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해 주는 것들

이병일 지음

브랜드 문학수첩

발행일 2023년 11월 10일 | ISBN 9791192776873

사양 127x188 · 288쪽 | 가격 14,000원

분야 에세이

책소개

사소하고 시시한 아름다운 것에 매혹당한 사람이 건네는 위안과 위로

이병일 시인의 첫 산문집 나를 위로해 주는 것들

 

등단한 이래 특유의 감성으로 자연의 생명력과 서정을 꾸준히 노래해 온 ‘녹명(鹿鳴)’의 시인 이병일의 첫 산문집 《나를 위로해 주는 것들》이 문학수첩에서 출간되었다. “사소하고 시시한 아름다운 것에 매혹당하는 사람을 우리는 시인이라고 부른다”(276쪽)는 말 그대로 이 책에는 시인이 자연과 일상에서 발견한 ‘사소하고 시시한 아름다운 것’에 대한 기억들과 단상들이 펼쳐져 있다.

“작고 눈부신 동식물들, 눈에 보이지 않거나 아직 말해지지 않은 아름다움에 대한 엉뚱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시인은 “신통찮은 문장으로 아름다움이 사는 반대쪽까지 내다볼 심산이었으나 괜히 아는 척하다가 눈꼴사납게 될까 봐 차돌 같고 옹이 같은 눈으로 지구를 바라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작가의 말’). “목숨 가진 것들의 안위를 살피는 질문이 ‘시’가 된다”(284쪽)는 저자의 시론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알 수 있는 글편들을 통해 독자들은 AI는 결코 따라 할 수 없는 사유와 감성의 진수를 만나게 된다.

 

 

자연과 일상에서 끌어 올린 아름다움과 사유

내가 사랑하고 사랑해야 하는, 나를 위로해 주는 것들

 

《나를 위로해 주는 것들》에는 시인 자신이 위로를 받은 대상뿐만 아니라 그가 사랑하는 것들,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들과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시인이 말하는 “사소하고 시시한 아름다운 것”은 “여러 층위를 가진 빛이 있고 색이 있”는 ‘봄산’(10쪽)일 수도 있고, “엎드린 자가 벽 너머를 생각하고 누워있는 자가 천장 너머를 보는” ‘시골집 방’(26쪽)일 수도 있고, “너무 깊어 아홉 자식의 눈물을 모아 쏟아부어도 다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아버지의 쇄골’(98쪽)일 수도 있다. 어릴 적 시골집에서 칡소와 돼지를 키웠던 일, 사슴벌레와의 만남, 거미줄로 만든 잠자리채에 관한 추억들은 그 일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에게도 온기와 위안을 전한다.

꽃가루 날리는 버드나무는 불곰에 관한 상상으로 이어지고, 접붙이기에 대한 생각은 존재와 몽상에 대한 사유로 확장되며, 시인 자신의 어린 시절과 대구를 이루는 어린 아들의 존재는 어른이 되어버린 시인을 자연과 연결해 준다. 자연과 일상에서 끌어낸 아름다움과 사유, 가족을 비롯한 사람들과 가축 또는 곤충, 벌집, 나무 같은 자연물에서 위로받은 소소한 기억들은 극적이거나 화려하진 않아도, 누구나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린다.

 

팥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흰 얼굴과 붉은 얼굴을 가진 돌멩이인데, 그 돌멩이에겐 냄새와 감정이 있고, 목소리도 있다. 항상 주름으로 가득한 세상을 담고 있어 단단한 것인데, 그것이 내 몸속으로 들어와 순간에 집중하는 힘을 주었다. 팥은 나를 지나 어디로 가는지 한 숟가락 떠서 씹지도 않고 목으로 넘겼는데,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건 위로였다. 목을 마르지 않게 하는 힘이었다.(45쪽)

 

“가장 은혜롭고 연약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주장이 없는 것들의 언어를 읽어내고 싶었다”(57~58쪽)는 시인은 그러한 대상들 내부에 숨겨져 있는 저마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평소엔 보이지 않던 것들에 집중하면 아득한 환상이 보이는데 이런 상상들은 시인을 ‘나’이면서 동시에 ‘타자’가 되게 한다. 그리고 이 순간이 바로 시인에게 ‘회복의 순간’을 선사한다. 이는 이병일 시인 시세계의 중심을 이루는 ‘녹명 정신’과도 이어진다.

 

 

각자도생의 세상에서 녹명 정신이 갖는 의미

시는 목숨 가진 것들의 안위를 살피는 질문이다

 

‘녹명(鹿鳴)’은 먹이를 발견한 사슴이 다른 사슴을 부르기 위해 내는 울음소리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혼자만 잘사는 법을 배우는 데 익숙해진 각자도생의 시대에 시인은 굳이 ‘녹명’이란 말을 불러낸다.

