, 떨어지는 해에서 ‘풍덩’ 소리를 듣는 감각, 그리고 ‘어머니엄니할머니’의 ‘니’에서 녹아 흐르는 설탕을 맛보는 감각 등이 그의 시를 반짝이게 하고 있다. 또한 가정 폭력에 물든 여성의 몸에 새겨진 ‘지문’을 읽어내는 섬세한 감각, 고층아파트의 층수가 올라갈수록 짙어지는 ‘그늘의 깊이’를 파고드는 통찰력, 그리고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에서 ‘붉은 고통’을 지각하는 통각 등의 감각적 세밀함이 우현순의 시에 신선함과 깊이를 부여해준다.


 

2. 제6회 시인수첩 신인상 당선 – 윤보성

사건지평선* 외 4편

윤보성. 1991년 부산 출생. 동의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재학 중.

파도의 파장 사이에 서 있었다

목젖까지 차오른 사해

지평선을 물고 날아가는 방패연을 보니

뒤에서 다가올 대관람차가 침몰하지는 않을까

파도의 파장 사이에 가라앉았다

나체로 포즈를 취한 지 세 시간째

여학생들의 시선이 회전목마처럼 다가오다

멀어진다 도화지는 점점 목탄으로 번져가는데

왜 해변을 배경으로 그렸냐고 물으니 웃기만 한다

발기가 된다

파도의 파장 사이에 서 있었다

소금 기둥들이 배회하는 경찰서의 복도

형사는 회유하려 했고 나는 귀신의 집으로 갔다

거짓말탐지기의 더듬이가 오른팔을 휘감아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검은색 전깃줄의 절단 순서를

비치모텔에서 파트너를 손괴한 혐의를

컴퓨터 단자에 꽂은 탐폰의 제조년도를 물었다

파도의 파장 사이에 가라앉았다

추문이 무성한 헤어진 애인의 추상화

서로에게 모래를 뿌리고 껴안았을 때

멈춘 공중그네에서 서로 매달렸을 때

젖가슴에선 선크림 냄새가 났었다

캔버스를 뒹굴다 누군가 옆구리가 찢어져

태양으로 번져갔었는데 오늘은

뉴욕 메트로폴리탄에 내가 그려진

그림이 전시되어 있으리라

언젠가 나는 나의 파장 사이에 서 있었는데

얼굴이 그려진 적도 있었는데

* 우주의 끝에서 일어난 사건이 그 우주의 바깥에 있는 관측자에게는 영원히 전해질 수 없는 시공간의 경계. 혹은 빛이 탈출할 수 없는 블랙홀의 경계.

윤보성 집중심사평 발췌

윤보성 시인은 극단의 상상력이라고 할 만한 시적인 비전을 보여준다. 그의 시적 관심 자체가 아직 개척되지 않은 인간과 세계의 미지의 영역을 향하고 있다. 우주의 끝에서 일어난 사건이 우주 바깥에 있는 관찰자에게 영원히 전해질 수 없는 시공간의 경계인 ‘사건지평선’이라든가, 지구 종말을 상정해서 그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마련한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고’, 백야 현상과 오로라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극야’와 같은 현상이 윤보성의 주요한 시적 대상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