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주의보

정진영 지음

브랜드 문학수첩

발행일 2018년 3월 26일 | ISBN 9788983926920

사양 127x188 · 364쪽 | 가격 13,000원

분야 국내소설

책소개

우리는 과연 ‘침묵의 시대’를 끝낼 수 있을까?

어느 인턴기자의 죽음 속에 담긴 ‘나’와 ‘우리’에 대한 진중한 성찰!

 

《침묵주의보》는 일상에서 은밀하게 작동하는 잔악한 권력의 시스템과 폭력성에 대해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대는 소설이다. 최근 ‘갑’의 위치에 선 권력자들의 추악한 폭력과 비리가 하나둘 밝혀지면서 우리 사회에 충격과 경악을 던져주고 있다. 제 잇속을 챙기기 위한 탈법은 물론, 친인척·측근들을 위한 채용비리 그리고 엄격한 위계를 무기로 벌인 추악한 성폭력까지 부패의 뿌리가 드러나고 있다. 과연 우리 사회에 권력의 부당한 남용이 이렇듯 짙게 드리워져 있었나 놀라울 정도다. 작가는 박대혁이라는 일간지의 기자이자 소시민이 겪는 사건을 통해 우리 일상에 만연한 권력형 부패와 비리를 폭로하는 한편, 자의와 다르게 동조자 혹은 하수인이 될 수밖에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심리에 주목한다.

작가는 기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언론사의 생리와 이해관계를 흥미진진한 서사 속에서 풀어낸다. 정의롭지 못한 윗선의 비리와 위선에 엮이게 된 힘없는 을이 겪게 되는 내적 갈등은 물론, 현실에서 언론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점 그리고 정직하고 공정한 사회를 이루어나가기 위한 언론인의 역할까지 소설은 이야기의 폭을 점점 넓혀나간다. 특히 작가는 현재 일간지의 기자로 활동하고 있어 이야기는 한층 사실적이면서도 현장감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일간지라는 조직의 구성원이자 한편으로 사회적 책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기자가 정당하지 못한 권력의 시스템에 편입되기를 교묘하게 종용받는다면 그는 과연 얼마나 용감해지고, 또한 얼마나 비겁해질 수 있을까? 대혁과 같이 항상 ‘을’의 입장에 있는, 우리 사회의 대다수인 우리는 자신의 생존권이 달린 부도덕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밥벌이’도 지키고, 스스로의 ‘존엄’도 지킬 수 있을까? 이토록 부적절하고 부조리한 사회의 시스템은 과연 제어할 수 없는 것일까? 작가는 긴장감과 속도감이 넘치는 이야기 속에 진중한 화두를 독자에게 던진다.

리뷰

유능한 인턴기자가 한밤중 5층 편집국에서 몸을 던졌다.

그날 이후 침묵을 강요하는 자와 침묵에서 벗어나려는 자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시작됐다.

 

‘메이저 언론사의 말석’으로 통하는 <매일한국>의 디지털뉴스부에서 일하는 기자 박대혁은 국장의 노골적인 학연 편애와 불합리한 정기인사도 별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말단 기자다. 문화부의 ‘대중문화 취재팀’에서 디지털뉴스부로 발령이 난 후 회사 홈페이지 트래픽 증가를 위해 온갖 낚시기사들을 쏟아내느라 자괴감에 젖어 있다. 그런 그에게 국장이 ‘인턴기자 교육’을 맡으라는 지시를 내린다. 남자 셋과 여자 셋인 인턴기자들 중 대혁은 김수연이라는 기자의 고충을 들어주고 조언을 주면서 친분을 쌓게 된다. 알고 보니 수연은 서울 소재 명문대 출신의 동료 인턴기자들과 달리 지방 사립대 출신으로 나이 또한 스물아홉이나 되었다. 대혁은 나이보다 실력이 우선이라는, 스스로가 생각해봐도 위로되지 않을 위로를 건네며 그녀를 독려하지만, 안쓰러운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행히 수연은 동료들 사이에서 발군의 기량을 선보이며 <매일한국> 내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어느 날, 대혁은 국장에게 이끌려 점심을 먹으러 간 음식점에서 수연을 비롯한 인턴기자들과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인턴기자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는 사이, 대혁과 국장이 가까운 자리에 앉게 됐다. 하지만 대혁과 달리 인턴기자들을 등지고 앉은 국장은 그들이 있는 줄도 모르고, 수연의 학벌과 나이를 문제 삼으며 정규직 기자 선발에서 떨어트릴 것을 대혁에게 암시한다.