‘자두와 마법에 걸린 사과나무를 생각함’이란 글에서 시인은 어릴 적 동네 자두나무에 관한 기억과 동화 〈마법에 걸린 사과나무〉 이야기, 성인이 된 후 지인의 자두나무밭에 들렀던 일을 차례차례 펼쳐놓는다. 자두 서리해 가는 아이들의 머리끄덩이를 잡아 쥐어뜯어 놓은 동네 아주머니와의 일화에 이어지는 동화 속 마음씨 좋은 사과나무 주인 이야기, 그리고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지인 자두밭에서의 경험은 시인의 녹명 정신이 어떻게 물꼬를 트게 되었는지를 알게 해준다.

‘시, 그 참을 수 없는 가려움증’에서는 버드나무 가지로 만든 피리, 달빛을 쫓아 물길을 오르는 민물장어 치어들, 아파트 가로수에 떨어져 걸려있는 명주이불, 새똥을 피하려고 버릇처럼 올려다본 하늘 등 평범하고 사소한 것들을 향한 시인의 시선을 통해 그의 시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시인이 시를 통해 말하려는 것은 의미가 아니라 존재다. 목소리를 가진 것, 그리고 사물에게 목소리를 입혀주는 것이 시인이 하고자 하는 일이며, 이러한 서술과 사유를 통해 시인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는다.

 

시 쓰는 운명은 손가락도 발가락도 아닌 눈동자에 있다고 믿는다. 나의 눈을 밝게 하는 것은 죄 없는 사물이면서 세상으로부터 몸을 감추지 못한 생명이다. 나는 마냥 걸으면서 일순간, 목숨 가진 것들의 안위를 살피는 질문이 ‘시’가 된다고 생각한다.(284쪽)

 

살아있는 것들의 안부를 묻는 것은 우리 자신의 안부를 묻는 행위이기도 하다. 시인의 시뿐만 아니라, 첫 산문집인 《나를 위로해 주는 것들》 역시 이렇게 안위를 살피는 질문들로 가득하다. 먹을 것을 발견하고 혼자서 먹어 치우는 게 아니라 다른 존재까지 불러들이는 그 울음 자체가 위안을 건네듯,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 모든 존재의 안위를 살피는 잔잔한 질문들은 지금의 각자도생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잔잔하면서도 은근히 강력한 위로와 용기를 준다.

목차

■ 차례

1. 숨은 위로 찾기
봄산/봄/밤나무와 달항아리/담장/숨은 그림 찾기/통장구/방/수각화/수각화 2/수각화―무덤/팥/기린의 어떤 힘/한 수 위/이야기꾼/두 편의 나무 시에 대하여/산벚나무/집이 나를 부른다/침(針)/풀피리, 버들피리/사슴벌레의 마술

2. 내가 사랑하는 것들
드러내다와 드러나다/보리수나무/나의 근대―옛날 옛적에/식구/소리와 한 모금/쇄골과 물그릇 이야기/재―혼나는 것은 끝이 없구나/노간주나무의 쓸모/목기/작두/나의 시론 1/접/고추씨 촉 틔우기와 파종/절구통에서 시작된 이야기/나의 시론 2/소금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세상에서 가장 비싼 보청기/작은 우화

3. 오래 달라붙어 있어도 좋을 감촉
이월/유레카/감자와 땅강아지/시감/매/레드우드 도롱뇽의 첫 번째 고뇌/사막의 노래/자두와 마법에 걸린 사과나무를 생각함/고통의 아름다움/자석을 찾아서/두부/애저라는 말에 잠기다/포대기/내 인생의 축복/팽이에 대하여/고슴도치, 그 아름다운 것/불곰과 버드나무의 애니미즘

4. 살아있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
달밤에 반응하는 것들/야명조와 때까치/꿩알/거미와 잠자리채/소리통, 그 이름은 멱/돌나물/호랑이와 도리깨질/독수리와 글쓰기의 순간/나는 왜 동물의 언어에 집착하는가?―감각의 확장으로서의 동물 언어/백자와 개/뻘짓거리/나의 유산, 게으름/탁구와 글쓰기/사냥개 발바리/돌미나리와 거머리/구더기 시론/봄과 로드킬/펭귄/북극곰/어떤 반성/산불에 대한 기억/분리수거의 달인/지구의 아름다움을 찾지 말자/시, 그 참을 수 없는 가려움증

작가의 말

작가

이병일 지음

1981년 전북 진안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 『문학수첩』 신인상에 시,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옆구리의 발견』 『아흔아홉개의 빛을 가진』이 있다. ‘대산창작기금’을 수혜하고 〈오늘의젊은예술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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