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인턴기자의 투신자살, 《침묵주의보》

 

 

우리는 과연 ‘침묵의 시대’를 끝낼 수 있을까?
어느 인턴기자의 죽음 속에 담긴
‘나’와 ‘우리’에 대한 진중한 성찰!


 

유능한 인턴기자가
한밤중 5층 편집국에서 몸을 던졌다.

 

메이저 언론사의 말석으로 통하는 <매일한국>의 디지털뉴스부에서 일하는 박대혁은 국장의 노골적인 학연 편애와 불합리한 정기인사도 별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말단 기자다. 문화부의 대중문화 취재팀에서 디지털뉴스부로 발령이 난 후 회사 홈페이지 트래픽 증가를 위해 온갖 낚시기사들을 쏟아내느라 자괴감에 젖어 있다.

그런 그에게 국장이 인턴기자 교육을 맡으라는 지시를 내린다. 남자 셋과 여자 셋인 인턴기자들 중 대혁은 김수연이라는 기자의 고충을 들어주고 조언을 주면서 친분을 쌓게 된다. 알고 보니 수연은 서울 소재 명문대 출신의 동료 인턴기자들과 달리 지방 사립대 출신으로 나이 또한 스물아홉이나 되었다.

 

© FotografieLink, 출처 Pixabay

 

대혁은 나이보다 실력이 우선이라는, 스스로가 생각해봐도 위로되지 않을 위로를 건네며 그녀를 독려하지만, 안쓰러운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행히 수연은 동료들 사이에서 발군의 기량을 선보이며 <매일한국> 내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어느 날, 대혁은 국장에게 이끌려 점심을 먹으러 간 음식점에서 수연을 비롯한 인턴기자들과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인턴기자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는 사이, 대혁과 국장이 가까운 자리에 앉게 됐다. 하지만 대혁과 달리 인턴기자들을 등지고 앉은 국장은 그들이 있는 줄도 모르고,
수연의 학벌과 나이를 문제 삼으며 정규직 기자 선발에서 떨어트릴 것을 대혁에게 암시한다.

 

“사건팀과 디지털뉴스부 모두 김수연 그 친구를 제일 높게 평가하더란 말이지.”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나는 국장에게 당신 바로 뒤에 인턴들이 있다고 외치고 싶었지만, 외침은 목구멍 아래에서 맴돌았다. 인턴들의 움직임을 살핀 나는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국장의 빈 잔에 술을 채웠지만, 국장의 입을 멈출 순 없었다.

“아무리 블라인드로 인턴을 선발했다고 하지만, 이번 인턴은 좀 다르지 않냐. 인턴이야 나가면 남이지만, 이번 인턴은 정규직 전환형이라 평가 후 수습기자로 채용되는 건데.
김수연 그 친구가 잘하고 있는 건 알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대학 출신이 우리 회사에 입사하는 건 좀 그렇지 않냐? 가오 떨어지게.”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날 밤, 기자의 당직을 대신 맡았던 수연은 유서를 회사의 온라인기사로 유포하고 5층에서 투신하고 만다.

 

  
[단독] 유서 남긴 언론사 인턴, 숨진 채 발견투신자살 추정
기사입력 201X-01-20 04:56

[합동뉴스통신=배두헌·김지원 기자] 자신의 유서를 기사로 공개해 논란이 일었던 언론사 인턴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19일 오전 1시께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1 <매일한국> 사옥 주차장 앞 화단에 쓰러진 김 모(28·) 씨를 사옥 경비원 강 모(57) 씨가 발견했다. 강 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소방대원들김 씨를 인근 병원으로 옮겼지만 곧 숨졌다.

경찰은 김 씨가 밤늦게까지 편집국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폐쇄회로(CCTV) 영상과 열려 있던 편집국 내 탕비실 창문 등의 정황을 미뤄 이날 오전 0~1시께 김 씨가 추락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매일한국>에서 인턴기자로 근무 중이던 김 씨는 지난 19일 오후 1130분 온라인 기사를 통해 자신의 유서를 공개했다.

불안정한 일자리와 취업난을 비관하는 내용을 담은 김 씨의 유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며 누리꾼들 사이에서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한편, 김 씨의 유서를 담은 기사는 현재 해당 언론사의 홈페이지에서 삭제된 상황이다.

badhoney@hna.co.kr

  

 

유서에는 그녀가 자살을 선택한 구체적인 이유가 담겨 있지 않았다. 사인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나는 국장의 실언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그날 이후, 침묵을 강요하는 자와 침묵에서 벗어나려는 자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시작됐다.

 

 

 

소시민이자 평범한 기자 박대혁에게 찾아온 고통스러운 딜레마
우리 사회를 한층 명징하게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선사하는 소설!

 

 

유능했던 한 인턴기자의 자살 이후 ‘밥벌이’를 위한 회사 생활을 이어나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 《침묵주의보》. 현직 기자이기도 한 저자의 이 소설에서는 현실인지 허구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생생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미투 운동’을 통해 권력에서 비롯된 거짓과 폭력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파헤쳐지고 있는 지금,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부당한 사회를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의무에 대해 화두를 던져주는 소설입니다.

 

정진영
1981년 대전에서 태어나 한양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2008년 장편소설 『발렌타인데이』로 ‘한양대학보 문예상’ 대상, 2011년 장편소설 『도화촌 기행』으로 ‘제3회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수상했다. 과거에 작곡한 곡들을 모아 2014년 앨범 『오래된 소품』을 발표하기도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