그날 밤, 기자의 당직을 대신 맡았던 수연은 유서를 회사의 온라인기사로 유포하고 5층에서 투신하고 만다.

 

 

소시민이자 평범한 기자 박대혁에게 찾아온 고통스러운 딜레마.

그를 괴롭히는 것은 타인의 이중성이 아니라 자신의 위선과 무기력이었다!

 

수연의 죽음 이후 직장생활에 소극적이었던 대혁은 내면에서 큰 갈등을 겪게 된다. 회사는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는 오너의 이미지에 손상이 갈까봐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밝히기보다 조용하고 신속한 처리에 조직적으로 대응하고, 내막을 알고 있는 구성원들은 행여 이 일로 불이익을 받을까 진실을 알면서도 입을 닫는다. 대혁은 이들의 모습에 낙담한다.

 

“선배, 저희가 정말 비겁한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 잘 알아요. 사회의 부조리를 바로 잡아보겠다며 기자를 지망했는데 가까운 곳의 부조리를 보고도 어쩌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선 언론사에 취직을 해야 기자로서 뭐든 시도해볼 수 있는 거잖아요? 사실 저는 선배가 홀로 나서서 수연이 누나의 죽음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바라지 않아요. 혹시라도 저희한테 불똥이 튈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_본문 131쪽

 

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더욱 괴롭히는 건 타인의 이중적 행동이 아니라 위선적인 자신의 태도다. “선배는 수연이 언니를 위해 자리를 걸고 회사에 문제를 제기하실 수 있으세요?”라는 질문에 대혁은 아무런 답을 하지 못한다. 수연을 힐난하는 상사에게도 반론을 펴지 못하고, 되레 사건을 수습하는 데 일조하게 된다.

대혁은 진실을 알고도 ‘밥벌이’ 때문에 회피하고, 때론 자기 행동을 합리화할 수 있는 이유를 찾는 한편, 죄책감과 무기력을 느낀다. 그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다. 작가는 돋보기를 들이대듯 대혁의 심리와 변모하는 모습을 심도 있게 그려낸다. 마치 다른 직장에서 또 다른 ‘박대혁’이 될 수 있는 우리에게 “당신이라면 과연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하고 묻는 듯하다.

대혁은 사회부 사건취재팀에서 근무하다가 친분을 쌓게 된 경찰에게서 제보 받은 사소한 사건에서 석연찮게 진행되었던 인턴기자 제도의 비밀에 대한 단서를 확인한다. 그리고 기자 채용 과정에서 모종의 사전작업이 있었고, 수연의 죽음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어떤 음모가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진실을 밝히느냐, 끝까지 침묵하느냐 두 갈래의 길에서 그의 내적 갈등은 더욱 극한으로 치닫는다.

 

 

우리 사회를 한층 명징하게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선사하는 소설

부당한 권력이 판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일은 무엇일까?

 

부정의와 불공정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올바른 시민의식을 갖춘 시민이라면 부당함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올 법한 뻔한 상식은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에서 쉽게 통용되지 못한다. 부정의와 불공정이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내 올곧은 주장으로 현재의 ‘밥벌이’를 잃게 된다면 그럼에도 계속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까?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 게 인간사야.”_본문 104쪽

 

연륜 있는 베테랑 선배 기자가 대혁에게 건네는 말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속성을 짚어낸 말이기도 하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의 틀을 벗어난다. 회사 측 입장에서 사건을 무마하려는 인물들에게는 ‘악인’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유약함이 있고, 수연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선인’이라 할 수 없는 영악함이 엿보인다. 작가는 현실인지 허구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생생한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끝까지 몰고 간다. 이상적인 해피엔딩으로 독자에게 섣부른 교훈을 주입하지도, 그와 반대로 주인공을 더욱 절망에 빠트리고 염세적 현실 비판에 머물지도 않는다. 다만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부당한 사회를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의무에 대해 화두를 던져준다. 그것은 때에 따라서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정의롭고, 적당히 나쁘고, 적당히 비겁한 우리가 조금만 더 착하고, 조금만 더 정의로워지면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이다.

‘미투운동’을 통해 권력에서 비롯된 거짓과 폭력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파헤쳐지고 있는 지금, 독자들은 실화와도 같은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우리 사회를 명징하게 바라보는 혜안을 얻게 될 것이다.

 

 

■ 추천사

일상은 양날의 검과 같다. 익숙한 탓에 건너뛰고, 반복되는 바람에 틀에 갇힌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쓸 이야기 같지만, 마음을 제대로 먹기까지 오래 걸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침묵주의보』를 지은 이가 기자이면서 소설가인 것은 득일까 독일까. 기자라는 업(業)의 속사정을 풍부하게 아는 것은 득일 테지만, 그 틀의 안락함과 비정함을 뼛속까지 접한 것은 독에 가깝다. 『침묵주의보』는 밥벌이의 일상을 부수고 내부 고발에 이르는 과정이 얼마나 힘겹고 지난한가를 보여준다. 폭발음의 속 시원한 낭만 대신, 틀 앞에서 주저하고 선을 넘고자 버둥거리는 신음(呻吟)이 담겼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침묵으로 굴러 떨어지지 않고 흘러나오는 이 잡음이야말로, 정진영 작가가 공들여 만든 소설의 육체이자 기자들의 세계를 정면으로 다룬 윤리 감각일 것이다.

_김탁환(소설가)

 

 

본문 중에서

내가 기자로 밥벌이를 시작했을 때 놀랐던 사실 중 하나는, 동료 선후배 기자들의 출신교가 서울 소재 상위 몇 개 대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몇몇 매체는 특정 대학 이하 출신자는 기자로 선발하지 않는다는 소문까지 이 바닥에서 공공연한 비밀로 돌고 있을 정도다. 기사로 학벌 타파를 외치면서 취재원을 학벌로 판단하고, 고고하게 권위주위를 비판하지만 철저한 상명하복 구조에 따라 움직이며, 열정페이를 고발하지만 인턴들에게 당연히 열정페이를 지급하는 곳이 이 바닥이다. 언론계는 내가 아는 가장 심각한 모순투성이 집단이다.

_28, <부장인턴>에서

 

“이번에 뽑힌 인턴들은 정규직 전환형 인턴이잖아. 열심히 일하고 별다른 사고를 치지 않으면 우리 식구로 들어올 가능성이 높은 녀석들이라고. 최악의 취업 빙하기가 계속되는 데다 다른 곳에 취업이 보장된 것도 아닌데, 어느 정도 보장된 자리를 걸고 감히 회사에 불리한 행동을 나서서 할 수 있을까?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 게 인간사야.”

_130쪽, <방관자들>에서

 

“작은 개 한 마리가 광장에서 짖어대면 어떤 모습일 것 같아?”

“뭐 그냥 겁 많은 작은 개가 주인을 찾고 있나 보다 하고 넘어가겠지.”

“그런데 작은 개 100마리, 아니 1000마리가 광장에서 한꺼번에 짖어대면 어떨 것 같아?”

“그건 좀 많이 무서울 것 같다.”

정인은 벽에 손으로 개 모양 그림자를 그려 보였다.

“개는 절대로 쓸데없이 짖지 않아. 개가 짖는 행동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주인이 그 원인을 찾아내 짖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야. 주인이 개의 습성을 미리 잘 파악해 알아서 챙겨주면 다행이지만, 개가 짖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주인은 개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지? 짖는 개가 건강한 거야. 나는 떠드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해. 나는 겁이 많아서 뒤에서 드라마로 떠들어보려고. 세상이 움찔이라도 할진 모르겠지만.”

_167~168, <추론>에서

 

“대혁 씨, 아까 내가 시킨 거 했어? 찌라시방 반응은 어때?”

“아직…………”

최 팀장이 능글맞은 목소리로 비웃음을 흘렸다.

“손에 더러운 건 묻히긴 싫다는 말인가?”

최 팀장의 조소를 들은 나는 깨달았다. 그는 일부러 이 일을 나에게 시켰다. 나는 고개를 돌려 기획조정실의 출입문을 바라봤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이 일을 하는 것이 내키지 않으면 저 문 밖으로 나가면 된다. 하지만 나가는 순간, 나는 이 조직에 발을 붙이기 어렵게 될지도 모른다. 전세 대출금 이자, 자동차 할부금, 보험료, 집에서 드라마 극본을 쓰고 있을 정인………… 평소에 일상으로 여겨왔던 많은 것들이 무겁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_224~225, <전송버튼>에서

목차

송년회식
부장인턴
타이밍
벼랑 끝의 밤
No Gain NO Pain
침묵과 고발
방관자들
연결고리
추론
역습
제안
찌라시 대화방
전송 버튼
밥의 질
노예
고백
탐색
연대책임
영웅
선택
에필로그
작가의 말
해설

작가

정진영 지음

1981년 대전에서 태어나 한양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2008년 장편소설 『발렌타인데이』로 ‘한양대학보 문예상’ 대상, 2011년 장편소설 『도화촌 기행』으로 ‘제3회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수상했다. 과거에 작곡한 곡들을 모아 2014년 앨범 『오래된 소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 <문화일보> 기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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